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24-03-31 10:26
조회
323
3월 31일 1-3부 예배
8시30분 1부예배
나는 은혜 입은 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스가랴3장 1ㅡ9)
우리가 읽은 스가랴서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구약의 책’이 바로, 스가랴서 입니다.
우리가 읽은 스가랴 3장을 보면, 스가랴 선지자가 환상 가운데, 성전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1절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스가랴 선지자가 본 성전 안에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천사, 그리고 사탄이 등장한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성전은 1) 바깥뜰과 2) 성소 그리고 3) 지성소 이렇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지성소는 두꺼운 휘장으로 완전히,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성소 안에는 언약궤가 있었고, 언약궤 위에는 ‘속죄소’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속죄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것’((Shekinah)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속죄소는 ‘죄인인 인간’에게 있어, 너무나 위험한 장소였습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현대인> 레위기 16장 2-5절은 지성소 안에 있는 속죄소와 그 규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너는 네 형 아론에게 경고하여 성소의 휘장 뒤 법궤와 그 법궤의 뚜껑인 속죄소가 있는 지성소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것은 내가 그 속죄소 위 구름 가운데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론이 지성소에 들어오려고 할 때 먼저 갖추어야 할 조건은 이렇다.
그는 속죄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와 번제물로 수양 한 마리를 가져와야 하며 지성소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목욕을 하고 고운 모시로 만든 겉옷과 속옷과 띠와 관을 착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속죄제물로 수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수양 한 마리를 가져오면
율법에 따르면, 1년 중 단 하루, ‘속죄일’에 오직 한 사람만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바로, 대제사장만이 ‘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리고 속죄일은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가 깨끗케 됨으로서, ?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이 ‘원수의 자리'에 있는 그 관계를 화목하게 만드는 날’입니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속죄일은 가장 엄숙하고, 거룩하게 지키는 절기였습니다.
그런데, 스가랴 선지자는 환상 중에 속죄일에 지성소에서, 하나님 앞에 선,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보았다.
Q.여러분,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누구일까요?
스3:2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그 위에서 드리려 할새
‘여호수아’는 에스라, 느혜미야, 학개, 스가랴 시대의 살았던, 대제사장의 이름입니다.
구약시대에, <대제사장이 속죄일을 준비하는 과정>은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1.속죄일 일주일 전, 대제사장은 집을 떠나, 혼자만의 장소에 거했습니다.
혹시, 부지불식간에, 1)부정한 것을 만지거나, 2)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대제사장은 율법에 따라, 정결한 음식을 먹고,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유지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2. 속죄일 전날 밤에는 침소에 들지 않고, 밤새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읽었습니다.
1/4
그렇게 자신의 몸과 영혼을 정결하게 하고, 3.속죄일 당일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1)목욕을 하고, 2)흠없이, 순결한 백색 세마포 예복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대제사장은 지성소로 들어가서, 자신의 죄를 깨끗케하기 위해, 짐승으로, 하나님께 3)희생 제물을 올려드렸습니다.
그런 다음, 대제사장은 지성소를 나와서, 4)다시 목욕을 하고, 5)백색 세마포 예복을 새로 입은 뒤, 다시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6)제사장들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을 바칩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대제사장은 7)세 번째, 목욕을 하고, 8)새로운 백색 세마포 옷으로, 갈아입은 뒤, 다시 지성소로 들어가 9)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을 바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전 밖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직접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제사장이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마치기를 노심초사 바라보며, 마음으로 응원했다.
그리고 이것은 1년에 한번, 오직 대제사장만이 모든 이스라엑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지성소'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II. 그런데, 스가랴 선지자는 환상 가운데, 매우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3절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여러분, 대제사장은 결코, 한점 부정함 없이, ‘정결한 몸’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만 했는데,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더러운”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대변”, “배설물" (????? ??? (복수형))을 뜻합니다.
놀랍게도,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배설물이 뒤덮인 채”로, 지성소 안에 서 있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제사장이 그런 꼴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저, 보고만 있을리가 없었습니다.
Q. 그런데,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배설물이 묻은 그 더러운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있었어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부정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Q. 도대체, 어떻게 그러한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 장면에 대하여, 구약학자인 레이 딜러드(Ray Dillard)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스가랴에게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시각을 보여주신 것이다. 인간은 아무리 선하고, 도덕적이고, 정결해지기 위해 애를 써도, 하나님은 인간의 겉모습을 꿰뚫어,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는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성경은 인간을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죄에 대해, 인간은 아무리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무장하고, 외적으로 아무리 선을 행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내면 안에 있는 죄의 근원적인 문제를 인간은 결코,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 스가랴 선지자는 환상을 통해, 인간은 아무리 애를 써도, 죄인이기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앞에 서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스가랴가 좌절하기 직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현대인>4절 그때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천사들에게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고 명령하시고 2/4
또 여호수아에게 '내가 네 죄를 없애 버렸으므로 너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여호와의 천사가 대제사장인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8-9절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는 네 앞에 앉아 있는 동료들과 함께 내 말을 들어라. 너희는 앞으로 올좋은 일에 대한 상징이다. 내가 '가지'라고 부르는 내 종을 일으킬 것이다.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아라. 돌 하나에 면이 일곱 개이다.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고 단 하루 만에 이 땅의 죄를다 없애 버리겠다. (현대인의 성경)
분명, 스가랴는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Q.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 예언을 어떻게 성취하셨습니까?
수 세기 뒤에 또 다른 여호수아, 또 다른 예수아가 나타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여호수아, 예수아, 예수 이 세 이름은 (히브리어, 헬라어, 아람어로), 똑같은 이름들입니다.
바로, 2천년 전, 또 다른 여호수아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을 위해 십자가에 매어달리시고, 친히,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케 하시는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예화)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의 작품 중 '십자가를 세우다'(Elevation of the Cross) 렘브란트는 사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시대의 다른 예술가들처럼, 권력자들과 후원자들에게 쉬이, 흔들리는 속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을 보면,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를 일으켜 세우는 사람 중에 베레모를 쓴 남자가보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베레모를 쓰지 않습니다.
Q. 그런데 왜 이런 모양으로 사람을 그려 넣었을까요? 베레모를 쓴 사람은 바로, 렘브란트 자신입니다.
렘브란트는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장본인 입니다” 라는 고백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렘브란트의 고백처럼, 저와 여러분 모두는 ‘예수님을 십자가로 이끈 공모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 덕분에, 우리는 ‘더러운 배설물이 묻은 죄의 옷’을 벗게 되었고, 마침내, ‘영원히 빛나는, 아름다운 의의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은혜를 베풀어 주신 예수님께서는 심지어, 우리에게 영원한 부활도 약속하셨습니다.
요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여러분,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에, 우리는 더 이상, 죄로 인해, 멸망 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셨기에, 우리는 더 이상, 육체의 죽음으로 마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곧, 이 세상이 유일한 세상이 아닙니다. 이 몸이 유일한 몸이 아닙니다. 이 삶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지금 우리의 고난이 있는 현실 속에서 부활의 소망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언젠가 주님 안에서 완벽한 삶, 진짜 삶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
우리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를 입은 자들 입니다.
우리 함께 고백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망을 삼키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3부_11시 예배
나는 은혜 입은 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스가랴3장 1ㅡ9)
우리가 읽은 스가랴서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구약의 책’이 바로, 스가랴서 입니다.
우리가 읽은 스가랴 3장을 보면, 스가랴 선지자가 환상 가운데, 성전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1절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스가랴 선지자가 본 성전 안에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천사, 그리고 사탄이 등장한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성전은 1) 바깥뜰과 2) 성소 그리고 3) 지성소 이렇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지성소는 두꺼운 휘장으로 완전히,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성소 안에는 언약궤가 있었고, 언약궤 위에는 ‘속죄소’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속죄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것’((Shekinah)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속죄소는 ‘죄인인 인간’에게 있어, 너무나 위험한 장소였습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현대인> 레위기 16장 2-5절은 지성소 안에 있는 속죄소와 그 규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너는 네 형 아론에게 경고하여 성소의 휘장 뒤 법궤와 그 법궤의 뚜껑인 속죄소가 있는 지성소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것은 내가 그 속죄소 위 구름 가운데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론이 지성소에 들어오려고 할 때 먼저 갖추어야 할 조건은 이렇다.
그는 속죄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와 번제물로 수양 한 마리를 가져와야 하며 지성소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목욕을 하고 고운 모시로 만든 겉옷과 속옷과 띠와 관을 착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속죄제물로 수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수양 한 마리를 가져오면
율법에 따르면, 1년 중 단 하루, ‘속죄일’에 오직 한 사람만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바로, 대제사장만이 ‘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리고 속죄일은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가 깨끗케 됨으로서, ?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이 ‘원수의 자리'에 있는 그 관계를 화목하게 만드는 날’입니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속죄일은 가장 엄숙하고, 거룩하게 지키는 절기였습니다.
그런데, 스가랴 선지자는 환상 중에 속죄일에 지성소에서, 하나님 앞에 선,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보았다.
Q.여러분,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누구일까요?
스3:2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그 위에서 드리려 할새
‘여호수아’는 에스라, 느혜미야, 학개, 스가랴 시대의 살았던, 대제사장의 이름입니다.
구약시대에, <대제사장이 속죄일을 준비하는 과정>은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1.속죄일 일주일 전, 대제사장은 집을 떠나, 혼자만의 장소에 거했습니다.
혹시, 부지불식간에, 1)부정한 것을 만지거나, 2)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대제사장은 율법에 따라, 정결한 음식을 먹고,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유지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2. 속죄일 전날 밤에는 침소에 들지 않고, 밤새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읽었습니다.
1/4
그렇게 자신의 몸과 영혼을 정결하게 하고, 3.속죄일 당일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1)목욕을 하고, 2)흠없이, 순결한 백색 세마포 예복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대제사장은 지성소로 들어가서, 자신의 죄를 깨끗케하기 위해, 짐승으로, 하나님께 3)희생 제물을 올려드렸습니다.
그런 다음, 대제사장은 지성소를 나와서, 4)다시 목욕을 하고, 5)백색 세마포 예복을 새로 입은 뒤, 다시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6)제사장들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을 바칩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대제사장은 7)세 번째, 목욕을 하고, 8)새로운 백색 세마포 옷으로, 갈아입은 뒤, 다시 지성소로 들어가 9)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을 바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전 밖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직접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제사장이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마치기를 노심초사 바라보며, 마음으로 응원했다.
그리고 이것은 1년에 한번, 오직 대제사장만이 모든 이스라엑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지성소'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II. 그런데, 스가랴 선지자는 환상 가운데, 매우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3절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여러분, 대제사장은 결코, 한점 부정함 없이, ‘정결한 몸’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만 했는데,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더러운”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대변”, “배설물" (????? ??? (복수형))을 뜻합니다.
놀랍게도,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배설물이 뒤덮인 채”로, 지성소 안에 서 있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제사장이 그런 꼴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저, 보고만 있을리가 없었습니다.
Q. 그런데,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배설물이 묻은 그 더러운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있었어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부정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Q. 도대체, 어떻게 그러한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 장면에 대하여, 구약학자인 레이 딜러드(Ray Dillard)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스가랴에게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시각을 보여주신 것이다. 인간은 아무리 선하고, 도덕적이고, 정결해지기 위해 애를 써도, 하나님은 인간의 겉모습을 꿰뚫어,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는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성경은 인간을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죄에 대해, 인간은 아무리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무장하고, 외적으로 아무리 선을 행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내면 안에 있는 죄의 근원적인 문제를 인간은 결코,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 스가랴 선지자는 환상을 통해, 인간은 아무리 애를 써도, 죄인이기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앞에 서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스가랴가 좌절하기 직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현대인>4절 그때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천사들에게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고 명령하시고 2/4
또 여호수아에게 '내가 네 죄를 없애 버렸으므로 너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여호와의 천사가 대제사장인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8-9절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는 네 앞에 앉아 있는 동료들과 함께 내 말을 들어라. 너희는 앞으로 올좋은 일에 대한 상징이다. 내가 '가지'라고 부르는 내 종을 일으킬 것이다.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아라. 돌 하나에 면이 일곱 개이다.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고 단 하루 만에 이 땅의 죄를다 없애 버리겠다. (현대인의 성경)
분명, 스가랴는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Q.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 예언을 어떻게 성취하셨습니까?
수 세기 뒤에 또 다른 여호수아, 또 다른 예수아가 나타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여호수아, 예수아, 예수 이 세 이름은 (히브리어, 헬라어, 아람어로), 똑같은 이름들입니다.
바로, 2천년 전, 또 다른 여호수아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을 위해 십자가에 매어달리시고, 친히,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케 하시는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예화)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의 작품 중 '십자가를 세우다'(Elevation of the Cross) 렘브란트는 사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시대의 다른 예술가들처럼, 권력자들과 후원자들에게 쉬이, 흔들리는 속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을 보면,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를 일으켜 세우는 사람 중에 베레모를 쓴 남자가보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베레모를 쓰지 않습니다.
Q. 그런데 왜 이런 모양으로 사람을 그려 넣었을까요? 베레모를 쓴 사람은 바로, 렘브란트 자신입니다.
렘브란트는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장본인 입니다” 라는 고백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렘브란트의 고백처럼, 저와 여러분 모두는 ‘예수님을 십자가로 이끈 공모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 덕분에, 우리는 ‘더러운 배설물이 묻은 죄의 옷’을 벗게 되었고, 마침내, ‘영원히 빛나는, 아름다운 의의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은혜를 베풀어 주신 예수님께서는 심지어, 우리에게 영원한 부활도 약속하셨습니다.
요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여러분,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에, 우리는 더 이상, 죄로 인해, 멸망 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셨기에, 우리는 더 이상, 육체의 죽음으로 마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곧, 이 세상이 유일한 세상이 아닙니다. 이 몸이 유일한 몸이 아닙니다. 이 삶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지금 우리의 고난이 있는 현실 속에서 부활의 소망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언젠가 주님 안에서 완벽한 삶, 진짜 삶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
우리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를 입은 자들 입니다.
우리 함께 고백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망을 삼키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