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18-03-18 18:46
조회
958
3월 18일 주일 2,3부예배
환란과 핍박 중에도! (행8:1~6)
우리가 7장을 보면 스데반 집사의 설교를 보게 됩니다.
그의 주옥같은 메시지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가슴에 담은 것이 지난주입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어떻게 성취해 오셨는가.
과연 그가 받은 복이 육체적인 복이었는가 ?
하는 것들을 스데반은 유대민족에게 설명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선민이라는 사실로 한껏 고양되어 있었고 그들에게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를
스데반은 전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로 내 몰았고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고
자기들이 승리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는데 결국 스데반의 설교는
그들이 십자가로 내 몬 예수가 자신들의 진정한 복의 근원되고
예수를 죽임으로 그들이 진정한 복을 상실했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전할 때
그들은 충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께 약속한 복이 무엇입니까?
그를 통해 주시는 메시아에 대한 언약이 바로 진정한 복이었음을 스데반은 설명합니다.
모세를 통해 주신 가장 큰 복은
그것은 가나안 땅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언약임을 스데반은 설명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를 배척하고 십자가로 내 몹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스데반은 순교 당하지만 이 고난이 더 파급되어가는 과정이
오늘 8장에 드러납니다.
8장 1절 하반 절에 보면 더 축발된 핍박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핍박자 사울의 전면 등장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사도행전 8:1)
한사람이 역사의 전면에 섭니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요 ?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 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사도행전 7:58)
지금 핍박자 사울이 모든 전면에 등장합니다.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 선 선동가였고
*길리기아 속주 다소 출신의 젊은 야망가였고 그의 아버지는 길리기아에서
장막을 만드는 사업가로 천막을 만드는 산업이 융성했던 지역에 살고 있었는데
그 당시 천막은 로마의 군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군수물자였습니다.
그로인해 그 집안은 영향력 있고 힘이 있는 집안이었고
사울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로마 시민권자 였습니다
그는 다소에서 그리스의 모든 철학과 최고의 학문을 전수했던 자로
전 세계의 모든 문화가 만나는 지역이 그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로마시민권자 였던 그가 예루살렘에 와 있는 이유는
유대인가운데 최고의 명예는
바리새인이 되는 것이고 바리새인이 바라보는 최고의 명예는
산헤드린 공회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권력을 떠나 유대인에게는
가장 큰 자긍심이었고 명예였는데 이것을 위해서 그는 예루살렘에 온 것입니다.
*그는 극단적인 율법주의의 신봉자이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율법의 교육을 받았고
나는 율법으로 완벽한 자다. 어떤 구원도 필요치 않다.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
적어도 유대인에게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구원이 필요 없다고 믿는
극도의 율법주의자가 바로 이 사울이라는 청년이었습니다.
모태로부터 구원 얻었음으로 흠이 없는 자라는 자긍심과 오만함으로 가득 찬 자로
모든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며 잔인하고 매서운 존재로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울이 스데반의 설교의 현장에 서 있습니다.
운명적인 현장이 벌어집니다.
‘설교의 내용도 사울의 가슴속에 잔향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이 진리의 말씀이 그의 운명을 바꾸는 놀라운 역사의 축이 됩니다.
스데반이 죽어가는 과정 속에서
어떤 변화를 느끼지는 못하지만 하나의 충격 이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 이 모든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할 때
그의 가슴 한 켠에서는 양심의 또 다른 소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스데반의 최후는 사울에게 거룩한 부담감이었지만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을 당연히 여기고 그것을 또 정당히 여기는 마음들이 가득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와 그의 순교 (사도행전 7:55-60)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사도행전 8:1)
율법주의 자기공로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나는 의인이고 저 사람은 죄인이다 라는 것이...
우린 다 죄인입니다 우리 중에 의인이 있나요 ?
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들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데 우리는 마치 죄 없는 것처럼...행동 합니다
어떤 일에 있어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기에 ..
‘오늘은 나 내일은 너’ 라는 인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은혜 아니면 우리는 누구도 의인일 수 없습니다.
누군가 매도당할 때 위기를 겪고 인생의 처절한 상황을 당할 때 마땅히 ....
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누군가 매도당할 때 마땅히.... ’여겼다고 나옵니다.
예수의 사람들은 ‘민망히’ 여겨야 합니다.
‘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잠언 16:4)
하나님이 악을 남겨놓으신 이유는 악에 의해 선하심이 파괴됨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경륜과 주권이 이루어지도록 그 악을 선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드러낸 것이 요셉입니다
형들에게 죽임 당할 뻔하고 노예로 팔려가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총리가 되고 형들을 만날 때 그의 고백은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날 우리의 구원자가 되게 하셨다’ 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형들이 행한 일은 악이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다 선용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사울의 모든 핍박도 당연한 것이 아니고 악이고 패역이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선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 경륜은 ㅡ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경영방식이라면
* 섭리는 ㅡ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어떤 어려움과 역경 앞에서도 무릎 꿇고 순복하면
하나님의 섭리가 선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악인의 핍박을 통한 복음의 전파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사도행전 8:1)
그들이 흩어집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핍박을 통해 영역과 경계선이 무너지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예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는 것인데
그들은 지금 어디까지 가 있나요 ? 예루살렘 유다지역까지였습니다
복음이 정체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잘못된 선민사상이었습니다.
*선민사상
*유대와 사마리아 땅으로....
우리만 구원 얻고 우리만 하나님의 백성이다 라는 잘못된 생각들이었습니다.
핍박이 일어날 때 편협된 영역이 무너지고 왜곡된 가치관이 깨어집니다.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얼마나 다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제일 위험한 것이 고집으로 , 경험으로 사는 것입니다.
과거의 말씀이 아니라 지금, 오늘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들, 예수의 제자들이 그 영역을 타파하지 못합니다.
예루살렘, 유대 그 이상 나가지 않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백성 되게 하신 이유는
나를 통해 이방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오직 은혜입니다. 은혜를 알면 나아가야합니다,
항상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어야합니다.
그들이 교회 중심에 설 수 있도록 , 도와야합니다.
본문에 보면 핍박 때문에 그들이 모든 땅으로 흩어집니다.
*집사 빌립의 전도 ㅡ사마리아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쌔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사도행전 8:4-5)
*복음 증거....
*우리가 복음 증거에 힘쓸 때 어둠의 세력은 떠나가게 될 것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한복음 14:12-14)
내 인생에 어떤 환란이 다가올 때 우리는 거기에 안주하려고 합니다.
커다란 반석 뒤에 숨어서 안전하게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려고 합니다.
이 풍파가 내게 온 이유가 죄 때문일까 ?
내가 여기서 더 하나님께 순복하고 응답해야겠구나 생각함이 복 된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중직이 될수록 전도하지 않습니다. 위험해 집니다.
입을 열어 예수를 주라 고백하고
누군가에게 전도할 때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력이 파급 됩니다
‘전도하자’ 할 때... 내가 사는 방식이구나. 느끼고 움직여야합니다.
태풍이 좋은 건 아니지만 파도가 강하게 쳐서 바닷물이 뒤섞일 때
새로운 생명이 파급될 수 있고 바닷물이 맑아집니다.
인생의 풍랑이 올 때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응답할까 생각해야합니다.
주변에 많은 공동체들, 왜 교회들이 문제가 일어납니까 !
복음증거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예배. 복음 때문입니다
거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본질을 잃어버리면 교회의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삼손이 거룩함을 상실하고 베푸신 은혜를 상실할 때
힘이 강해도 그는 어릿광대로 전락해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고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 때 그가 존귀해 질 수 있었습니다.
가정 안에서 처음 믿으시는 분들은 잘 들으셔야 합니다.
내 가정 안에서 복음이 증거 되지 않으면 풍파가 올 수 있습니다.
입을 열어 전해야합니다. - 성경적입니다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사도행전 8:5,7-8)
여러분 개척교회도 전도해야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전도할 때 내가 살기 때문입니다.
복음전해야 어둠의 세력이 떠나갑니다.
기도와 말씀은 나를 회복하는 능력이라면
복음증거는 우리의 환경을 바꾸는 능력이 됩니다.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지 않을 때 우리는 믿는다는 단어를 쓴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 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아세요 ?
믿습니다. 라는 말도 맞지만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이고 온 우주의 창조자시고
그 분이 지금도 내 삶의 주권자시고 내 삶에 역사하심을 알아야합니다.
알려면 입으로 전하고 말할 수 있어야합니다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라고 말씀하셨기에...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수고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1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디모데후서 4:1-2)
지금 바울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의 마지막 순간에 ‘너는 복음을 증거하라’ 전하라 하는 것입니다.
복음증거는 자신까지도 구원하는 놀라운 능력이 된 것을 알기에
그의 마지막 소원은 복음증거였습니다.
복음증거는 선택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며 신앙의 본질입니다
*구원 얻었으면 ㅡ구원시켜야 하고
* 부름 받았으면 ㅡ보냄 받아야합니다.
* 복음 증거는 우리가 공동체가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우리 안에 복음증거에 대한 갈망과 확신으로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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