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24-01-21 10:17
조회
626
1월 21일 1-4부 예배
9시 1부예배
젖 뗀 어린 아이처럼…(시편 131:1-3)
* 겸손과 교만
다윗이 일평생 추구했던 내용인 본문은 겸손, 신뢰, 영원한 소망으로 이어지기에 겸손의 노래인 동시에 신뢰의 노래라고 합니다. 겸손이란 보통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는 행동으로 이해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겸손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피조물인 우리가 자신을 철저히 낮추는 행위이자,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는 것을 뜻합니다. 겸손의 반대말인 교만은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하고 피조물인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 내 마음과 눈을 높은 곳에 두지 않겠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8)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것을 명령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 교만이 아닌 겸손으로 바뀌어질 수 있습니다. 겸손은 자연적인 성품이 아니기에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에게는 결코 생기지 않는 덕목입니다.
여호와여 나는 내 마음을 높은데 두지 않고 눈도 높이 두지 않고 내게 너무나 크고 벅찬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1절)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42:3)
1절에서 “내게 너무나 크고 벅찬 일”이라는 말은 욥의 고백에서 “내가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과 동일한 표현입니다. 즉, 다윗은 욥처럼 크고 높은 하나님의 섭리를 결코 이해할 수 없기에 내 마음과 눈을 높이 두지 않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1828년 뉴욕출생의 호레이쇼 스패포드는 부유한 변호사로, 부흥사인 무디 목사님의 사역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871년 시카고 대화재로 그의 전재산을 한순간에 잃었고, 바로 1년 전에는 열병에 걸린 4살짜리 아들도 먼저 보냈습니다.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아내와 네 명의 딸과 함께 유럽여행을 결정한 뒤 갑작스런 일이 생겨 가족을 먼저 태워 보냅니다. 그런데 그 배가 사고로 전복되어 탑승객 226명과 함께 그의 네 딸이 수장되었고 아내만 홀로 살아남았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영국으로 배를 타고 가던 중, 대서양 한복판 사고지점에서 그는 너무나 큰 괴로움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밤새도록 절규하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일찍이 체험해보지 못한 평안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고, 그 평안을 <내 평생에 가는 길 (찬413장)>의 가사로 적어 내려갔습니다.
* 왜?라는 질문앞에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
다윗 역시도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겪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 다니던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다윗은 단호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기름부은 사람을 내 손으로 해칠 수 없다. 그것은 여호와께 악이니라.”
이스라엘 역사상 다윗보다 큰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가 큰 일을 해야만 한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성실히 할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선하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하나님께서는 선하시다는 사실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한 사람만이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 젖 뗀 아이가 사모하는 것은 젖이 아니라 엄마의 품
…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2절)
아기는 엄마 품에 있을 때 가장 평안하지만 갓난아이가 성장하여 젖을 뗄 때는 분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때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넘치는 사랑으로 꼬옥 안아줍니다. 다윗은 바로 엄마품에 안겨있는 그 순간의 고요함과 평온함을 경험합니다.
갓난아기 때에는 엄마의 젖을 빠는 것으로 만족했고 그것이 전부였으나, 이제는 엄마의 젖이 아니라 엄마라는 대상이 더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어떤 복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품안에 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고백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재물, 성공, 행복을 즐거워하고 끝납니다. 그런데 성도는 재물, 성공보다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소망을 둡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온 우주를 품고도 남을만큼 크고 따뜻한 사랑의 품안에 안길때 비로소 영혼의 평안을 얻습니다.
* 바쁜 상황속에서 있어야 할 곳은 하나님의 품
주님의 품안에 있을 때 우리의 영혼에 치유가 있고, 영혼이 소생케 되는 능력을 경험하고, 불안과 두려움이 눈녹듯 사라지고, 궁극적인 평안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너무 바쁘기 때문에 하나님품에 안기지 못하는 악순환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쫓기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반드시 있어야 할 장소는 바로 하나님의 품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 죽기까지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3절)
다윗의 고백과는 반대로, 인류역사상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인 솔로몬은 인생의 마지막에 모든 것이 헛되고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전인생에 갈구해야하는 유일한 소망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참 인간이 되실 뿐만 아니라 저주를 상징하는 십자가에 매어달려 죽기까지 겸손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예수님안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거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 결론
겸손한 심령을 소유한 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그 눈이 높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기이한 일, 특별한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또한 겸손한 사람은 커다란 시련이 덮칠지라도 마치 젖 뗀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안에 있음같이 하나님의 품안에서 깊은 평안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바래야 할 궁극적인 소망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11시_2부 예배
젖 뗀 어린 아이처럼…(시편 131:1-3)
* 겸손과 교만
다윗이 일평생 추구했던 내용인 본문은 겸손, 신뢰, 영원한 소망으로 이어지기에 겸손의 노래인 동시에 신뢰의 노래라고 합니다. 겸손이란 보통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는 행동으로 이해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겸손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피조물인 우리가 자신을 철저히 낮추는 행위이자,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는 것을 뜻합니다. 겸손의 반대말인 교만은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하고 피조물인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 내 마음과 눈을 높은 곳에 두지 않겠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8)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것을 명령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 교만이 아닌 겸손으로 바뀌어질 수 있습니다. 겸손은 자연적인 성품이 아니기에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에게는 결코 생기지 않는 덕목입니다.
여호와여 나는 내 마음을 높은데 두지 않고 눈도 높이 두지 않고 내게 너무나 크고 벅찬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1절)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42:3)
1절에서 “내게 너무나 크고 벅찬 일”이라는 말은 욥의 고백에서 “내가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과 동일한 표현입니다. 즉, 다윗은 욥처럼 크고 높은 하나님의 섭리를 결코 이해할 수 없기에 내 마음과 눈을 높이 두지 않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1828년 뉴욕출생의 호레이쇼 스패포드는 부유한 변호사로, 부흥사인 무디 목사님의 사역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871년 시카고 대화재로 그의 전재산을 한순간에 잃었고, 바로 1년 전에는 열병에 걸린 4살짜리 아들도 먼저 보냈습니다.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아내와 네 명의 딸과 함께 유럽여행을 결정한 뒤 갑작스런 일이 생겨 가족을 먼저 태워 보냅니다. 그런데 그 배가 사고로 전복되어 탑승객 226명과 함께 그의 네 딸이 수장되었고 아내만 홀로 살아남았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영국으로 배를 타고 가던 중, 대서양 한복판 사고지점에서 그는 너무나 큰 괴로움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밤새도록 절규하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일찍이 체험해보지 못한 평안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고, 그 평안을 <내 평생에 가는 길 (찬413장)>의 가사로 적어 내려갔습니다.
* 왜?라는 질문앞에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
다윗 역시도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겪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 다니던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다윗은 단호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기름부은 사람을 내 손으로 해칠 수 없다. 그것은 여호와께 악이니라.”
이스라엘 역사상 다윗보다 큰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가 큰 일을 해야만 한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성실히 할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선하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하나님께서는 선하시다는 사실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한 사람만이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 젖 뗀 아이가 사모하는 것은 젖이 아니라 엄마의 품
…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2절)
아기는 엄마 품에 있을 때 가장 평안하지만 갓난아이가 성장하여 젖을 뗄 때는 분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때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넘치는 사랑으로 꼬옥 안아줍니다. 다윗은 바로 엄마품에 안겨있는 그 순간의 고요함과 평온함을 경험합니다.
갓난아기 때에는 엄마의 젖을 빠는 것으로 만족했고 그것이 전부였으나, 이제는 엄마의 젖이 아니라 엄마라는 대상이 더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어떤 복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품안에 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고백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재물, 성공, 행복을 즐거워하고 끝납니다. 그런데 성도는 재물, 성공보다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소망을 둡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온 우주를 품고도 남을만큼 크고 따뜻한 사랑의 품안에 안길때 비로소 영혼의 평안을 얻습니다.
* 바쁜 상황속에서 있어야 할 곳은 하나님의 품
주님의 품안에 있을 때 우리의 영혼에 치유가 있고, 영혼이 소생케 되는 능력을 경험하고, 불안과 두려움이 눈녹듯 사라지고, 궁극적인 평안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너무 바쁘기 때문에 하나님품에 안기지 못하는 악순환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쫓기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반드시 있어야 할 장소는 바로 하나님의 품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 죽기까지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3절)
다윗의 고백과는 반대로, 인류역사상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인 솔로몬은 인생의 마지막에 모든 것이 헛되고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전인생에 갈구해야하는 유일한 소망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참 인간이 되실 뿐만 아니라 저주를 상징하는 십자가에 매어달려 죽기까지 겸손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예수님안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거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 결론
겸손한 심령을 소유한 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그 눈이 높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기이한 일, 특별한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또한 겸손한 사람은 커다란 시련이 덮칠지라도 마치 젖 뗀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안에 있음같이 하나님의 품안에서 깊은 평안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바래야 할 궁극적인 소망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