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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부
작성일
2021-01-24 09:24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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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4일 2부 ㅡ 5부 대면예배및 온라인예배ㅡ복음의 영향력!'(사도행전 4:8-21)
3부 11시예배......
새가족을 환영합니다
공동체의 생명력 !' (행4:12-31)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고난과 함께 직면하는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 누구도 고난과 가슴앓이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고난과 역경 속에서 나타나는 우리의 신앙적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의지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적 태도라는 것을 성경은 끊임없이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고난으로 인한 깨어짐은
비록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더 고귀해지고 풍성해지는 과정입니다.
모든 문제는 힘들지만 사실, 삶의 현장에서 우리를 성장하게 해주는 기회입니다.
너나 오닐(Nena O' Neal)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위기에는 다시 태어날 기회가 있다.’ 곧, 성장할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초대 공동체는 고난을 통해서 성장합니다.
생명력을 더 파급시킵니다.
교회는 예수의 죽으심,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에서 출발합니다,
야망과 정욕으로 예수를 쫓았던 제자들.
그들은 예수로 인해 얻게 될 영광과 권세를 갈망했지만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돌아가신 예수를 보며 그들은 절망하고
자신들에게 해가 미칠까 두려워 부인하고 숨어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오순절 성령의 강림을 통하여 탄생한 공동체
그들은 해산하여 마가의 다락방으로 모여 기도합니다.
오순절 날,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임하시고
전 세계 언어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베드로는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십자가, 죽으심, 부활을 증거 합니다.
그리고 3.000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초대 공동체의 시작입니다.
성전에 모여 말씀을 나누고 흩어지면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그들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십자가로 내 몰기위해 선동했던
산헤드린 공회는 절대권력을 사용하여 초대 공동체를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장애인을 일으켜 세우는 광경을 목격하였고
장애인을 낫게 한 베드로에게 관심이 모아지자
‘이것은 나의 능력이 아님’을 단호하게 선언하는 베드로를 보게 됩니다.
이 모든 광경을 목격한 산헤드린 공회는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들입니다.
‘예수를 부인하고 자신의 욕구를 위해 예수를
이용하려 했던 베드로와 요한의 과거 모습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압박하면 스스로 포기할 거라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과거의 그들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를 관통했고 부활을 경험했으며 예수의 승천하심 뿐 아니라
성령의 역동성을 경험했던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예수를
‘쫓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를 ‘붙잡은’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토미 테니가 쓴 The God Catchers'
즉 ‘하나님을 붙잡는 사람’이라는 책에서 그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하나님을 ‘쫓는’(chase)데서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을 ‘붙잡는’(catch) 삶을 살라!‘
이것은 ’무엇‘ 때문에 예수를 따르지 말고,
예수가 우리의 목적이 되고 우리 삶의 가치가 되는
’예수를 붙잡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제자들은 이기적인 욕구로 예수를 ’쫓는‘ 사람들이었지만
이제는 예수가 전부인 삶을 사는 ’성령의 사람‘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가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헤드린 공회의 핍박과 압박은 계속됩니다.
이것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데모크라티아(Demokratia),
즉 민주적인 가치관이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수가 많음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 판단 기준은 ’그것이 정의인가, 진리인가‘입니다.
민주주의가 시작되고 민중에 의해서 세워졌다고
평가하는 고대 그리스에서도 진리와 정의를 짓밟았던 현장이 참 많았습니다.
급기야는 데마고기아(Demagogia),
즉 우중(愚衆)정치를 하게됩니다.
어리석은 백성을 만들어 가는거죠.
백성들이 진리를 따르지 않고 선동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담대한 사도들의 선언
제자들은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성령의 역동성 속에서
진리를 담대히 증거하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이 민간에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하니. (사도행전4:17-18)
이것이 산헤드린 공회의 경고였습니다.
이렇게 압박하면 복음을 포기할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결코 주눅 들지 않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사도행전4:19)
*이것이 사도들의 선언이었고 증인의 모습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수가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모이면 말씀 앞에 무릎 끓고 기도하고 흩어지면 말씀 전하며
그 생명을 파급시키는 믿음의 영향력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냅니다.
이것이 초대 공동체의 진정한 가치관이었습니다.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류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고하니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사도행전 4:23-24)
*공동체의 기도
그들의 기도는 대적들의 멸망이나 핍박이 없어지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보다 상황이 더 어려워진다해도
담대히 복음 증거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도였습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사도행전 4장 31절)
성령의 역사는 복음을 더욱더 증거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초대 공동체의 기도를 통해 예수의 복음은 더욱더 증거되고
그 복음을 위해 성령은 더 역사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에스겔36:33-36)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구나!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아 결국 패망합니다.
포로로 잡혀가고 성전은 무너진 황무하고
황폐한 땅에서 그들은 다시 하나님을 갈망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하며 이루어지길 기다립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비웃던 수 많은 이방인들이
’과연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구나‘라고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이 실현되길 간절히 바랬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에스겔36:37)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기도하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사랑하시고 수많은 죄인을 복음으로
구원하길 원하신다 해도 우리가 기도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그 약속은 사실상 허무해지고 맙니다.
복음이 실현되길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그 위대한 생명력을 파급시키시는 것입니다.
* 예배에 대한 갈망이 존재하는가
현장 예배의 회복을 갈망하며 기도했다면
그것은 태도에서 드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기도와 갈망은 허구에 불과합니다.
갈망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기도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소원을 아뢰고 이루어 주시기를 염원하는 행위라고만
한다면 그것은 너무 이기적이고 단순히 우리 삶의 일부만을 해결하기
위한 좁은 차원의 해석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뜻을 향해서 끊임없이 순복하는 것이며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장을 이루는 것이 바로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 초대공동체의 기도
초대 공동체는 고난이 사라지길 기도하지 않습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
*제자의 수가 날마다 더하고 말씀이 흥왕함
환란 중에서도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수는 더해갑니다.
핍박 가운데 교회는 성장합니다.
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등장합니다,
소유를 팔아 얼마를 감추고 드린 이 부부는 ’성령을 속인 죄‘로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거룩성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사도행전 5:14)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 이후 공동체는 더욱더 흥왕해갑니다.
이처럼 공동체의 거룩성은 두려움만이
아닌 생명력을 파급시킵니다.
6장에는 공동체의 갈등을 보여줍니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통해 교회 안에 진정한 믿음의 사람만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갈등을 겪은 후에 교회는 와해되고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사도행전 6:7)
*갈등으로 인해 교회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진리를 따라 살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
진리를 위해 사는 것이 크리스찬이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입니다.
이 진리가 초대 공동체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교회가 많이 위축될 것이고
신앙인이 많이 주저앉을 것이다.
그리고 현장예배는 도퇴 되고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수가 더 많아질 것이다‘ 라고 예측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믿음은 믿음으로 말합니다,
믿음은 반드시 삶과 연계되어 드러납니다.
그래서 저는 기대해봅니다. 누가 믿음인지,
예배가 회복되면서 누가 진정 하나님을 갈망하던 사람인지.
그저 자신의 욕구를 이루기 위해 예수를 ’따르는‘
사람인지 예수를 ’붙잡고‘ 사는 사람인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은 더욱더 생명력을 파급시킬 것이고
복음으로 이 땅은 새롭게 회복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선언입니다.
위기와 역경! 힘들고 절망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붙들고 살아가는가,
복음만이 나의 생명력인가, 복음만이 내 삶의 진정한 존재감인가...
이것으로 드러나는 삶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신앙의 연조 만이 쌓이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생명의 말씀이 날마다 더해가고 하나님을 알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만을 ’붙잡고‘ 살아가는
신앙의 선언과 결단이 끊임없이 확증되는 우리의 전 삶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