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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부
작성일
2022-06-26 09:56
조회
1280
6월 26일 2ㅡ5부 현장예배 ㅡ기다림의 능력을 소유하는 방법(시편25 : 1ㅡ5)
9시...... 2부 현장예배
3부예배
기다림의 능력을 소유하는 방법(시편25 : 1ㅡ5)
시므온은 하나님 말씀이 희미한 암흑기에 성령님을 통해
그가 죽기 전에 그의 눈으로 메시아를 보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시므온은 일평생 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메시아가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기다려온 메시아를 품에 안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눅2:29-32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일생 동안 주님의 약속을 기다려온 시므온의 노래를
초대교회 시대 공예배에서 불렀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기다림이 존재합니다.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어쩔 수 없이 견뎌야만하는
그 기다림은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다리는 것 자체가 한심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기다림의 가치 기다림의 능력을 상실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 주위의 사람을 보고
주위의 현실을 보는 것이 훨씬 수월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인생의 절박한 위기 가운데 잠잠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윗의 인생에 있어서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복은
그의 문제를 하나님께 의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인생의 절박한 위기 속에서 시종일관 하나님을 잠잠히 기다리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기다림의 가치를 상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소유해야 할 능력은 바로 기다림의 능력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가 기다림의 능력을 소유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시편 25편은 다윗의 비탄시 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시가 언제 어떤 배경에서 지어졌는지 정확히 알수 없다고 말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 다윗은 원수들의 핍박으로 인하여
참혹하고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외롭고 괴로운 인생의 고난 가운데
그의 영혼은 잠잠히 기다리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다윗은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어떤 환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그의 영혼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라는 표현은
“내가 기도를 드립니다”라는 뜻 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일반적인 기도라기 보단 이보다 더 간절한 기도입니다.
이러한 간절한 의미를 담은 표현이 신24:15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끌지 말라
(중략.... )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죄가 네게로 돌아갈까 하노라”
마치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하루 삯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처럼
다윗은 가난한 마음으로 오로지 하나님만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라는
고백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주를 우러러 본다는 말은 눈을 들어서 위를 향하여 본다는 말인데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만 주목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작성한 시들을 보면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고백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몰라요.
1) 사울왕으로부터 광야에서 쫓기는 가운데
2) 적들에게 둘러 쌓여서 목숨이 풍전등화인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앞뒤로 둘러 쌓인 적들에게
그의 시선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오로지 위에 계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인간은 타인의 문제에 대해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만
자신의 문제에 대해선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우리의 시각을 넓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은 기도입니다.
필립 얀시가 쓴 <기도>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의 시선을 우리의 영혼을 들어서 위로 올려주신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올려주셔서
하나님께서 보시는 시각으로 보게끔 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걱정과 근심이 무엇으로 인해
야기된 것인지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미움과 분노가 사랑과 용서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줍니다.
내가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나의 문제를 마치
위에서 내려다 보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나의 뜻'이 ‘하나님의 뜻’으로 점진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기적이란 하나님의 변화가 아니라 바로 나의 변화입니다.
또한 다윗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주의 길과 주의 도를 가르쳐달라”고 간구합니다.
4절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우리의 생각으론 ’하나님의 의로운 섭리’를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길은 오직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셔야만 알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기다림의 능력을 소유하기 위해선
진리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의로우신 섭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를 간청해야만 합니다.
5절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지금 다윗에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다른 구원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다윗의 내면의 탄식은 커져만 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탄식의 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다윗은 더욱 주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다윗은 그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은혜를 풍성히 경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다윗이 보지 못하는 더 높고 더 넓은 좋은 길 선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를 구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리고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습니다.
삼하11장을 보면 다윗이 유부녀인 밧세바와 간통을 저지릅니다.
그 과정 속에서 그는 어떠한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그저 본능적으로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그 죄악이 얼마나 큰 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다윗에게 이야기로 설명해주십니다.
이 비유가 삼하12장을 보면 나옵니다.
그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한 부자가 있었어요.
그 부자에게는 양도 많았고 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웃에는 가난한 사람이 살았어요.
그 가난한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온 재산이 오직 암양 새끼 한마리에요 양 한마리 뿐이에요.
어느 날 부자에게 손님이 왔습니다.
자기 것 중에 잡아서 손님에게 대접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그 부자는 가난한 사람의 전부인 암양을 빼앗아 그 손님에게 대접합니다.
다윗이 이 이야기를 듣고 뭐라고 말했을까요?
삼하12:5-6절 “이때 다윗은 크게 격분하며 말하였다.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지만 누구든지 그런 짓을
한 사람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
그는 그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런 짓을 했으니
그 새끼 양의 네배를 그에게 배상해 주어야 한다.
그때 나단 선지가가 대답합니다 “왕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7절).
그때 다윗의 눈이 열렸습니다.
다윗은 진리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이야기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합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인간은 각자의 사연을 이야기로 말합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은 인생의 말년에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씁니다.
예수님께서도 천국 복음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이야기를 사용하셔서 가르치셨습니다.
톰 라이트 “성경은 세상 전체에 대한 진실된 하나의 이야기를 제공한다.
그것은 공적인 진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삶의 이야기를 하나님의 이야기에 비추어 봅니
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안에 죄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의 이야기가 우리의 삶의 이야기 안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이야기가 나의 삶의 이야기를 대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화' 입니다.
우리의 절박한 기도의 응답의 지체되는 가운데,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를 구할 때,
우리는 불안이나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를 구할 때,
하나님의 이야기가 오히려 우리를 채우고 성령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성품으로 빚으십니다.
그리고 다윗은 절박한 기다림 가운데 한 가지를 더 덧붙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5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이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문제 앞에서
우리가 소유해야 할 신앙의 중요한 자세는
바로 기다림입니다.
1)다윗은 그의 인생의 위기와 문제 앞에서 철저히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스스로 왕위에 오른 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친히 세우신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아 예수님의 생애조차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시며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사명을 기다리고 인내하시는 삶이셨습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는 하늘 위에서도 “때가차매,”
하나님께서 정하신 성육신 사건을 기다리셨고,
하늘 아래에서도 33년을 사시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해 기다리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인생이 곧 기다림의 인생이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절박한 상황 가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주님을 기다리며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저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이사야서 40장 31절을 읽겠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앙망하다 kana: to wait for
결론 : 기다림의 능력을 상실한 시대 속에서 우리가 기다림의 능력을
회복시키는 방법은 바로 기도 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며 기도할 때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가르쳐주시기를 간청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를 구할 때
하나님의 이야기는 날마다 우리의 삶을 풍성히 채우고
우리를 하나님의 성품으로 빚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응답이 지체될지라도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고 기다릴 때
우리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끝까지 지치지 않도록
날마다 새 힘을 공급하실 것입니다.
3부예배
기다림의 능력을 소유하는 방법(시편25 : 1ㅡ5)
시므온은 하나님 말씀이 희미한 암흑기에 성령님을 통해
그가 죽기 전에 그의 눈으로 메시아를 보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시므온은 일평생 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메시아가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기다려온 메시아를 품에 안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눅2:29-32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일생 동안 주님의 약속을 기다려온 시므온의 노래를
초대교회 시대 공예배에서 불렀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기다림이 존재합니다.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어쩔 수 없이 견뎌야만하는
그 기다림은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다리는 것 자체가 한심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기다림의 가치 기다림의 능력을 상실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 주위의 사람을 보고
주위의 현실을 보는 것이 훨씬 수월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인생의 절박한 위기 가운데 잠잠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윗의 인생에 있어서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복은
그의 문제를 하나님께 의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인생의 절박한 위기 속에서 시종일관 하나님을 잠잠히 기다리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기다림의 가치를 상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소유해야 할 능력은 바로 기다림의 능력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가 기다림의 능력을 소유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시편 25편은 다윗의 비탄시 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시가 언제 어떤 배경에서 지어졌는지 정확히 알수 없다고 말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 다윗은 원수들의 핍박으로 인하여
참혹하고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외롭고 괴로운 인생의 고난 가운데
그의 영혼은 잠잠히 기다리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다윗은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어떤 환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그의 영혼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라는 표현은
“내가 기도를 드립니다”라는 뜻 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일반적인 기도라기 보단 이보다 더 간절한 기도입니다.
이러한 간절한 의미를 담은 표현이 신24:15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끌지 말라
(중략.... )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죄가 네게로 돌아갈까 하노라”
마치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하루 삯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처럼
다윗은 가난한 마음으로 오로지 하나님만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라는
고백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주를 우러러 본다는 말은 눈을 들어서 위를 향하여 본다는 말인데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만 주목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작성한 시들을 보면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고백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몰라요.
1) 사울왕으로부터 광야에서 쫓기는 가운데
2) 적들에게 둘러 쌓여서 목숨이 풍전등화인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앞뒤로 둘러 쌓인 적들에게
그의 시선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오로지 위에 계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인간은 타인의 문제에 대해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만
자신의 문제에 대해선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우리의 시각을 넓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은 기도입니다.
필립 얀시가 쓴 <기도>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의 시선을 우리의 영혼을 들어서 위로 올려주신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올려주셔서
하나님께서 보시는 시각으로 보게끔 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걱정과 근심이 무엇으로 인해
야기된 것인지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미움과 분노가 사랑과 용서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줍니다.
- 기다림의 능력을 상실한 시대 속에서 우리가 기다림의 능력을
내가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나의 문제를 마치
위에서 내려다 보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나의 뜻'이 ‘하나님의 뜻’으로 점진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기적이란 하나님의 변화가 아니라 바로 나의 변화입니다.
또한 다윗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주의 길과 주의 도를 가르쳐달라”고 간구합니다.
4절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우리의 생각으론 ’하나님의 의로운 섭리’를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길은 오직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셔야만 알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기다림의 능력을 소유하기 위해선
진리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의로우신 섭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를 간청해야만 합니다.
5절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지금 다윗에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다른 구원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다윗의 내면의 탄식은 커져만 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탄식의 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다윗은 더욱 주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다윗은 그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은혜를 풍성히 경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다윗이 보지 못하는 더 높고 더 넓은 좋은 길 선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를 구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리고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습니다.
삼하11장을 보면 다윗이 유부녀인 밧세바와 간통을 저지릅니다.
그 과정 속에서 그는 어떠한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그저 본능적으로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그 죄악이 얼마나 큰 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다윗에게 이야기로 설명해주십니다.
이 비유가 삼하12장을 보면 나옵니다.
그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한 부자가 있었어요.
그 부자에게는 양도 많았고 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웃에는 가난한 사람이 살았어요.
그 가난한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온 재산이 오직 암양 새끼 한마리에요 양 한마리 뿐이에요.
어느 날 부자에게 손님이 왔습니다.
자기 것 중에 잡아서 손님에게 대접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그 부자는 가난한 사람의 전부인 암양을 빼앗아 그 손님에게 대접합니다.
다윗이 이 이야기를 듣고 뭐라고 말했을까요?
삼하12:5-6절 “이때 다윗은 크게 격분하며 말하였다.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지만 누구든지 그런 짓을
한 사람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
그는 그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런 짓을 했으니
그 새끼 양의 네배를 그에게 배상해 주어야 한다.
그때 나단 선지가가 대답합니다 “왕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7절).
그때 다윗의 눈이 열렸습니다.
다윗은 진리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이야기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합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인간은 각자의 사연을 이야기로 말합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은 인생의 말년에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씁니다.
예수님께서도 천국 복음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이야기를 사용하셔서 가르치셨습니다.
톰 라이트 “성경은 세상 전체에 대한 진실된 하나의 이야기를 제공한다.
그것은 공적인 진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삶의 이야기를 하나님의 이야기에 비추어 봅니
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안에 죄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의 이야기가 우리의 삶의 이야기 안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이야기가 나의 삶의 이야기를 대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화' 입니다.
우리의 절박한 기도의 응답의 지체되는 가운데,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를 구할 때,
우리는 불안이나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를 구할 때,
하나님의 이야기가 오히려 우리를 채우고 성령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성품으로 빚으십니다.
그리고 다윗은 절박한 기다림 가운데 한 가지를 더 덧붙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5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이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문제 앞에서
우리가 소유해야 할 신앙의 중요한 자세는
바로 기다림입니다.
1)다윗은 그의 인생의 위기와 문제 앞에서 철저히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스스로 왕위에 오른 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친히 세우신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아 예수님의 생애조차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시며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사명을 기다리고 인내하시는 삶이셨습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는 하늘 위에서도 “때가차매,”
하나님께서 정하신 성육신 사건을 기다리셨고,
하늘 아래에서도 33년을 사시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해 기다리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인생이 곧 기다림의 인생이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절박한 상황 가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주님을 기다리며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저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이사야서 40장 31절을 읽겠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앙망하다 kana: to wait for
결론 : 기다림의 능력을 상실한 시대 속에서 우리가 기다림의 능력을
회복시키는 방법은 바로 기도 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며 기도할 때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가르쳐주시기를 간청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를 구할 때
하나님의 이야기는 날마다 우리의 삶을 풍성히 채우고
우리를 하나님의 성품으로 빚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응답이 지체될지라도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고 기다릴 때
우리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끝까지 지치지 않도록
날마다 새 힘을 공급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