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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부
작성일
2022-08-14 09:50
조회
1036
8월 14일 2ㅡ5부 현장예배
9시 2부예배
11시_3부예배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어떻게 받을 것인가 (롬12: 1~2)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선택과 결정이 연속되는 과정’입니다.
수많은 선택 조건 속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때론 누군가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서
조언을 얻기 위해 멘토를 찾아갑니다.
성도인 우리도 신앙의 선배들을 찾아가 선택의 문제 앞에서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찾기 위해 함께 고민하곤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는 말에는
‘하나님의 생각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뉘앙스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신적인 존재의 감추어진 지식을 발견하기 애쓰는 행위’를
가리켜 소위 ‘예언’, ‘예지’라고 말한다.
사실 이러한 행위는 일반 종교에서 매우 흔한 것입니다.
과거 시카고 대학교에서 근동지역을 연구한 레오 오펜하이머 교수(1904-1974)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문서 가운데
‘점술’과 관련된 단어가 80%를 차지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듯 고대시대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개인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점’을 애용합니다.
신문을 보면 전체의 지면 중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코너가
‘오늘의 운세’라고 말합니다.
미국 전역에서 출간되는 신문들도 점성술 운세를 소개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미국 대학에서 자연과학을 배우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7%가 넘는 학생들이 점성술을 믿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점을 보는 행위에 대해 매우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생의 수많은 선택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개인이 처한 당혹스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원하시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라는 책을 를 쓴 제임스 패커는
이러한 기도행위를 ‘메세지를 가장한 육감’ 이라고 말합니다.
‘감정’에 의존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행위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를 그토록 원하지만
정작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이 갖는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 섭리’로 정의합니다.
‘섭리’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의미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결코 미리 알 수 없고
항상 일이 일어나고 난 후에야 알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경을 읽어 보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사도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구체적인 지시를 구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16:13).
더욱이 사도들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1)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2)느낌을 하나님의 응답으로 이해하는 것이나
3)꿈이나 징조를 해석하는 것과 같은 초자연적인 수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인간이
1)하나님의 모습을 보거나
2)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직접 듣거나
3)천사의 방문을 받는 일은 극히 드문 사건이었습니다.
성경이 이러한 사건들을 정확하게 기록한 이유는
“그것이 그 시대와 민족에게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이지
그러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 계시며
우리의 삶 속에서 기적을 베푸시고 역사를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이토록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스스로 드러내셔서
하나님께서 직접 명하신 말씀, 즉 율법을 통해 그리고 선지자들을 통해
자신의 말씀을 대언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특별 계시’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2)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하나님께서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성령의 영감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고 완성된 특별 계시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십니다.
바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님께서 이제는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과거 구약 시대의 인도 방식을 사용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다.’는
개념에 대해 새롭게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방식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1절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을 ‘살아있는 제사’로 드리는
구약의 제사장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살아있는 제사’(Living Sacrifice)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제사’, ‘영적인 예배’란 무엇일까요?
존 스토트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란
“성전 뜰이나 교회 건물에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의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 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일상의 삶 속에서
우리의 몸으로 영적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의식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1) 1절이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관련이 있다면
2) 2절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변화되는 것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현대인의성경>
2절 :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J.B.Phillips New Testament)
2절 “너희 주위에 있는 세상이 너희를 쥐어짜서 그 틀에 맞추게
하지 말고 하나님이 너희의 마음을 안으로부터 개조(remodule)하도록 하라”
이것은 성경 전체에 걸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너희는 이방인의 관습을 따르지 말라.”
우리는 이 세상에 너무나도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과 동일한 생각을 갖습니다.
이 세상을 본받으면 안 되는 우리가 마치 환경에 따라서
몸의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상황에 따라서(가정, 직장, 캠퍼스, 교회),
우리의 모습을 바꾸며 살아가는데 능숙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세상의 길을 따르는 것을 거부하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변화되어야만 한다.”고 명령합니다.
사도 바울이 촉구하는 “변화를 받다”(transform)는 단어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모하신 사건에서 사용됩니다.
막9: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마가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의 앞에서 “변형”되셨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변화를 받다”(transform)는 단어가
바울 서신에서 단 2번 사용됩니다 (롬12:2과&고후3:18).
이 세상과 하나님의 뜻은 완전히 상반됩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가치 체계는 반드시 충돌을 일으킵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일어나는 변화'란
세상의 기준과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는 변화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성품과 행동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2절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빚는 방법은
오직 성령님과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성령님께서는, 타락하고 부패하여 왜곡된 우리의 본성을 새롭게 재창조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온전히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새롭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의 마음과 삶의 방식을 새롭게 변화시켜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교제하는 방법 가운데
성경을 읽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교과서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성령님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워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더 잘 분별할 수 있게 되고
점진적으로 변화를 이루어 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빌2장 ‘5~8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중략>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12~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복음주의 구약신학자인, 브루스 월키(Bruce Waltke)가 쓴 책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인도>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자리를 제의를 받아들여야 할지 궁금할 때면
나는 하나님의 감추어진 뜻을 발견함으로써 그분이 내가
받아들이기를 원하시는 일자리가 무엇인지를 알려 애쓰지 않는다.
나는 단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시는지
또 나의 동기는 무엇이고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소질은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그 밖에도 나는 그리스도를 향한 나의 태도를 점검하고
일자리에 관한 구체적인 지시가 아니라
나를 향해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살핀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경건의 시간에 그런 노력을 기울일 때
나의 잘못된 영적 뿌리가 드러나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는 은혜를 누릴 때가 많다.
내가 더욱 거룩해지고 하나님을 더 많이 닮아갈수록
어떤 일자리를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를 더 잘 분별할 수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가 그만큼 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많이 닮아갈수록 우리는 수많은 선택 가운데
어떤 선택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를 더 잘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이 시대 가운데
날마다 성령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참된 인도하심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1시_3부예배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어떻게 받을 것인가 (롬12: 1~2)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선택과 결정이 연속되는 과정’입니다.
수많은 선택 조건 속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때론 누군가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서
조언을 얻기 위해 멘토를 찾아갑니다.
성도인 우리도 신앙의 선배들을 찾아가 선택의 문제 앞에서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찾기 위해 함께 고민하곤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는 말에는
‘하나님의 생각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뉘앙스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신적인 존재의 감추어진 지식을 발견하기 애쓰는 행위’를
가리켜 소위 ‘예언’, ‘예지’라고 말한다.
사실 이러한 행위는 일반 종교에서 매우 흔한 것입니다.
과거 시카고 대학교에서 근동지역을 연구한 레오 오펜하이머 교수(1904-1974)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문서 가운데
‘점술’과 관련된 단어가 80%를 차지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듯 고대시대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개인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점’을 애용합니다.
신문을 보면 전체의 지면 중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코너가
‘오늘의 운세’라고 말합니다.
미국 전역에서 출간되는 신문들도 점성술 운세를 소개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미국 대학에서 자연과학을 배우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7%가 넘는 학생들이 점성술을 믿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점을 보는 행위에 대해 매우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생의 수많은 선택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개인이 처한 당혹스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원하시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라는 책을 를 쓴 제임스 패커는
이러한 기도행위를 ‘메세지를 가장한 육감’ 이라고 말합니다.
‘감정’에 의존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행위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를 그토록 원하지만
정작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이 갖는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 섭리’로 정의합니다.
‘섭리’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의미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결코 미리 알 수 없고
항상 일이 일어나고 난 후에야 알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경을 읽어 보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사도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구체적인 지시를 구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16:13).
더욱이 사도들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1)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2)느낌을 하나님의 응답으로 이해하는 것이나
3)꿈이나 징조를 해석하는 것과 같은 초자연적인 수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인간이
1)하나님의 모습을 보거나
2)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직접 듣거나
3)천사의 방문을 받는 일은 극히 드문 사건이었습니다.
성경이 이러한 사건들을 정확하게 기록한 이유는
“그것이 그 시대와 민족에게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이지
그러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 계시며
우리의 삶 속에서 기적을 베푸시고 역사를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이토록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스스로 드러내셔서
하나님께서 직접 명하신 말씀, 즉 율법을 통해 그리고 선지자들을 통해
자신의 말씀을 대언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특별 계시’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2)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하나님께서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성령의 영감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고 완성된 특별 계시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십니다.
바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님께서 이제는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과거 구약 시대의 인도 방식을 사용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다.’는
개념에 대해 새롭게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방식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1절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을 ‘살아있는 제사’로 드리는
구약의 제사장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살아있는 제사’(Living Sacrifice)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제사’, ‘영적인 예배’란 무엇일까요?
존 스토트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란
“성전 뜰이나 교회 건물에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의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 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일상의 삶 속에서
우리의 몸으로 영적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의식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1) 1절이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관련이 있다면
2) 2절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변화되는 것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현대인의성경>
2절 :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J.B.Phillips New Testament)
2절 “너희 주위에 있는 세상이 너희를 쥐어짜서 그 틀에 맞추게
하지 말고 하나님이 너희의 마음을 안으로부터 개조(remodule)하도록 하라”
이것은 성경 전체에 걸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너희는 이방인의 관습을 따르지 말라.”
우리는 이 세상에 너무나도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과 동일한 생각을 갖습니다.
이 세상을 본받으면 안 되는 우리가 마치 환경에 따라서
몸의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상황에 따라서(가정, 직장, 캠퍼스, 교회),
우리의 모습을 바꾸며 살아가는데 능숙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세상의 길을 따르는 것을 거부하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변화되어야만 한다.”고 명령합니다.
사도 바울이 촉구하는 “변화를 받다”(transform)는 단어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모하신 사건에서 사용됩니다.
막9: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마가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의 앞에서 “변형”되셨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변화를 받다”(transform)는 단어가
바울 서신에서 단 2번 사용됩니다 (롬12:2과&고후3:18).
이 세상과 하나님의 뜻은 완전히 상반됩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가치 체계는 반드시 충돌을 일으킵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일어나는 변화'란
세상의 기준과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는 변화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성품과 행동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2절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빚는 방법은
오직 성령님과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성령님께서는, 타락하고 부패하여 왜곡된 우리의 본성을 새롭게 재창조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온전히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새롭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의 마음과 삶의 방식을 새롭게 변화시켜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교제하는 방법 가운데
성경을 읽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교과서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성령님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워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더 잘 분별할 수 있게 되고
점진적으로 변화를 이루어 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빌2장 ‘5~8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중략>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12~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복음주의 구약신학자인, 브루스 월키(Bruce Waltke)가 쓴 책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인도>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자리를 제의를 받아들여야 할지 궁금할 때면
나는 하나님의 감추어진 뜻을 발견함으로써 그분이 내가
받아들이기를 원하시는 일자리가 무엇인지를 알려 애쓰지 않는다.
나는 단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시는지
또 나의 동기는 무엇이고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소질은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그 밖에도 나는 그리스도를 향한 나의 태도를 점검하고
일자리에 관한 구체적인 지시가 아니라
나를 향해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살핀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경건의 시간에 그런 노력을 기울일 때
나의 잘못된 영적 뿌리가 드러나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는 은혜를 누릴 때가 많다.
내가 더욱 거룩해지고 하나님을 더 많이 닮아갈수록
어떤 일자리를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를 더 잘 분별할 수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가 그만큼 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많이 닮아갈수록 우리는 수많은 선택 가운데
어떤 선택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를 더 잘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이 시대 가운데
날마다 성령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참된 인도하심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