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22-02-20 09:48
조회
954
2월 20일 주일 2부-5부 예배
9시 2부예배
11시_3부 예배
'인생에도 봄은 옵니다!'(시 16:1~11 )
‘때로 고난이 인간을 짐승처럼 만들기도 한다’. ㅡ단테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고난에 대한
바른 자세와 태도가 중요합니다.
고난을 통해 삶이 깊어 지고 성숙해 지지만
고난을 통해 겸비해지고 하나님께 돌아오고 믿음으로
서는 것만은 아닙니다.
고난을 통해 삶이 얼마나 피폐해질 수 있는가.
고난을 통해서 내가 겸비해지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면 큰 복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다 아름답게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제가 최근에 손에 잡은 책 중에 귀한 책입니다.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인데
그 책에 보면 깊은 마음의 성찰이 드러납니다.
지금 암 말기인데 치료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부르실 그 날을
준비하며 마지막까지 글을 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이런 말을 합니다.
비극 속에서 보이는 영혼의 움직임이 있다.
이어령 교수는 전 세계가 알아주는 석학이었음에도 예수 믿지 않고 있는데
딸이 예수를 만나 희망을 갖고 그 딸이 혼신을 다해 복음 전해도 냉정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데 그 딸이 앞을 보지 못할 수 있다라는 치명적인
병에 걸리고 그 딸의 마지막 소원이 아빠가 예수 믿는 것이라는
편지를 접하고 하나님 제 딸을 보게 해주신다면 제가 당신께 무릎 꿇겠습니다.
기도하며 예수 믿게 되었는데....
그 딸의 고통을 통해서 그 딸의 소중한 바람을 통해 아버지는
믿음의 거목으로 신실한 크리스찬으로 성장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겸비함이 있나요 ?
가장 중요한 것은 겸비함이고 하나님께 철저하게
무릎 꿇는 현장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오만해 졌는지....
내 탓이다 라는 겸비함의 소리는 사라지고
네 탓이다. 과격하고 파격적인 소리 들만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하필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몰고
대가 지불 하셨을까요.
온 우주보다 더 귀한 독생자 아들을 통해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것은
우리가 그렇게 존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로 인생의 밤은 우리로 하여금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들고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발견하게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다양한 어두움., 고통, 눈물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신다 하셨는데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은
더 겸비해야겠구나 느끼게 됩니다
인생은 항상 오늘의 고난 앞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모든 고난이 다 사람을 좋게 만들지는 않는다’라는
단테의 고백은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줍니다.
시편 16편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이유는
이 말씀을 묵상할수록 더 짙은 말씀의 향기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믹담 ㅡ황금 시ㅡ아로 새긴다
한 사람의 인생 속에 다양한 고난 절망 속에 그를 깎아내고
빚어가시는 의미가 담겨있음을 말씀합니다
다윗이 수많은 고통을 겪는데 일생 속에 고통이 사라진 적이
없었습니다. 어릴 때에도 중년의 때에도 계속되는 고통 속에서
그는 기도 아니면 안 되는 삶을 살아갑니다.
바다가 바다다운 것은 큰 파도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처럼 우리 인생도 고난의 파도를 통해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재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1절 --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성경적 형통 ㅡ하나님이 함께 하심
*그 고난이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아로새겨 왔다.
무엇이 나의 능력이요 도움입니까?
지금 이 시간 재택치료로 인해
홀로 방치되어있는 어르신이 있다면, 동역자들이 있다면
그 고독은 치명적이 될 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여기 왜 있는가 !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 일대일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 아니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의지할 것은 오직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과연 나의 도움이 어디에서 올까 ?
성경은 형통을 말할 때 하나님 없이 잘 되는 것을
형통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형통이란 하나님 은혜, 사랑을 통해 내가 존재하는 것을 인식함을
말합니다. 내 힘, 내 능력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깊이 인식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언제 형통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드러나나요?
요셉이 형들에게 배신당하고 인생의 절망속에서 몸부림칠 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 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통해서 사는 삶이
형통의 진정한 면모임을 우리 앞에 드러냅니다.
고통을 통해 그의 영혼 속에는 하나님이 늘 존재했습니다.
*2절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그 하나님이 내 주권자로 삼고 사는 내 삶이
복되다 고백합니다.
내 영혼 속에 무엇이 새겨져 있습니까?
내가 이제 살만하다. 라는 고백 들을 하나요 ?
언제가 살만할 때 인가요 ?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권자임을
고백할 때 인생은 진정 사는 맛이 난다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인생은 빛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복인가 ?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할 때
그를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3절--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이사야 43:4)
*존귀(尊貴)
히브리말로 존귀함이란 하나님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처럼 높아지는 것을 존귀라고 말합니다
범죄한 인생이 어떻게 하나님처럼 존귀해질 수 있나요 ?
존귀함에는 구속이란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이 너무나 존귀하기에 독생자를 통하여
대가지불하고 존귀하다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치는 예수의 가치입니다.
나를 구속하시고 예수의 가치가 부여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어떤 환경의 가치가 아니라
내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인가
내가 예수의 가치이기에 존귀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의 성도 , 상속자라 부르시는 것입니다
나를 어떻게 인식 하나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왕 같은 제사장 하나님의 가치로 존귀해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치를 부여받았음을 기억하십시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죄를 삼으신 것은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기 위하여
나를 존귀한 자녀로 선포하신 사건 은혜입니다.
그 의가 존귀함입니다.
다른 종교와 기독교가 다른 것은
다른 종교는 인간을 하찮게 여기지만
성경은 아무것도 아닌 나를 존귀함으로 삼으시고
존귀한 자녀로 거듭나게 하셔서 믿음 생활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내가 예수 믿는다 하면
내가 이런 존귀한 존재구나 인식함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7절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훈계한다 라고도 합니다.
살수록 은혜는 더 선명해지는 것입니다.
*신8장 ㅡ 기억하라 기억하라
*8절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편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임재 앞에 살아갑니다
원수가 앞에 있어도 분노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 살아갑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그런 그에게 이런 시편의 고백이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그의 고난을 통해서 그 영혼이 믹담이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주권자이며 전부시다
나는 매일 그 은혜로 살아간다.
선명한 하나님의 역사가
임재 하시는 것이 진정한 핵심이었습니다.
인생의 밤이 깊어갈 때 우리가 현실 앞에 농락당하지 않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고백으로
더 짙어지는 믿음의 선언과 소중한 결단들이 우리 삶 속에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1시_3부 예배
'인생에도 봄은 옵니다!'(시 16:1~11 )
‘때로 고난이 인간을 짐승처럼 만들기도 한다’. ㅡ단테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고난에 대한
바른 자세와 태도가 중요합니다.
고난을 통해 삶이 깊어 지고 성숙해 지지만
고난을 통해 겸비해지고 하나님께 돌아오고 믿음으로
서는 것만은 아닙니다.
고난을 통해 삶이 얼마나 피폐해질 수 있는가.
고난을 통해서 내가 겸비해지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면 큰 복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다 아름답게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제가 최근에 손에 잡은 책 중에 귀한 책입니다.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인데
그 책에 보면 깊은 마음의 성찰이 드러납니다.
지금 암 말기인데 치료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부르실 그 날을
준비하며 마지막까지 글을 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이런 말을 합니다.
비극 속에서 보이는 영혼의 움직임이 있다.
이어령 교수는 전 세계가 알아주는 석학이었음에도 예수 믿지 않고 있는데
딸이 예수를 만나 희망을 갖고 그 딸이 혼신을 다해 복음 전해도 냉정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데 그 딸이 앞을 보지 못할 수 있다라는 치명적인
병에 걸리고 그 딸의 마지막 소원이 아빠가 예수 믿는 것이라는
편지를 접하고 하나님 제 딸을 보게 해주신다면 제가 당신께 무릎 꿇겠습니다.
기도하며 예수 믿게 되었는데....
그 딸의 고통을 통해서 그 딸의 소중한 바람을 통해 아버지는
믿음의 거목으로 신실한 크리스찬으로 성장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겸비함이 있나요 ?
가장 중요한 것은 겸비함이고 하나님께 철저하게
무릎 꿇는 현장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오만해 졌는지....
내 탓이다 라는 겸비함의 소리는 사라지고
네 탓이다. 과격하고 파격적인 소리 들만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하필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몰고
대가 지불 하셨을까요.
온 우주보다 더 귀한 독생자 아들을 통해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것은
우리가 그렇게 존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로 인생의 밤은 우리로 하여금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들고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발견하게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다양한 어두움., 고통, 눈물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신다 하셨는데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은
더 겸비해야겠구나 느끼게 됩니다
인생은 항상 오늘의 고난 앞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모든 고난이 다 사람을 좋게 만들지는 않는다’라는
단테의 고백은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줍니다.
시편 16편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이유는
이 말씀을 묵상할수록 더 짙은 말씀의 향기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믹담 ㅡ황금 시ㅡ아로 새긴다
한 사람의 인생 속에 다양한 고난 절망 속에 그를 깎아내고
빚어가시는 의미가 담겨있음을 말씀합니다
다윗이 수많은 고통을 겪는데 일생 속에 고통이 사라진 적이
없었습니다. 어릴 때에도 중년의 때에도 계속되는 고통 속에서
그는 기도 아니면 안 되는 삶을 살아갑니다.
바다가 바다다운 것은 큰 파도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처럼 우리 인생도 고난의 파도를 통해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재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1절 --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성경적 형통 ㅡ하나님이 함께 하심
*그 고난이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아로새겨 왔다.
무엇이 나의 능력이요 도움입니까?
지금 이 시간 재택치료로 인해
홀로 방치되어있는 어르신이 있다면, 동역자들이 있다면
그 고독은 치명적이 될 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여기 왜 있는가 !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 일대일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 아니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의지할 것은 오직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과연 나의 도움이 어디에서 올까 ?
성경은 형통을 말할 때 하나님 없이 잘 되는 것을
형통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형통이란 하나님 은혜, 사랑을 통해 내가 존재하는 것을 인식함을
말합니다. 내 힘, 내 능력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깊이 인식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언제 형통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드러나나요?
요셉이 형들에게 배신당하고 인생의 절망속에서 몸부림칠 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 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통해서 사는 삶이
형통의 진정한 면모임을 우리 앞에 드러냅니다.
고통을 통해 그의 영혼 속에는 하나님이 늘 존재했습니다.
*2절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그 하나님이 내 주권자로 삼고 사는 내 삶이
복되다 고백합니다.
내 영혼 속에 무엇이 새겨져 있습니까?
내가 이제 살만하다. 라는 고백 들을 하나요 ?
언제가 살만할 때 인가요 ?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권자임을
고백할 때 인생은 진정 사는 맛이 난다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인생은 빛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복인가 ?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할 때
그를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3절--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이사야 43:4)
*존귀(尊貴)
히브리말로 존귀함이란 하나님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처럼 높아지는 것을 존귀라고 말합니다
범죄한 인생이 어떻게 하나님처럼 존귀해질 수 있나요 ?
존귀함에는 구속이란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이 너무나 존귀하기에 독생자를 통하여
대가지불하고 존귀하다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치는 예수의 가치입니다.
나를 구속하시고 예수의 가치가 부여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어떤 환경의 가치가 아니라
내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인가
내가 예수의 가치이기에 존귀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의 성도 , 상속자라 부르시는 것입니다
나를 어떻게 인식 하나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왕 같은 제사장 하나님의 가치로 존귀해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치를 부여받았음을 기억하십시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죄를 삼으신 것은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기 위하여
나를 존귀한 자녀로 선포하신 사건 은혜입니다.
그 의가 존귀함입니다.
다른 종교와 기독교가 다른 것은
다른 종교는 인간을 하찮게 여기지만
성경은 아무것도 아닌 나를 존귀함으로 삼으시고
존귀한 자녀로 거듭나게 하셔서 믿음 생활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내가 예수 믿는다 하면
내가 이런 존귀한 존재구나 인식함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7절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훈계한다 라고도 합니다.
살수록 은혜는 더 선명해지는 것입니다.
*신8장 ㅡ 기억하라 기억하라
*8절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편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임재 앞에 살아갑니다
원수가 앞에 있어도 분노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 살아갑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그런 그에게 이런 시편의 고백이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그의 고난을 통해서 그 영혼이 믹담이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주권자이며 전부시다
나는 매일 그 은혜로 살아간다.
선명한 하나님의 역사가
임재 하시는 것이 진정한 핵심이었습니다.
인생의 밤이 깊어갈 때 우리가 현실 앞에 농락당하지 않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고백으로
더 짙어지는 믿음의 선언과 소중한 결단들이 우리 삶 속에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