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21-10-03 08:18
조회
1347
10월3일 주일1부 ㅡ5부 현장예배 & 온라인예배
11시 현장예배 & 온라인예배...
7시 1부 현장예배 & 온라인예배....
7시 1부 그레이스 엔젤스 현장예배 ....
예배가 끝나고 그레이스 엔젤스 어르신들에게
마스크를 (일주일분) 나눠드리며 인사하는 목사님과 사모님....
2부.... 9시 현장예배 & 온라인예배
이 땅에서 하늘을! (엡2:1-10)
*영원한 것에 대한 관심과 확신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크든 작든 간에 인생의 전환점을 통해서 무엇이 더 가치가 있고
또 무엇이 삶의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가를 점검해보고
다시 한번 삶을 회복하는 현장들이 존재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긴 인생을 제대로 살기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인생의 다양한 아픔과 고통을 허용하시며
그것이 단지 고통과 절망이 아니라 인생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전환점, 이정표가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전도서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솔로몬이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삶의 방향성을 보여줍니다.
아쉬운 것은 솔로몬은 평생 삶의 방향을 제대로 잡고 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시대 시대마다 많은 통치자들이나 백성들의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 솔로몬은 그러한 넉넉함 속에서 몰락해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솔로몬 때는 나라가 갈라지지 않지만
그 아들 르호보암때에 남북은 결국 분열되고
끊임없는 갈등 속으로 치닫기 시작합니다.
솔로몬 당대에만 부유함과 번영을 누렸던 사람.
그 삶을 복되다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조금 더 고난 당하더라도,
눈물로 씨를 뿌리더라도 우리 다음 세대가 더 형통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우리는 갖고 살아갑니다.
나는 누구인가 ? 인생에서 ’전환점‘은 참 중요합니다.
무엇이 인생의 방향을 새롭게 다잡고
인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성찰하게 했습니까?
요즘 ’하프타임‘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인생의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다시 한번 삶을 돌아보기 마련인데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의
중요성을 전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책의 저자 ’밥 버포드(Bob Buford)는 미국의 남쪽지역 케이블TV 회장이었습니다.
상당한 권력과 부유함을 과시하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신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요.
그런 그에게 정말 힘겨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찾아옵니다.
대학생인 외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탐험 활동을 갔다가
급류에 휩쓸려 사라져 시신도 찾을 수 없다는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받게 됩니다.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을 통해 헬리콥터까지 동원하지만
아들의 시신을 찾지 못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하류에서 시신이 발견되고
아들의 장례를 치르게 되는데 그때 저자의 인생에 방향이 바뀝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장례절차를 지켜보며 저자는 좀 더 가치 있고
영원한 곳에 자신의 삶의 방향을 두고 살 것을 소망하게 됩니다.
더 가치 있는 것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격려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습니다.
‘하프타임’은 성공을 위해서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 템포 잠깐 쉬며 인생을 제대로 달려가자는
메시지를 자신이 경험한 엄청난 고통을 통해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우리들의 신분(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인생의 고통을 다 막을 수 있으시지만 허용하신 이유가 뭘까?.
그것은 인생에서의 ‘새로운 가치와 전환점’을 찾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일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지금까지 열심을 다해
사역에 매진해왔던 동료 목회자와 사모님이 우울증과 분노로
고통 속에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일탈을 꿈꾸거나
세상 적인 즐거움을 더 추구하며 해소하겠지만 목회자 가정은
그것마저도 쉬운 것이 아닙니다. 겪어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고통스러운 마음을 가늠할 수 있을까요.
그 고통을 지켜보는 성도들은 정성과 사랑으로 직접 만든 음식을 저마다
마련해서 공급해 주며 격려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섬김과 사랑으로 우울과 분노에서 벗어나는
변화를 경험하며 삶의 전환점을 재설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경건하게 열심히 사역하며 살아온 목사에게도
이러한 삶의 방향 전환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좀 더 가치 있는 것,
좀 더 의미 있는 것에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계속되면서 많은 분들이 관계의 어려움을 비롯한 삶의 다양한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찬은 무엇으로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지금 내가 ‘바라보고 사는 대상’을 되돌아보고
성찰함으로써 재설정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에 구금되어있는 사도바울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그는 수년 동안 복음을 위해서 끊임없이 헌신했지만
결국 세번 째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황제의 죄수로 엄청난
고난의 과정을 겪으면서 로마로 이송되어 가는 중입니다.
로마에 무슨 복되고 좋은 일들이 바울을 기다리고 있었겠습니까?
그의 처지는 사슬에 묶인 초라한 죄수에 불과했습니다.
죽은 것과 다를바 없는 상태에서 2년 동안을 구금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며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인생에서의 마지막 순간인 그 시간을 바울은 담대하게 걸어갑니다.
3년 동안 목회했던 마지막 공동체라 할 수 있는 우상과 세상 가치관에 미혹되어있는
에베소교회를 향해서 그들의 신앙이 유린당하고 있음을 깨우쳐주기 위해
바울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 서신서를 보내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 것인가.
비록 현실은 땅에 딛고 살기에 매일매일 세상으로부터의
시달림을 피할 수는 없지만
과연 나는 어떤 존재이며 나의 가치관은
어디에 있는가를 바울은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당장의 이익과 즐거움이 아닌 더 숭고한 가치,
더 영원한 것에 대한 삶의 방향성을 재설정 해야함을 강조합니다.
오늘 말씀 안에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우리의 가치관을 극명하게 대비해서 설명합니다.
‘너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에베소서 2:1)
여기서 ‘너희’에는 우리도 포함이 됩니다.
즉 ‘ 허물과 죄로 죽었던, 완전히 가망이 없던 존재인 나를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단의 추종자로 하나님의 원수였던
존재였기에 매 순간마다 썩어질 것을 추구하며
철저하게 하나님의 대적자 하나님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살고 예수와 함께 하늘에 올라 사는 존재들....
바울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였던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이것이 4절의 내용입니다. 바로 인생의 ‘전환점’이죠.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지극한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에베소서 2:4)
이것은 바울의 가슴 속에 농축되어있는
‘삶의 전환점’에 대한 확신이고 감동입니다.
‘주여 뉘시옵니까’ 앞을 보지 못한 채 고백할 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나님은 그를 그 사랑으로 구속해 주시고 사도로 세워
그 위대한 직분을 위탁하신 것입니다. 그 은혜가 너무나도
사무치게 감사했기에 바울은 복음 증거만을 위해 수년 동안이나
핍박당하며 매일매일 수많은 위기를 겪으면서도
‘고단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에베소서 2:6-7)’
바울은 수많은 환란과 핍박과 고통을 겪지만
그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도가 된 이후에도 그의 과거 행적에 대한 사람들의 격렬한
비난과 정죄가 계속 되었지만 그는 그러한 공격에도
‘나는 비록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내 모든 삶의 관점,
내 모든 삶의 목적은 하늘에 있다’고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바울은 가장 부유하고
가장 화려한 에베소 공동체에게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선언합니다.
‘여러분 눈으로 보기에는 갇혀있는 어려운 삶을 살고 있지만
나는 지금 하늘에 올라앉아 세상을 사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고난도 받으나.....
우리가 무엇을 바라봅니까? 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너무나 소중한 때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딛고 살고 수많은 세상 풍랑이
내 발목을 붙들고 끊임없이 내 인생을 유린해도 나는 누구이고
내 인생의 관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점검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6절에서의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는
앞으로 이루어질 미래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그 전까지는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예수를 믿는 순간
이미 우리의 모든 소속과 모든 가치관이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보라 하늘 문이 열리고. 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서 계신 것을 보노라’
그것이 그의 관점이었습니다.
* 지금 육체의 제한성 때문에 이 땅에서 제한된 삶을 살 수밖에 없지만 '
언제나 우리의 소망과 관심은 지금 내가 하늘에 앉아 살고 있다는 확신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에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에베소서 2:7-10)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선한‘이란 말은 ’아가도스‘라는 헬라어인데,
하나님의 그 어떤 본성을 설명할 때 쓰이는 말입니다.
선한 일은 착한 일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당신의 거룩한 바램을 이루는 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당신에게 하기를 원하시는 선하신 것이 뭘까요?
그것은 나를 향한 구원이었습니다.
또 나를 통해서 누군가가 구원 얻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한 일‘입니다.
바울이 자신이 평생을 바쳐 복음 전선에 뛰어든 이유가 뭘까요?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것.
그 거룩한 구원 계획을 성취함에 있어서
그는 자신의 전 삶을 다해 사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자 가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의 만드신 나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공동체에 바랬던 간절함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바라보며
이 땅의 것들에 의해 유린당하지 않고 오늘 힘겹고
어려워도 현실 앞에 무너지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기에 누구든지 자랑치 못한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는 자랑할 수 없습니다.
은혜 아니면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사랑이나 구원이나
영생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입니다,
그 목적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그에 만드신 자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또 나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시길 원하는
그 선하신 복음을 위해서 매 순간 우리가 이 땅에서
비록 곤두박질치며 힘겹게 산다해도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바라보며 여전히 감동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안에 그런 소중한 삶의 관점이 새롭게 형성되고
견고하게 구축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1시 현장예배 & 온라인예배...
7시 1부 현장예배 & 온라인예배....
7시 1부 그레이스 엔젤스 현장예배 ....
예배가 끝나고 그레이스 엔젤스 어르신들에게
마스크를 (일주일분) 나눠드리며 인사하는 목사님과 사모님....
2부.... 9시 현장예배 & 온라인예배
이 땅에서 하늘을! (엡2:1-10)
*영원한 것에 대한 관심과 확신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크든 작든 간에 인생의 전환점을 통해서 무엇이 더 가치가 있고
또 무엇이 삶의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가를 점검해보고
다시 한번 삶을 회복하는 현장들이 존재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긴 인생을 제대로 살기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인생의 다양한 아픔과 고통을 허용하시며
그것이 단지 고통과 절망이 아니라 인생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전환점, 이정표가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전도서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솔로몬이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삶의 방향성을 보여줍니다.
아쉬운 것은 솔로몬은 평생 삶의 방향을 제대로 잡고 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시대 시대마다 많은 통치자들이나 백성들의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 솔로몬은 그러한 넉넉함 속에서 몰락해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솔로몬 때는 나라가 갈라지지 않지만
그 아들 르호보암때에 남북은 결국 분열되고
끊임없는 갈등 속으로 치닫기 시작합니다.
솔로몬 당대에만 부유함과 번영을 누렸던 사람.
그 삶을 복되다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조금 더 고난 당하더라도,
눈물로 씨를 뿌리더라도 우리 다음 세대가 더 형통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우리는 갖고 살아갑니다.
나는 누구인가 ? 인생에서 ’전환점‘은 참 중요합니다.
무엇이 인생의 방향을 새롭게 다잡고
인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성찰하게 했습니까?
요즘 ’하프타임‘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인생의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다시 한번 삶을 돌아보기 마련인데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의
중요성을 전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책의 저자 ’밥 버포드(Bob Buford)는 미국의 남쪽지역 케이블TV 회장이었습니다.
상당한 권력과 부유함을 과시하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신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요.
그런 그에게 정말 힘겨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찾아옵니다.
대학생인 외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탐험 활동을 갔다가
급류에 휩쓸려 사라져 시신도 찾을 수 없다는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받게 됩니다.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을 통해 헬리콥터까지 동원하지만
아들의 시신을 찾지 못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하류에서 시신이 발견되고
아들의 장례를 치르게 되는데 그때 저자의 인생에 방향이 바뀝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장례절차를 지켜보며 저자는 좀 더 가치 있고
영원한 곳에 자신의 삶의 방향을 두고 살 것을 소망하게 됩니다.
더 가치 있는 것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격려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습니다.
‘하프타임’은 성공을 위해서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 템포 잠깐 쉬며 인생을 제대로 달려가자는
메시지를 자신이 경험한 엄청난 고통을 통해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우리들의 신분(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인생의 고통을 다 막을 수 있으시지만 허용하신 이유가 뭘까?.
그것은 인생에서의 ‘새로운 가치와 전환점’을 찾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일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지금까지 열심을 다해
사역에 매진해왔던 동료 목회자와 사모님이 우울증과 분노로
고통 속에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일탈을 꿈꾸거나
세상 적인 즐거움을 더 추구하며 해소하겠지만 목회자 가정은
그것마저도 쉬운 것이 아닙니다. 겪어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고통스러운 마음을 가늠할 수 있을까요.
그 고통을 지켜보는 성도들은 정성과 사랑으로 직접 만든 음식을 저마다
마련해서 공급해 주며 격려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섬김과 사랑으로 우울과 분노에서 벗어나는
변화를 경험하며 삶의 전환점을 재설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경건하게 열심히 사역하며 살아온 목사에게도
이러한 삶의 방향 전환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좀 더 가치 있는 것,
좀 더 의미 있는 것에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계속되면서 많은 분들이 관계의 어려움을 비롯한 삶의 다양한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찬은 무엇으로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지금 내가 ‘바라보고 사는 대상’을 되돌아보고
성찰함으로써 재설정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에 구금되어있는 사도바울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그는 수년 동안 복음을 위해서 끊임없이 헌신했지만
결국 세번 째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황제의 죄수로 엄청난
고난의 과정을 겪으면서 로마로 이송되어 가는 중입니다.
로마에 무슨 복되고 좋은 일들이 바울을 기다리고 있었겠습니까?
그의 처지는 사슬에 묶인 초라한 죄수에 불과했습니다.
죽은 것과 다를바 없는 상태에서 2년 동안을 구금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며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인생에서의 마지막 순간인 그 시간을 바울은 담대하게 걸어갑니다.
3년 동안 목회했던 마지막 공동체라 할 수 있는 우상과 세상 가치관에 미혹되어있는
에베소교회를 향해서 그들의 신앙이 유린당하고 있음을 깨우쳐주기 위해
바울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 서신서를 보내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 것인가.
비록 현실은 땅에 딛고 살기에 매일매일 세상으로부터의
시달림을 피할 수는 없지만
과연 나는 어떤 존재이며 나의 가치관은
어디에 있는가를 바울은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당장의 이익과 즐거움이 아닌 더 숭고한 가치,
더 영원한 것에 대한 삶의 방향성을 재설정 해야함을 강조합니다.
오늘 말씀 안에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우리의 가치관을 극명하게 대비해서 설명합니다.
‘너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에베소서 2:1)
여기서 ‘너희’에는 우리도 포함이 됩니다.
즉 ‘ 허물과 죄로 죽었던, 완전히 가망이 없던 존재인 나를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단의 추종자로 하나님의 원수였던
존재였기에 매 순간마다 썩어질 것을 추구하며
철저하게 하나님의 대적자 하나님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살고 예수와 함께 하늘에 올라 사는 존재들....
바울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였던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이것이 4절의 내용입니다. 바로 인생의 ‘전환점’이죠.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지극한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에베소서 2:4)
이것은 바울의 가슴 속에 농축되어있는
‘삶의 전환점’에 대한 확신이고 감동입니다.
‘주여 뉘시옵니까’ 앞을 보지 못한 채 고백할 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나님은 그를 그 사랑으로 구속해 주시고 사도로 세워
그 위대한 직분을 위탁하신 것입니다. 그 은혜가 너무나도
사무치게 감사했기에 바울은 복음 증거만을 위해 수년 동안이나
핍박당하며 매일매일 수많은 위기를 겪으면서도
‘고단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에베소서 2:6-7)’
바울은 수많은 환란과 핍박과 고통을 겪지만
그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도가 된 이후에도 그의 과거 행적에 대한 사람들의 격렬한
비난과 정죄가 계속 되었지만 그는 그러한 공격에도
‘나는 비록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내 모든 삶의 관점,
내 모든 삶의 목적은 하늘에 있다’고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바울은 가장 부유하고
가장 화려한 에베소 공동체에게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선언합니다.
‘여러분 눈으로 보기에는 갇혀있는 어려운 삶을 살고 있지만
나는 지금 하늘에 올라앉아 세상을 사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고난도 받으나.....
우리가 무엇을 바라봅니까? 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너무나 소중한 때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딛고 살고 수많은 세상 풍랑이
내 발목을 붙들고 끊임없이 내 인생을 유린해도 나는 누구이고
내 인생의 관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점검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6절에서의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는
앞으로 이루어질 미래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그 전까지는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예수를 믿는 순간
이미 우리의 모든 소속과 모든 가치관이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보라 하늘 문이 열리고. 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서 계신 것을 보노라’
그것이 그의 관점이었습니다.
* 지금 육체의 제한성 때문에 이 땅에서 제한된 삶을 살 수밖에 없지만 '
언제나 우리의 소망과 관심은 지금 내가 하늘에 앉아 살고 있다는 확신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에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에베소서 2:7-10)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선한‘이란 말은 ’아가도스‘라는 헬라어인데,
하나님의 그 어떤 본성을 설명할 때 쓰이는 말입니다.
선한 일은 착한 일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당신의 거룩한 바램을 이루는 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당신에게 하기를 원하시는 선하신 것이 뭘까요?
그것은 나를 향한 구원이었습니다.
또 나를 통해서 누군가가 구원 얻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한 일‘입니다.
바울이 자신이 평생을 바쳐 복음 전선에 뛰어든 이유가 뭘까요?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것.
그 거룩한 구원 계획을 성취함에 있어서
그는 자신의 전 삶을 다해 사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자 가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의 만드신 나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공동체에 바랬던 간절함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바라보며
이 땅의 것들에 의해 유린당하지 않고 오늘 힘겹고
어려워도 현실 앞에 무너지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기에 누구든지 자랑치 못한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는 자랑할 수 없습니다.
은혜 아니면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사랑이나 구원이나
영생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입니다,
그 목적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그에 만드신 자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또 나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시길 원하는
그 선하신 복음을 위해서 매 순간 우리가 이 땅에서
비록 곤두박질치며 힘겹게 산다해도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바라보며 여전히 감동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안에 그런 소중한 삶의 관점이 새롭게 형성되고
견고하게 구축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