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21-09-05 07:09
조회
1352
9월5일 주일1부 -5부 현장예배& 온라인예배
9시....2부 현장예배 & 온라인예배......
3부.... 11시 현장예배 & 온라인예배
7시..... 1부 그레이스 엔젤스 현장예배 & 온라인예배
1부예배가 끝나고 그레이스 엔젤스 어르신들에게 마스크를 나눠드리고 있는
목사님과 사모님...
복음! (III) 롬 1:11--17
소망이 끊어진 자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
우리가 ‘소망이 없다’라는 말을 하면 굉장히 암울한 느낌이 듭니다.
‘소망이 없다’ 하는 것은 가령 중환자실에서 호흡이 가빠진다거나
사업상 큰 어려움을 겪어서 부도 위기에 몰리는 상황 등을 떠올릴 수 있는데
성경은 그런 것들을 ‘소망이 없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 없는 영혼들, 아직도 복음에 대해서 반응하지 않는
그런 영혼들을 향해서 ‘소망이 없다’라고 합니다
.
*근본적으로 가망이 없던 ‘나’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3)
우리는 과거 절대 절망의 삶을 살던 존재들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문제’였습니다.
그 소망 없던 존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그분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축복을 누렸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과연 어떤 삶이 복된 삶일까. 성경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공동체를 방문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들은 이미 대부분 예수를 믿고 있었고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에서 자신들의 신앙에 대해 은근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공동체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방문해서 ‘성령의 선물’을 나눠주고 싶어했습니다.
‘가장 본질적인 복음’, 즉 기쁜 소식,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이었습니다.
복음의 핵심이 뭔가요? 그것은 ‘우리가 소망이 없던 존재들’이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지극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그 죽음의 절망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확정하는 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허물로 죄로 죽었던 나를 살리시기 위한 하나님의 긍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에베소서 2장 1절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너희의 허물과 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너희의 허물과 주로 죽을 뻔’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행위가 완료된 ‘과거 완료’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의 댓가인 사망을. 예수께서 대신 지불하하시고
우리를 생명으로 이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댓가 지불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 자녀 되게 하시고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십자가였습니다. 성부께서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그 시간을 감내하심으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상속자로 세워진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소식
복음은 마땅하고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들을수록 우리가슴속에
항상 ‘경이로움’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의로로 말미암아 나를 구속하셨구나!’
복음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감동으로 우리 가슴속에 자리매김하고 있어야 합니다.
1.복음만이 능력이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에스겔 37:3-4)
복음은 능력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입니다.
지금도 예외가 없습니다. 에스겔서 31장은 하나님의 세계를 통해
기가 막힌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비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이끌어 거대한 골짜기로 인도하십니다.
거기에는 온통 마른 뼈가 가득 널려 있었습니다.
아마 에스겔은 그 절망이 감도는 상황에서 엄청난 공포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때 음성이 들려옵니다. ‘에스겔아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방금 죽었던 사람이 아닌 이미죽어 남은 뼈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대언합니다,
뼈들아 서로 조합되어서 그 뼈에 살이 덮이고 근육이 생기고 살까지 덮여서
군대가 되라 명했더니 놀랍게도 말씀대로 하나의 군대가 됩니다.
하지만 생기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강력한 군대가 되었다 해도
생명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지요, 에스겔의 고백처럼 모든 것은 ‘주께서 하십니다’.
생명임을 선언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생기없는 마른 뼈들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명하라 하십니다. ‘생기야 동서남북에서 불어와 이 죽음당한
자들에게 들어가 살게 하라’ 여기서 ‘생기’는 성령의 구약적인 표현입니다.
곧 그들 속에 성령이 임하셔서 하나님의 큰 군대로 세워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의 능력 즉 복음을 통해 죽은 자를 살리시는
위대한 역사를 드러낼 것을 선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다 그런 메마른 뼈들이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전혀 스스로 반응할 수도 일어설 수도 없는
그런 무능한 존재였던 나를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갖춰지게 하시고
예수를 주로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상속자가 되게 하실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복음은 생명력입니다.
그 복음만이 우리를 일으키는 능력이자 우리를 살리는
유일한 근원이라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2.복음만이 생명을 살린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 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에스겔 37:5)
3.복음은 은혜를 더욱 강화시킨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라디아서 2:16)
매 주일마다 우리가 복음을 듣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교회에 처음 나오는 사람을 말씀과 성령을 통해 살리는,
즉 골짜기의 마른 뼈가 살아나는 것처럼 놀라운 기적들을 경험하기 위함입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과거 내가 이러한 존재였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은혜에 감동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복음은 우리 안에 있는 은혜를 더욱더 강화시켜 우리의 어떤 공로나 종교성,
열심이 아닌 오직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내가 자녀가 되었고
그 능력으로 산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하게 해줍니다.
갈라디아서 2장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종교성이나 열심, 공로가 아닙니다.
여기서 유심히 봐야 할 단어가 ‘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성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을 동의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 ‘안다’의 의미는 ‘지정의’입니다.
즉, 머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 가슴이 전인격적으로 동의하고
철저하게 그것에 위탁하는 삶을 사는 것을 ‘안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더 풍성하게 누리기 위한 비결
1,예배에 대한 전 마음
A.W토저
“예배는 교회가 잃어버린 보석이다.”
Worth-Ship---‘어떤 대상의 가치 있음을 인정함.’
구원을 얻어 내가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나 인간의 공로,
어떤 종교성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함을
전인격으로 알고 살아가는 모든 삶의 현장이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동으로 채워지는 삶을
성경은 ‘건강한 만찬의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속에 그 은혜를 더욱더 풍성하게 채우는 놀라운 비결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배에 대한 갈망입니다. 우리는 왜 예배를 사모할까요?
예배가 회복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그것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복음에 대해서
깊이 성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사는 것이 예배가 주는 진정한 은총인 것입니다.
*구약---아바드--무릎꿇고 경배하다.
*신약---프로스쿠네오--입맞추다.
*예배-----하나님을 높이고 받들어 섬기는 전인격적인 행동
구약에서 ‘무릎꿇고 경배한다’는 의미의 ‘아바드’라는 단어로 예배를 표현합니다.
고대 시대에서는 왕 앞에 나갈 때 왕의 얼굴이 보이기도 전부터
바닥을 기어서 나아갔어야만 했습니다. 그게 ‘아바드’입니다.
신약에 와서 예배의 의미는 예수의 십자가 죽으신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완전히 다른 의미로 형성됩니다.
바로 ‘입 맞추다’의 뜻으로 ‘프로스쿠네오’입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아빠 엄마에게 입 맞추듯이
예배는 그런 소중한 은총의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두려움의 시간이 아닌 은총의 시간이 됩니다.
2.소그룹에 적극 참여
아무리 신앙 경력이 많고 성경지식이 많다 해도
소그룹모임을 통한 나눔이 없다면 신앙생활은 사실상 단절될 수밖에 없습니다.
때때로 영적으로 쇠진할 때에도 모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임할 때 우리는 다시 한번 회복되고 소생하는 ‘역동성’을 가지게 됩니다.
3.복음 증거에 주력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디모데후서 4:2)
복음 증거는 우리 자신을 더 새롭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자’라는 말을 그저 안 믿는 사람을 구원 얻게 하고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만 이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복음 증거는 먼저 나를 살리는 ‘능력’입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내가 먼저 복음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이 내 마음을 먼저 관통해야 비로소 전할 수 있습니다.
즉, 복음 증거는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임을 확증하는
현장임과 동시에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위대한 생명력을 가집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디모데후서 4:2)
우리는 오래 참음과 기다림을 통해 삶의 새로운 힘을 공급받습니다.
즉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며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그토록 간절하게 로마 공동체에 전하고 싶었던 말씀이었습니다.
어느덧 9월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가득한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절망을 이야기 하지만
우리는 복음만이 이 땅을 살리는 유일한 희망이며 복음만이 회복시킬 수 있음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했으면 합니다. 절대 절망 가운데서
얻은 하나님의 생명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전함으로 이 땅을 회복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부.... 11시 현장예배 & 온라인예배
7시..... 1부 그레이스 엔젤스 현장예배 & 온라인예배
1부예배가 끝나고 그레이스 엔젤스 어르신들에게 마스크를 나눠드리고 있는
목사님과 사모님...
복음! (III) 롬 1:11--17
소망이 끊어진 자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
우리가 ‘소망이 없다’라는 말을 하면 굉장히 암울한 느낌이 듭니다.
‘소망이 없다’ 하는 것은 가령 중환자실에서 호흡이 가빠진다거나
사업상 큰 어려움을 겪어서 부도 위기에 몰리는 상황 등을 떠올릴 수 있는데
성경은 그런 것들을 ‘소망이 없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 없는 영혼들, 아직도 복음에 대해서 반응하지 않는
그런 영혼들을 향해서 ‘소망이 없다’라고 합니다
.
*근본적으로 가망이 없던 ‘나’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3)
우리는 과거 절대 절망의 삶을 살던 존재들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문제’였습니다.
그 소망 없던 존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그분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축복을 누렸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과연 어떤 삶이 복된 삶일까. 성경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공동체를 방문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들은 이미 대부분 예수를 믿고 있었고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에서 자신들의 신앙에 대해 은근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공동체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방문해서 ‘성령의 선물’을 나눠주고 싶어했습니다.
‘가장 본질적인 복음’, 즉 기쁜 소식,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이었습니다.
복음의 핵심이 뭔가요? 그것은 ‘우리가 소망이 없던 존재들’이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지극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그 죽음의 절망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확정하는 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허물로 죄로 죽었던 나를 살리시기 위한 하나님의 긍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에베소서 2장 1절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너희의 허물과 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너희의 허물과 주로 죽을 뻔’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행위가 완료된 ‘과거 완료’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의 댓가인 사망을. 예수께서 대신 지불하하시고
우리를 생명으로 이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댓가 지불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 자녀 되게 하시고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십자가였습니다. 성부께서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그 시간을 감내하심으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상속자로 세워진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소식
복음은 마땅하고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들을수록 우리가슴속에
항상 ‘경이로움’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의로로 말미암아 나를 구속하셨구나!’
복음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감동으로 우리 가슴속에 자리매김하고 있어야 합니다.
1.복음만이 능력이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에스겔 37:3-4)
복음은 능력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입니다.
지금도 예외가 없습니다. 에스겔서 31장은 하나님의 세계를 통해
기가 막힌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비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이끌어 거대한 골짜기로 인도하십니다.
거기에는 온통 마른 뼈가 가득 널려 있었습니다.
아마 에스겔은 그 절망이 감도는 상황에서 엄청난 공포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때 음성이 들려옵니다. ‘에스겔아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방금 죽었던 사람이 아닌 이미죽어 남은 뼈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대언합니다,
뼈들아 서로 조합되어서 그 뼈에 살이 덮이고 근육이 생기고 살까지 덮여서
군대가 되라 명했더니 놀랍게도 말씀대로 하나의 군대가 됩니다.
하지만 생기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강력한 군대가 되었다 해도
생명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지요, 에스겔의 고백처럼 모든 것은 ‘주께서 하십니다’.
생명임을 선언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생기없는 마른 뼈들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명하라 하십니다. ‘생기야 동서남북에서 불어와 이 죽음당한
자들에게 들어가 살게 하라’ 여기서 ‘생기’는 성령의 구약적인 표현입니다.
곧 그들 속에 성령이 임하셔서 하나님의 큰 군대로 세워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의 능력 즉 복음을 통해 죽은 자를 살리시는
위대한 역사를 드러낼 것을 선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다 그런 메마른 뼈들이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전혀 스스로 반응할 수도 일어설 수도 없는
그런 무능한 존재였던 나를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갖춰지게 하시고
예수를 주로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상속자가 되게 하실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복음은 생명력입니다.
그 복음만이 우리를 일으키는 능력이자 우리를 살리는
유일한 근원이라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2.복음만이 생명을 살린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 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에스겔 37:5)
3.복음은 은혜를 더욱 강화시킨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라디아서 2:16)
매 주일마다 우리가 복음을 듣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교회에 처음 나오는 사람을 말씀과 성령을 통해 살리는,
즉 골짜기의 마른 뼈가 살아나는 것처럼 놀라운 기적들을 경험하기 위함입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과거 내가 이러한 존재였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은혜에 감동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복음은 우리 안에 있는 은혜를 더욱더 강화시켜 우리의 어떤 공로나 종교성,
열심이 아닌 오직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내가 자녀가 되었고
그 능력으로 산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하게 해줍니다.
갈라디아서 2장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종교성이나 열심, 공로가 아닙니다.
여기서 유심히 봐야 할 단어가 ‘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성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을 동의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 ‘안다’의 의미는 ‘지정의’입니다.
즉, 머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 가슴이 전인격적으로 동의하고
철저하게 그것에 위탁하는 삶을 사는 것을 ‘안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더 풍성하게 누리기 위한 비결
1,예배에 대한 전 마음
A.W토저
“예배는 교회가 잃어버린 보석이다.”
Worth-Ship---‘어떤 대상의 가치 있음을 인정함.’
구원을 얻어 내가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나 인간의 공로,
어떤 종교성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함을
전인격으로 알고 살아가는 모든 삶의 현장이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동으로 채워지는 삶을
성경은 ‘건강한 만찬의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속에 그 은혜를 더욱더 풍성하게 채우는 놀라운 비결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배에 대한 갈망입니다. 우리는 왜 예배를 사모할까요?
예배가 회복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그것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복음에 대해서
깊이 성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사는 것이 예배가 주는 진정한 은총인 것입니다.
*구약---아바드--무릎꿇고 경배하다.
*신약---프로스쿠네오--입맞추다.
*예배-----하나님을 높이고 받들어 섬기는 전인격적인 행동
구약에서 ‘무릎꿇고 경배한다’는 의미의 ‘아바드’라는 단어로 예배를 표현합니다.
고대 시대에서는 왕 앞에 나갈 때 왕의 얼굴이 보이기도 전부터
바닥을 기어서 나아갔어야만 했습니다. 그게 ‘아바드’입니다.
신약에 와서 예배의 의미는 예수의 십자가 죽으신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완전히 다른 의미로 형성됩니다.
바로 ‘입 맞추다’의 뜻으로 ‘프로스쿠네오’입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아빠 엄마에게 입 맞추듯이
예배는 그런 소중한 은총의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두려움의 시간이 아닌 은총의 시간이 됩니다.
2.소그룹에 적극 참여
아무리 신앙 경력이 많고 성경지식이 많다 해도
소그룹모임을 통한 나눔이 없다면 신앙생활은 사실상 단절될 수밖에 없습니다.
때때로 영적으로 쇠진할 때에도 모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임할 때 우리는 다시 한번 회복되고 소생하는 ‘역동성’을 가지게 됩니다.
3.복음 증거에 주력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디모데후서 4:2)
복음 증거는 우리 자신을 더 새롭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자’라는 말을 그저 안 믿는 사람을 구원 얻게 하고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만 이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복음 증거는 먼저 나를 살리는 ‘능력’입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내가 먼저 복음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이 내 마음을 먼저 관통해야 비로소 전할 수 있습니다.
즉, 복음 증거는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임을 확증하는
현장임과 동시에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위대한 생명력을 가집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디모데후서 4:2)
우리는 오래 참음과 기다림을 통해 삶의 새로운 힘을 공급받습니다.
즉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며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그토록 간절하게 로마 공동체에 전하고 싶었던 말씀이었습니다.
어느덧 9월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가득한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절망을 이야기 하지만
우리는 복음만이 이 땅을 살리는 유일한 희망이며 복음만이 회복시킬 수 있음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했으면 합니다. 절대 절망 가운데서
얻은 하나님의 생명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전함으로 이 땅을 회복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