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20-11-01 10:47
조회
1459
11월1일 2부 3부 현장예배및 온라인예배' ㅡ광야! 말씀을 듣는 장소!'(왕상19: 9~18)
주일 2부 9시예배...
주일 3부 11시 예배....
'광야! 말씀을 듣는 장소!'(왕상19: 9~18)
데일 카네기라고 하는 사람의 인간론에 대한 이야기들이
한때 스테디셀러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인간의 관계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라는 내용인데
전 세계에 많이 팔리고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회자 되는 내용입니다.
*1936년에 출간 된 데일 카네기의‘인간관계론’
부부간의 관계, 부모 간의 관계 그 관계에 균열이 오면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모든 관계를 잘 수용해서 보다 나은 관계를 유지하고
더 행복할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태어나서 마지막까지 관계가 참 중요함을 느낍니다
그 관계 때문에 아픔도 있고 상처도 주어집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상처. 직장에서의 관계 , 친구들간의 관계
그 관계 때문에 아픔과 상처가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픔과 상처의 현장들
끊임없는 관계가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 많은 관계들이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엘리야에게도 관계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대인 관계 속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거룩한 독선(타협하지 않는)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많은 위협을 받게 되고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가 많은 능력 역사하심을 드러냈음에도 고립된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이제 족하오니 죽여 주십시오’ 하는
하나님을 경외했던 믿음의 용사가 믿음의 사람답지 않은 고백을 합니다
우리는 느낍니다
엘리야도 참 많이 힘들었구나. 관계가 단절되었을 찾아오는 고통
인생은 홀로만 존재할 수 없기에....
그 깊은 고독이 인생의 상처가 그의 인생을 힘들게 했을까 ?
우리 인생에는 다 나름대로 고독이 있습니다
군중에 섞여 있어도 고독은 존재합니다
겉으로는 웃고 대화해도 우리 속에 뭔가 나를 깊이 장악하는
어떤 그림자들이 존재합니다
가끔은 외롭다 나는 혼자다 라는... 대화를 해도 시원치 않고
관계를 해도 가슴 속에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들,,,
이것을 심리학적으로 상처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릴 때부터 세상으로 받은 상처들이 내 삶을 이렇게 힘들고
고독하고 절망하게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의 아픔, 관계의 아픔,
개인의 아픔만 바라본다면
눈을 들어 삶의 방향을 바꾸어서 하나님을 좀 더 바라보는
신앙적인 태도가 중요함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성경에 보면 그런 삶의 전환점이 중요함을 말씀합니다
인생의 절망이 있을 때.. 그것만 바라보며 더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됩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어루만지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엘리야가 들려오는 말씀이 그의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때에
그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바라보던 시선이 세상을 바라보거나 현실에 급급할 때
몰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이세벨이 여전히 기세등등할 때...
이 말 한마디에 곤비해져서 브엘세바까지 도망가고
더 깊이 들어간 광야에서 번아웃 되어 이제 족하오니 죽여 주십시오.라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으로 전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앞세우는 삶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모세도 한때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자신을 앞세울 때...무너집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봄이 가장 소중합니다.
나와 너와의 관계, 모든 관계들이 다 소중하지만
이 모든 것을 완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엘리야가 고군분투하고 위대한 능력을 만방에 드러내고 대적들을 물리쳤으나
자신이 역사의 무대에 서고 능력을 드러내는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점점 사라져가며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않을 떄 결국 그의 삶은 곤비해지는 것입니다.
*상처 입으신 하나님(?)
*이사야1:2-4--“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본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상처를 우리 앞에 드러냅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아프셨으면 이런 고백을 이사야를 통해서
드러내셨을까요.
*상처 입은 엘리야
현실 앞에 자신의 시선을 빼앗길 때 서서히 침몰해갑니다.
*스탠리 존스--“나의 믿음에는 많은 상처들이 있다”
그가 나이 80이 넘어서 했던 고백입니다.
언제 자신의 믿음의 결함을 발견했을까요?
평생 선교사로 헌신하던 그가 현실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볼 때
그런 상처들이 찾아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맥케이--“인생의 가장 치열한 전쟁은 영혼이라는
고독한 방에서 매일 매일 이루어진다”
하나님께 내 시선을 고정 시킬 것을 날마다 고백해야 합니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 시킬 때 곤비하지 않았습니다.
역할 때문에....주저 앉게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는데 그가 혼자 남았다는 고백을 합니다.
*왕상19:10--오직 나만 남았거늘
19:14--오직 나만 남았거늘
*나만 혼자 남았나이다
반복적으로 고백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 사람의 언어가 그 사람의 삶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혼자 있다고 느끼는 엘리야.
혼자 어떻게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요?
혼자 어떻게 불로 응답을 받고 어떻게 혼자 닫혔던 하늘의 문을 열었을까요 ?
하나님이 늘 그와 함께 하셨지만....
혼자 남았다는 절망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그를 무너지게 했습니다.
*여러분 언제 혼자 남았다고 느끼나요?
*당신이 낙심하거나 고독하다고 느끼는 때는?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전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다시 시선을 고정하고
세미한 그 음성을 듣고
고백하는 신앙적인 선언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리더일수록 좌절,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가 깊은 고독 속에 있을 때 음성이 들려옵니다.
광야는 말씀을 듣는 장소입니다.
모든 신앙의 선진들이 광야에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광야—미드바르(듣는다)
*왕상19:18--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이렇게 많은 사람이 너의 동지란다.
이들도 너처럼 힘들지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말씀 하는 것입니다.
과거 모세도 힘들고 외롭고 혼자라는 고립됨으로 하나님께 탄원할 때
내가 친히 너와 함께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곁에서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또한 함께 할 동역자들 그에게 붙여주십니다.
*왕상19:19--함께 세워지는 동역 자--엘리사
*요8 :29--“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항상 함께 하시는 성부를 경험합니다.
그래서 무너지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사명을 향해 나아가고
역할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시대를 보면 다양한 소리도 있고 다양한 이야기들도 들려오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오직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무릎 꿇는 삶을 관통해야 합니다.
사람의 위로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에 의해서 살아갈 때 인생은 새로운 힘을 갖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칠흑 같은 절망의 밤을 관통하고
성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십자가의 구속을 성취하시고
그 예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내가 너의 고통 눈물 죄악을 담당했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끊임없이 우리 앞에 그렇게 말씀하실 때
과연 우리는 얼마나 그 음성을 듣고 사는지...
내 시선을 얼마나 세상에 빼앗기고 살아가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우리가 했던 역할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세미한 음성을 따라 인생의 터널을 지날때나, 밝을 때나
매 순간...그 음성 앞에 무릎 꿇을 때 인생을 살아갈 동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는데
왜 우리가 절망합니까 !!
다시 한번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임재속에 우리 삶이 회복되는 크신 능력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일 3부 11시 예배....
'광야! 말씀을 듣는 장소!'(왕상19: 9~18)
데일 카네기라고 하는 사람의 인간론에 대한 이야기들이
한때 스테디셀러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인간의 관계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라는 내용인데
전 세계에 많이 팔리고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회자 되는 내용입니다.
*1936년에 출간 된 데일 카네기의‘인간관계론’
부부간의 관계, 부모 간의 관계 그 관계에 균열이 오면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모든 관계를 잘 수용해서 보다 나은 관계를 유지하고
더 행복할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태어나서 마지막까지 관계가 참 중요함을 느낍니다
그 관계 때문에 아픔도 있고 상처도 주어집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상처. 직장에서의 관계 , 친구들간의 관계
그 관계 때문에 아픔과 상처가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픔과 상처의 현장들
끊임없는 관계가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 많은 관계들이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엘리야에게도 관계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대인 관계 속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거룩한 독선(타협하지 않는)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많은 위협을 받게 되고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가 많은 능력 역사하심을 드러냈음에도 고립된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이제 족하오니 죽여 주십시오’ 하는
하나님을 경외했던 믿음의 용사가 믿음의 사람답지 않은 고백을 합니다
우리는 느낍니다
엘리야도 참 많이 힘들었구나. 관계가 단절되었을 찾아오는 고통
인생은 홀로만 존재할 수 없기에....
그 깊은 고독이 인생의 상처가 그의 인생을 힘들게 했을까 ?
우리 인생에는 다 나름대로 고독이 있습니다
군중에 섞여 있어도 고독은 존재합니다
겉으로는 웃고 대화해도 우리 속에 뭔가 나를 깊이 장악하는
어떤 그림자들이 존재합니다
가끔은 외롭다 나는 혼자다 라는... 대화를 해도 시원치 않고
관계를 해도 가슴 속에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들,,,
이것을 심리학적으로 상처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릴 때부터 세상으로 받은 상처들이 내 삶을 이렇게 힘들고
고독하고 절망하게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의 아픔, 관계의 아픔,
개인의 아픔만 바라본다면
눈을 들어 삶의 방향을 바꾸어서 하나님을 좀 더 바라보는
신앙적인 태도가 중요함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성경에 보면 그런 삶의 전환점이 중요함을 말씀합니다
인생의 절망이 있을 때.. 그것만 바라보며 더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됩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어루만지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엘리야가 들려오는 말씀이 그의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때에
그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바라보던 시선이 세상을 바라보거나 현실에 급급할 때
몰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이세벨이 여전히 기세등등할 때...
이 말 한마디에 곤비해져서 브엘세바까지 도망가고
더 깊이 들어간 광야에서 번아웃 되어 이제 족하오니 죽여 주십시오.라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으로 전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앞세우는 삶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모세도 한때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자신을 앞세울 때...무너집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봄이 가장 소중합니다.
나와 너와의 관계, 모든 관계들이 다 소중하지만
이 모든 것을 완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엘리야가 고군분투하고 위대한 능력을 만방에 드러내고 대적들을 물리쳤으나
자신이 역사의 무대에 서고 능력을 드러내는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점점 사라져가며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않을 떄 결국 그의 삶은 곤비해지는 것입니다.
*상처 입으신 하나님(?)
*이사야1:2-4--“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본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상처를 우리 앞에 드러냅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아프셨으면 이런 고백을 이사야를 통해서
드러내셨을까요.
*상처 입은 엘리야
현실 앞에 자신의 시선을 빼앗길 때 서서히 침몰해갑니다.
*스탠리 존스--“나의 믿음에는 많은 상처들이 있다”
그가 나이 80이 넘어서 했던 고백입니다.
언제 자신의 믿음의 결함을 발견했을까요?
평생 선교사로 헌신하던 그가 현실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볼 때
그런 상처들이 찾아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맥케이--“인생의 가장 치열한 전쟁은 영혼이라는
고독한 방에서 매일 매일 이루어진다”
하나님께 내 시선을 고정 시킬 것을 날마다 고백해야 합니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 시킬 때 곤비하지 않았습니다.
역할 때문에....주저 앉게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는데 그가 혼자 남았다는 고백을 합니다.
*왕상19:10--오직 나만 남았거늘
19:14--오직 나만 남았거늘
*나만 혼자 남았나이다
반복적으로 고백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 사람의 언어가 그 사람의 삶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혼자 있다고 느끼는 엘리야.
혼자 어떻게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요?
혼자 어떻게 불로 응답을 받고 어떻게 혼자 닫혔던 하늘의 문을 열었을까요 ?
하나님이 늘 그와 함께 하셨지만....
혼자 남았다는 절망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그를 무너지게 했습니다.
*여러분 언제 혼자 남았다고 느끼나요?
*당신이 낙심하거나 고독하다고 느끼는 때는?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전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다시 시선을 고정하고
세미한 그 음성을 듣고
고백하는 신앙적인 선언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리더일수록 좌절,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가 깊은 고독 속에 있을 때 음성이 들려옵니다.
광야는 말씀을 듣는 장소입니다.
모든 신앙의 선진들이 광야에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광야—미드바르(듣는다)
*왕상19:18--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이렇게 많은 사람이 너의 동지란다.
이들도 너처럼 힘들지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말씀 하는 것입니다.
과거 모세도 힘들고 외롭고 혼자라는 고립됨으로 하나님께 탄원할 때
내가 친히 너와 함께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곁에서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또한 함께 할 동역자들 그에게 붙여주십니다.
*왕상19:19--함께 세워지는 동역 자--엘리사
*요8 :29--“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항상 함께 하시는 성부를 경험합니다.
그래서 무너지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사명을 향해 나아가고
역할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시대를 보면 다양한 소리도 있고 다양한 이야기들도 들려오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오직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무릎 꿇는 삶을 관통해야 합니다.
사람의 위로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에 의해서 살아갈 때 인생은 새로운 힘을 갖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칠흑 같은 절망의 밤을 관통하고
성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십자가의 구속을 성취하시고
그 예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내가 너의 고통 눈물 죄악을 담당했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끊임없이 우리 앞에 그렇게 말씀하실 때
과연 우리는 얼마나 그 음성을 듣고 사는지...
내 시선을 얼마나 세상에 빼앗기고 살아가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우리가 했던 역할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세미한 음성을 따라 인생의 터널을 지날때나, 밝을 때나
매 순간...그 음성 앞에 무릎 꿇을 때 인생을 살아갈 동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는데
왜 우리가 절망합니까 !!
다시 한번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임재속에 우리 삶이 회복되는 크신 능력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