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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부
작성일
2019-08-1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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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
8월 11일 주일 2,3부예배 ㅡ“안아주심Ⅱ” (신명기 1:31)
“안아주심Ⅱ” (신명기 1: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신명기 1:31)
엔도 슈사쿠가 ‘나를 사랑하는 법’이라는 자신의 글에서 자신이 경험하는
소중한 고백들을 고백합니다.
그가 대단치 않은 병 때문에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바로 자기 옆 병상에는 폐암환자가 있었는데 수술을 받고
난 다음에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에 밤새도록 울부짖는 그 고통을 다 들어야 되는
그런 시간을 경험 했다고 합니다. 그 환자는 모르핀도 듣지를 않아서 비명을 지르는데
마치 그 소리가 흡사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면서 밤새도록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좀 어떻게 좀 해줬으면 좋겠다’ 싶은데 간호사들은 와서 돌아보기만 할 뿐 어떨 방법이 없는 거죠.
어떤 진통제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간호사들이 밤새도록 서로 교대하면서 이 울부짖는
환자의 손을 꼭 잡아주더라는 거죠. ‘아니 손을 잡아준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나?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한참 있다가 한 간호사에게 물었습니다.
‘간호사님 그 환자의 손을 잡아 준다고 고통이 감해지겠어요?’ 그랬더니
그 간호사가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물론 쉽지 않겠죠.
그러나 지금은 진통제도 듣지 않고 모르핀도 쓸 수 없는 그런 절박한 상황인데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고통을 같이 마음에 담고 손을 잡아주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요. 이게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랍니다.’
자 이렇게 그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공교롭게도 1년 후쯤에 자신이 큰 병에 걸려서
큰 수술을 받게 되는 처지가 있었습니다. 진정제도, 모르핀도 듣지 않는
극심한 고통을 밤새도록 경험하는데 1년 전에 자신이 목격했던
그 상황이 자신에게 나타나는 현장을 엔도 슈사쿠가 경험을 했다는 거죠.
그 극심한 고통 때문에 소리 지를 때 간호사들이 가만히 와서는 손을 꼭 잡아주더라는 거죠.
그렇게 한참을 잡고 있다가 또 다른 간호사가 와서 또 손을 잡아주는데
고통이 조금은 가라앉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아하! 1년 전에 그 환자에게 바로 이렇게 했겠구나!’ 사람이 잡아주는
그 손길 하나에도 그러한 느낌이 있고 그런 치유가 있다는 것을 그는 비로소 경험했다는
것을 자신의 글에서 고백을 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잡아주는 그 손길에도 그런 위로와 치유의 능력이 있다면
하나님이 나를 꼭 잡아주신다면 그 분이 나를 안아주신다면 얼마나
큰 위로와 소망과 치유가 우리에게 주어지겠습니까?
여러분! 참된 복이 소유에 있는 걸까요? 환경에 있는 걸까요.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누구와 함께 하는가? 성경은 참된 복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참된 복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라는 것을 우리 앞에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광야에서 때로는 모든 게 나를 떠나갑니다.
물질도, 건강도, 믿었던 사람도 우리를 떠나 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람, 인생광야에 서 계시는 하나님을
확신하는 사람, 언제나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 삶이
진정한 복의 삶인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비록 척박한 광야를 걷지만 그 광야는 그들에게 한 켠으로
복의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이 거기 우뚝 서 계셨습니다.
이집트에서 출애굽 하는 순간부터 모든 40년 광야인생에
하나님은 늘 그들과 함께하셨고 그들과 동행해 주셨습니다. 그들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임재 하셨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복이었죠.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정작 이스라엘 민족은 그것이 복이라는 것을
전혀 인식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광야 척박하기 때문에 원망했고
매일 똑같은 광야 때문에 그들은 불평하며 하나님께 대해서 다양한
가슴앓이를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그들은 경험하지를 않았습니다.
여러분! 나는 어떻습니까? 내 인생 광야를 걸으면서 힘들고 어려운 현실 때문에
‘하나님이 나와함께 하지 않는다.’ 라고 불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체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 신명기 1장을 보면 그 40년 광야가 끝나갈 때 모압 평지에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이스라엘 제 2세대에게 주는 하나님의 교훈의 말씀이 본문 속에 함축돼 있습니다.
그들은 40년 전에 출애굽 했습니다.
홍해를 건넜습니다. 광야를 걸었습니다. 그 모든 40년 여정동안에 하나님은 끊임없이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임재 해 주셨습니다. 한 번도 그들 곁을 하나님이 떠나신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동일한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하셨고, 공급하셨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끊임없는 원망과 불순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제 2세대에게 격려하는
교훈의 말씀을 담고 있는데 모세도 광야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크고 두려운 광야였다.... (신 1:19)
그러나 그 크고 두려운 광야에 늘 하나님이 함께 동행 해 주셨습니다.
또 신명기 8장 15절에 보면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라 이렇게 모세는 설명을 합니다.
두 가지죠? 크고 두려운 광야,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그렇습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저 바라본다면 크고 두려운 광야입니다.
또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본다면 단지 크고 두려운 광야만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우리 앞에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안고 오신 광야였다고 고백합니다.
31절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고난의 과정 중에 그 크고 두려운 광야 속에서 또한 광대하고 두려운 광야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친히 안고 오셨다는 것을 오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를 안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한 번도 그들을 외면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출애굽 시킨 이후에 끊임없이 함께 동행하셨습니다.
시내 산에서 그들에게 임재해주셨습니다. 쉐키나 그들을 불러내셨고,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고, 그들을 통해 당신의 영광 받을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막에 임재 하셨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스무 평밖에 안 되는
작은 천막 속에 하나님이 들어가 계시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을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와 계셨던 것입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 너희와 동행한다.
이것이 성막이 주는 진정한 가치관이었습니다. 초라한 천막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비록 초라하지만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초라하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가장 소중한 대상이 누군가요? 바로 나 자신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임재해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나와함께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우리 안에 성령이 내재하셔서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를 끊임없이 경험하도록 우리 속에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저 흙으로 빚어진 연약한 질그릇입니다.
깨지는 그릇. 무가치한 그릇입니다. 거기에 보배가 담겨있습니다.
질그릇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담긴 보배가 가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존재하시고 거룩한 예수그리스도의 임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존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존귀한 사람인 것입니다. 메이저 아이언 토마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번 읽어보죠. “당신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이것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 가질 수도 없고, 더 필요한 것도 없다.” 당신 안에 있는 예수그리스도 이것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 가질 수도 없고 더 필요한 것도 없다. 아멘!!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
이 고달픈 광야에서 매일 마다 반복되는 광야에서, 크고 두려운 광야에서,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희망을 갖는 것 아니겠습니까?
매일 마다 똑같은 광야를 걷고 매일 마다 두려운 삶의 현실 앞에 우리가 봉착하지만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그 약속 붙들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 광야가 만만치 않죠. 마치 벼랑 끝에 내몰리는 것 같고 인생의 두려움이 산적해 있는
광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용기 내어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 민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과거 어둠의 권세에게 짓밟힐 때, 열방의 소나기에 짓밟힐 때,
일제의 억압에 고통을 당할 때에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이 땅을 회복해 달라구요. 이 땅을 살려 달라구요.
그 기도가 이 민족을 여기까지 이끌어오는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무릎 꿇고 간구해야만 합니다. 우상을 버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서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는 이 민족이 될 수 있도록. 우리 개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고통과 절망 앞에 봉착 할지라도 내 홀로 두지 아니하시고
늘 함께 하시고, 늘 동행하시며, 나를 안고 가시는 하나님. 여기까지 나를 안아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다시 한 번 확신하며, 그 하나님께 삶의 모든 것을 위탁하는 삶을
결단하는 것을 성경은 신앙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 이런 기가 막힌 인생광야에서, 역사의 모든 상황에서 우리를 안고 가시는 하나님,
지금도 안고 계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 모두가 함께 경험하고, 그 하나님을 더 송축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확신하는. 그래서 모든 대적들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물리치고,
우리 삶의 모든 광야길이 끝나는 순간 하나님이 도우셨다.
하나님이 역사하셨다는 고백과 찬양이 오직 하나님께만 올려드려질 수 있는 소중한 역사가,
회복이 우리 가운데 가득히 드러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