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19-04-07 18:38
조회
1456
4월7일 주일 2,3부예배 ㅡ광야의 만나(출16:1~15)
광야의 만나(출16:1~15)
본문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원망이란 단어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신앙이었습니다.
그 원망이 감사로 바뀌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습니다.
유월절 사건 경험하고 홍해를 건너고 마라의 쓴물을 변화시킴도
경험했는데 여전히 원망합니다.
"큰 재앙은 사람을 최선으로 만들든지 아니면 최악으로 만든다."
ㅡ유진 피터슨
강력한 능력을 경험하고도 그들은 고난을 통해 성숙해 지는 것이
아니라 괴물이 되어갑니다.
*한계가 오다.ㅡ 한계가 올 때 그 사람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그나마 충분히 준비하고 나오지 않았다면
더 일찍 동이 나지 않았을까?
*더 일찍 만나가 내렸을 것
*한계에 다달았을 때
한계가 왔을 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이 드러납니다.
인간의 준비 노력이 끝났을 때
가슴속에 있던 원망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고 신뢰하는가?
ㅡ 원망하는 이스라엘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
(출애굽기 16:2)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무엇보다 원망이 앞서서는 안 되었기에...
*예전이 더 좋았다.
*애굽의 신들은 우리에게 풍요로운 먹거리를 공급해줬는데.....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애굽기 16:3)
* 원망은 단순히 불평만이 아닌 불신앙
* 하나님의 방법
*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양식
‘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출애굽기 16:4)
당신의 구원계획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주십니다.
*하늘로부터 내린 만나를 먹어도 영원히 살 수는 없다.
ㅡ하늘로부터 올 영원한 만나
ㅡ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를 믿어야 (먹어야) 영원히 산다.
광야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알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경험케 하는 소중한 과정 이었음에도.
이 모든 순간을 원망, 불평하는 것입니다
*유월절, 홍해, 만나 ㅡ모두 십자가입니다
척박하고 위험했으나 끊임없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구원의 역사를 가슴에 담을 수 있어야 함에도....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현장인데 원망합니다.
*우리 개인의 광야는 과연 어떻게 걸어가나요 ?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만이 아닌 '오직 하나님 자신을 구하는 신앙'
필요에 따라 찾는 하나님이 아닌
언제나 하나님 자신이 필요한 삶을 살라!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출애굽기 16:6-7)
하나님이 모든 것의 공급자 이심에도 ㅡ
공급하시는 하나님 일뿐만 아니라 매일 함께하시는 하나님
한계가 나타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8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출애굽기 16:8)
*만나 ㅡ만후 ㅡwhat is this ㅡ이게 뭐야?
하나님의 공급이 시작됨 ㅡ 그러나 공급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하나님 자신에게 맞춰야합니다
그 분의 사랑의 깊이, 넓이를 아는 것이 성숙이다.
공급에만 관심 갖고 그 손에 들려진 빵에만 관심 갖는다면
미숙한 것입니다.
광야를 걷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과연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나 ?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출애굽기 16:15)
*이것이 무엇이냐? (성경의 의미)
빈들에서 주린 군중들에게 오병 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
왜 그들이 굶기를 기다렸을까 ?
의도적으로 ? 제자들에게 질문하시고 어린 아이의 도시락을 통해
오병 이어의 이적을 베푸신 사건...
이 사건은 사 복음서에 다 기록 되었습니다
*빈들에서 그들이 주리고 있기에....
*주님의 전 마음과 베푸신 이적은 온전히 그들을 향하셨다
주님의 마음은 오직 그들에게 향하셨지만
그들은 빵에만 마음이 있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이유는 그 이적 때문만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라 말씀합니다.
*그 마음 ㅡ 나를 향한 그 분의 사랑 구원계획을 따라 사는 것이
신앙인의 진수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한복음 6:15,26-29)
ㅡ단순하게 빵만 바라보지 말고 생명의 말씀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6:48-51)
ㅡ 구약에서 예표 되는 만나는 신약에서 예수님의 생명과 매칭 됩니다..
그 떡은 영원한 생명의 빵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내 살을 먹는 것이
진정 사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 믿음 신앙이 무엇인가요 ?
생명의 주되신 주님 , 내게 성령 보내주셔서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아멘 함으로 ..
그분이 진정 무엇을 원하시고 무엇을 통해 영광받기 원하실까 ?
종교성에 불과한 믿음이 되어선 안 됩니다.
가슴에 감동이 있는가 ? 나를 구속하신 은혜와 사랑
영원한 생명을 공급하신 그 사랑 결코 나를 홀로두지 않는 사랑
오늘도 여전히 주님의 말씀으로 삽니다.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어야합니다
결론입니다
*광야 & 빈들
왜 요한복음은 빈들이라 했나요 ?
나의 광야는 ! 나의 빈들은 어디 인가요 ?
광야는 척박합니다.
*당신의 광야
*당신의 빈들 ㅡ 조금만 더 가면 풍요로울 수 있는데
남들은 예수 믿고 뭔가 손에 쥐었다고 환희의 개선가 부르는데
난 왜 여전히 어려운가 ?
내 손에 주어지는 빵에 대해서만 관심 갖는가 ?
영원한 생명에 관심 갖는가 ?
십자가의 의미 경험하고 영생을 소유한 감격으로 살아가는가 ?
이것이 전혀 다른 성경의 진리입니다
* 광야보다 더 힘든 곳은 빈들일 수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십자가 지심으로
여전히 빈들에서 걸어도 나는 하나님의 의미를 알고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걷겠다. 선포하며
공급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절대주권
그 분의 사랑 가슴을 바라보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의 빈들 ! 광야는 어디입니까 ?
인생의 한계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 하는가 ?
하나님의 가치, 의미 바라보고 십자가를 향해 더 나아가는 삶 되기를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은혜 앞에 더 무릎 꿇는
우리 삶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