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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부
작성일
2018-11-25 18:10
조회
1431
11월25일 주일 2,3부예배
생명을 담보로 한 복음 증거(행21:27~22:1)
우리는 사지를 향해 가는 사도바울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는 수많은 충고에도 그는 여전히 그 길을 걷습니다.
만류할 때 듣는 것이 지혜일 텐데도...
결박과 환란이 기다려도 그는 사명 때문에 여전히 그 길을 걸어갑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공동체와 더불어 하나 됨을 경험합니다.
사도행전의 주제문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것이 주님의 바람이고 성령이 오신 목적도 이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하게된 목적도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이 증거 되고 전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가 파급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기에...
바울은 예루살렘교회의 충돌을 수용 합니다
예루살렘에는 복음증거에 대한 다양한 비판세력이 등장할 수 있다
그들의 잘못된 관습과 가치관도 수용한다라는 그릇된 가치관이 난무하는데
이런 율법이나 전통이 틀리지 않았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이방인의 다양한 모습들, 세상풍조에 삶이 유린당했음으로 하나의 규례를 지키자
머리를 깎고 하나님께 온전한 번제를 드리는 정결의식을 드리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이방인의 도시에 있을 때에는 베드로가 유대 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을 때
강하게 비판했는데 그들의 모든 관습을 다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은 이 모든 교회에 권위 앞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서로 합하여 동일한 믿음 안에 나갈까 고심한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기도하며 칠일 째 하나님께 대한 규례를 지키며 예배를 드렸음에도
적대자들은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그의 수용과 관용을 통해서 드디어 어떤 열매가 맺혀지려는 때에....
그의 노력이 물거품 되는 사건이 본문에 일어납니다.
* 그러나 화근은 엉뚱한 데서 발단합니다.
본문에 보면 트집을 잡으려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다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성향이 참 중요합니다.
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목회자의 가정 안에 신앙으로 서기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앞마당과 뒷마당이 같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긴장하며 살아갑니다.
대적 자들은 바울의 약점을 잡아 공격하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 밭이 좋아야합니다.
* 마음 밭이 좋아야....
예수님께서 천국비유를 말씀하실 때 네 가지 밭의 비유를 말씀합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씨앗을 뿌리는데 결과가 다른 것은 수용하는 그 밭의 문제였습니다.
설교자에게 좋은 청중이 있는 것만큼 큰 복은 없습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책망함에도 여전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바울을 공격합니다.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마태복음 12:34-35)
*원수를 성전에서 만나다
성전에서 바울을 목격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29 이는 저희가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저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일러라.(사도행전 21:27-29)
과거 유대인들이 절기 때가 되매 성전에 방문했는데 열심히 복음전하는 바울을 보고
우리 모든 유대전통과 유대 거룩성과 성전까지 더럽히는 신성모독자라고
고발하며 공격합니다.
이것은 분명한 오해였고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악함이었습니다.
분노, 정죄감 그들을 향한 민족적인 차별의식이 그들의 가슴에 존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차별이 없으셨습니다.
이방인에게, 죄인에게, 병든 자에게도 ..
심지어 천형이라 불리었던 나병환자에게도 예수의 거룩함이
전이되도록 차별 없이 대하신 것입니다.
*곡해와 정죄
각처에서 이스라엘민족의 선민사상과 율법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도 성전으로 데리고 들어감으로 성전을 더렵혔다(?)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4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출애굽기 19:3-6)
* 선민사상 ㅡ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만을 선택하셨다.
그들의 잘못된 선민사상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독점하며 민족적 우월감을 갖는 것이
그들의 악함이며 이방인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구원을 독점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로마서 3:21-22)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로마서 3:29)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처럼 취급했기에 이 말씀에 분노한 것입니다.
*성전 지상주의
ㅡ솔로몬 성전 ㅡ주전 586년에 파괴됨
이스라엘 민족은 성전을 건축 한 후 그 신앙이 왜곡되어서
하나님을 그 성전 안에 가두려고 합니다.
나는 어떤 건물 안에 있는 우상이 아니라 난 온 우주에 있는 여호와라...
그들의 전 삶의 영역에 함께 계시기 원했는데 단지 성전 안에 계신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그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가는 모든 발걸음마다 가정, 사업장, 직장, 어디에도
우리와 함께 동행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제도 지금도 내 인생 속에 늘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진정한 임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현장이 예배가 되어야합니다
강대상 밑에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란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한복음 2:19-21)
46년 동안 지은 성전을 예수님은 사흘 동안 다시 짓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성전 되었음을 기억해야합니다.
너희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인 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건물이 성전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우리의 전 인격이 성전이란 사실입니다.
이 유대인 바울이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선민이란 호칭을 붙인자다
무리를 선동해서 즉결심판을 하려합니다.
*이제 그 성전을 오염시켰다는 죄목으로 즉결 처분하려는 바라새인들(신성 모독)
‘저희가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의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사도행전 21:31)
바울은 죽었어야 할 운명이었는데 하나님이 당신의 손길로 보호하시고 은총을 베푸십니다.
원수였던 로마의 천부장을 동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손길
32 저가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저희가 천부장과 군사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33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누구며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34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 말로, 어떤 이는 저 말로 부르짖거늘 천부장이 소동을 인하여 그 실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사도행전 21:32-34)
하나님의 선민은 인생을 길게 놓고 봐야합니다.
친밀한 친구처럼 보이는데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눈앞에 것에만 급급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원수를 통해서도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도 합니다.
천부장이 출동 합니다
사람들이 날뛴다는 소식을 듣고 출동했는데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이 천사의 손길을 통해 우리를 보호 하시나요 ?
지금은 말씀을 통해서 공동체 동역자들을 통해서...공동체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존재 합니다
공동체는 영광을 위해서도 존재하지만 내 아픔, 탄식, 눈물, 함께 공유하고
함께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이 유통될 수 있기 위해서도 존재해야 합니다.
바울을 데리고 영문으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더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뇨? 가로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사도행전 21:37)
*반역자가 아니냐?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사천의 자객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사도행전 21:38)
* 나는 길리기아 속주 다소 사람!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사도행전 21:39)
바울이 영문으로 들어가며 천부장에게 말합니다.
헬라말로 대화하는데 첫 번째 질문이...
‘반역자가 아니냐 ? 하니..
바울의 답변은 ’ 나는 길리기아 다소사람입니다 라는 대답을 하며
내게 백성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부탁을 합니다.
*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더라 (사도행전 22:1)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 받으신 바로 그 법정입니다.
* 수많은 청중들에게 들려지는 복음....
십자가에 내 몰린 그 예수가 나의 구원자시고
우리의 구원자가 되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서는 것이 바울이 지금까지 생명 내걸고 온 진정한 목적이기도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말씀합니다.
1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디모데후서 4:1-2)
* 이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그곳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복음을 증거 합니다.
*구세군의 창시자 ㅡ윌리엄 부스
노년에 합병증으로 눈이 멀게 됩니다.
눈이 보이지 않을 것이란 선고를 받고 아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합니다.
아들에게 말합니다.
아들이 나는 지금까지 눈뜨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 해왔다
이제는 내가 보지 못하는 가운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기도해야 되겠구나. 라는 고백을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내 삶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믿고 구원 얻고 천당 가고 평안하고 잘 살고 이것이 우리의 전부라면....
우린 너무나 부끄러운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때를 얻는지 못 얻는지 복음을 증거 해야 합니다.
바울처럼 이 목적을 향해 뚜벅이처럼 걸어가야 합니다.
당신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다시 한 번 복음 앞에 바로 서는 소중한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