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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부
작성일
2016-07-10 20:25
조회
2116
나의 선한 목자 예수(요10:11~15)
나의 선한 목자 예수(요10:11~15)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우리는 단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예수 없으면 우리는 존재 할 수 없다.
은혜가 나를 존재하게 하고 그 사랑이 나로 하여금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주님과 나와의 끊을 수 없는 관계 ㅡ선한 목자
하나님과 내가 얼마나 끈끈한 존재인가를 알게 합니다.
이정도 부요하면 강건하면 내 힘으로 살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말씀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사랑 아니면...
하나님이 없이는 단 한순간 살아갈 수 없음을 말씀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 입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 합니다.
우리는 선한목자 하면 좋은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양을 끌고 가는 모습들... 따뜻한 분, 사랑하시는 분이란 느낌들
그러나 이 속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마치 양에게 목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처럼...
예수 없이는 안 됩니다
아무리 부요하고 힘이 있어도 예수 없이는 안 됩니다.
하나님 없이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 우리의 죄 성입니다.
우리를 양이라고 성경이 말씀하는데 성경이 말씀하는 양은 유대광야의 양입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양은 ... 냄새나고 지저분한 존재입니다.
돼지보다 더 더러울 수 있는 존재가 유대광야의 양의 이미지란 것입니다.
양은 지독한 근시안이라 멀리 바라보지 못하면서 빨리 걷습니다.
귀는 발달되어 있어서 잘 듣지만 눈이 나쁘니까. 자신의 육감에 따라 움직입니다.
풀냄새를 맡고 향기를 따라 앞으로 마구 달려갑니다..
돌아올 길을 잘 알지 못합니다. 갈 때까지 가고난 후 돌아올 길을 알지 못하는 양
그래서 양은 목자 없이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근시안적인 삶을 삽니다. 내일 어떻게 될지 잘 알지 못합니다.
목자의 보살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양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 말씀합니다.
*선한 목자
1.요10:11- 양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목자
선한목자 = 목숨을 버린다 = 무한히 사랑한다.
* 갈 2:20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아래서 사는 것이니라.
나를 사랑하시는데 자기 몸을 버리시기까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롬 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생명을 바치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성부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에 대한
선언 이었습니다. 생명을 다하기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목숨을 버린다. - 무한히 사랑한다.
목숨을 버릴 만큼 나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생명이상의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사랑하지만 우리는 무능 할 때가 많습니다.
대신 죽고 싶지만 생명주고 싶지만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나를 사랑한 그 능력.. 그것은 진정한 사랑입니다
죄의 삯인 사망.. 우리에게 죄 없다 선언하신 것..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요한 1서 3:16--‘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셨으니
이로써 우리가 사랑을 알고.....‘
사랑을 받았기에.. 내 의지능력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목숨 버리셨기에
이제는 우리가 세상을 향해 목숨 버리는 희생을 드림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느낌이 아닙니다.
남편은 아내위해.. 아내는 남편위해 생명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가장 근접한 사랑이 부모의 사랑이겠지요.
아기 낳고 키우며 엄마의 아름다움을 다 포기하고 그 아이를 키웁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랑...부모의 사랑입니다.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시는 이중적 의미가 있습니다.
1) 우리를 자기의 양으로 삼으시기 위해서......
예수께서 왜 목숨을 내어 놓으셨나요 ?
우리의 모든 죄를 당신이 다 담당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다 용서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구속을 위해서입니다.
그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함이고
그의 살아나심으로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게 하신 것입니다.
주로 믿고 살아계신 성부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하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심장입니다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신의 심장 그 이상의
예수를 댓가로 지불하시고 예수 죽으심으로 나를 당신의 양으로 삼기 위해서
성부하나님의 심장을 주신 것입니다.
2) 모든 것을 쏟아서 지키시고 돌보시고 공급하시고 인도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구원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 출애굽 시킨 후에 그들을 광야로 내 몬 것이 아니라
우리만 이 척박한 광야로 내 몰았는가 ? 자기들만 고립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들이 간과한 것은 바로 그들과 함께 하시고 보호하시고 먹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한 것입니다
왜 시내 산에서 율법을 그들에게 선포 하셨나요 ?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 성막을 짓게 하신 이유는 내가 너희들 가운데 임재 하겠다하는
선언이었음에도... 그들은 여기에 대해 도외시하고 우리만 광야 길을 걷게 했다고
원망한 것입니다.
기억 하세요 !
세상은 다 떠나갑니다.
그러나 주님은 언제나 내 삶 한 복판에 와 계십니다.
언젠가 우리의 생명도 떠나가겠죠. 나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만은 나와함께 하세요.
우린 다 이별을 준비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 요10:28--‘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너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1.요10:14-나를 완벽하게 아시는 목자
자기 양이기에 완벽하게 아십니다. 양의 속성 감정 다 압니다
*안다—사랑하기 때문에 안다.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아는 것입니다.
*전인격적인 앎 –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안다고 생각하세요 ?
느끼지 못할 때가 많아요. 수 십년 산 부부도 서로를 잘 모릅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잘 모를 때가 있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이 말씀 합니다
요10 :14절..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이 ...
약함 눈물 좌절을 다 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자기를 오픈하는 시간들이 만만치 않습니다. 자기오픈이 있어야 치유가 시작됩니다.
오픈하지 않으면 치유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얼마나 안다고 생각하세요.
수가 성 물가에서 사마리아여인을 만나시고 그 여인의 눈물 영적인 갈망을 아셨습니다.
열 두해 동안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의 아픔도 아셨습니다.
요10장15절 ㅡ나를 아시기에... 나를 완벽하게 아시기에 기도가 참 편합니다.
제가 강단에 무릎 꿇고 기도할 때 30년간 무릎 꿇었던 의자가 있습니다.
그 의자를 사랑합니다.
그 곳에 엎드리면 제 냄새가 납니다. 그 의자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제 삶의 원동력은 그 기도의 순간이었음을 압니다.
제가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에 눈물로 드린 기도도 있지만
대부분은 동역자들의 삶이 어려울 때 더 가슴이 미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그 삶을 돌아보아 주시기를 눈물로 간구할 때가 많습니다.
인생은 겸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살아갈수록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나를 아신다는 것 ,,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할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십니다. 때로 부담감도 되지만 충분한 감격도 됩니다.
내가 기도할 수 있고 무릎 꿇을 수 있고 어루만지심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다라고 하는 목자 되신 그분이
내 마음을 다 안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카타르시스가 있고 회복이 있습니다.
오늘 예배 마치고 나가는 여러분의 가슴속에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
나를 어루만지신다는 위로와 확신 소망이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