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새 둘째날 -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라 (주일학교 2부교사들 찬양인도 )
무너진 성벽을(신앙 희망 비전) 재건하라. (느헤미야 1장 1-11절)
느헤미야 에게 들려왔던 가슴 아픈 소식ㅡ 동족들이 고통을 당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모든 동족들이 함께 알고 있었지만 한 켠에서는 이것은 내 일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그저 흘려버리지만
사명이 있는 사람들은 연민으로 창자가 끊어질 만큼의 아픔을 겪습니다.
작지만 강한, 초라하지만 큰 연민... 동정과는 다른 또 하나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그들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연민이 있었습니다.
믿지 않는 이들도 불쌍한 자들을 보며 연민을 가질 수 있는데
그것은 일반적인 사명일 수 있는데
일부는 하나님의 가슴을 조금은 소유한 마음일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본 경륜의 느낌만을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돌아보지 않으니까 결국은 할 수 밖에 없는 모습들..
나 아니면 안 된다.
내가 해야 한다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의 심장의 파편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런 연민으로 영적부담감을 가질 수 있지만
때로 사명을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하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소명 – 하나님이 세상 가운데 우리 한 사람을 부르신 것입니다
당신의 의지를 가지고 우리 개인을 부르심 (구원)이라 말하는데
성령이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아버지로 부르게 하신 것을 소명이라 합니다.
세상 가운데서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가족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처음부터 소명 받았으나 사명을 잘 알지 못합니다.
창20장에 보면 독자이삭을 번제로 드리며 자기 생명까지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미 아브라함 자신도 죽는 것입니다
* 그것이 사명입니다 행동하는 전 인격입니다.
구약에서 보면 그를 부르시는데 ... 부르심 가운데 사명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출20장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시는데
출19장에 -이제는 너희는 제사장 나라가 되라 하시고
그들을 사명자로 살게 명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사명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다음세대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를 도외시한 채 여호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시대마다 그들의 가슴을 움직이는 역동성을 가지 자들이 일어납니다.
신약에서는 우리 각 사람을 부르셔서 소명 자가 되게 하시고
사명 자가 되게 하십니다.
모두 다 사명자는 아닙니다.
사명하면 - 뭔가 교회 안에만 있어야 하는 줄 압니다. 선교사 목사만 생각하지만
우리는 부름 받고 보냄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입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명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다 불은 가지고 있지만 거기에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불꽃을 지피면 우리의 사명이 활활 타오릅니다
기도와 말씀이 공급되면 은혜로 그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 사명자는 - 부름 받은 특권을 경험하고 기도와 말씀 앞에 순복하고
내가 있는 현장에서 구체적인 행동을 감당하는 것
가정에서 직장에서 캠퍼스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본부터 충실할 때 하나님께서 모든 과정을 선용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목수로서 최선을 다하십니다.
공동체 안에서도 뭔가 기본기부터 감당해야 합니다
이 일은 너무 하찮아... 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의 열심과 하나님의 타이밍이 만날 때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최선을 다한 자들을 하나님이 부르십니다.
제자들을 부르실 때 누워 자는 사람을 부르신 적이 없습니다.
일하는 순간에 부르셨습니다.
학생들의 사명은 공부입니다
직장인들의 사명은 직장이 사명의 현장입니다 그곳에서 거룩한 역사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일하실 때 한시적인 사명도 있습니다.
부담감이나 감동으로 그 일을 하시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여전히 은혜 안에 있는가... 점검해야 합니다.
한시적인 사명은 감동이 사라지면 그만둘 수 있습니다.
간혹 목사가 영구적인 사명에 속하지만 더 이상 의욕이 사라지거나 번 아웃 되면
그만 두어야합니다.
감동 없이 여전히 그 일을 계속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기에...
* 소명 – 우리는 다 지명하여 부르셨기에 소명자입니다.
* 사명 – 모두 다 사명자는 아닙니다..
미숙하지만 감동으로 그 일을 한다면 사명자입니다.
생명력 없는 사명자, 은혜와 감동이 사라졌는데 책임 때문에 감당한다면
사명 자는 아닌 것입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 9절 - 느헤미야는 사명자 였기에 ....금식기도하며 언약을 붙들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동족을 위해서 기도할 때 회개하고 언약을 붙들고 간구하는데
너희가 돌이키면 순복하기에 때가 되었음을 자신부터 경험하는 것입니다.
* 11절 – 종의 기도를 들으소서
깨닫고 감동하는 그 한 사람 ! 행동하는 한 사람이면 충분 합니다
과거를 점검하며 기도할 때 ..그 일을 해내도록 역사하십니다 .
초대공동체는 사도들만 사명자가 아니라 모든 믿는자가 사명자로 살았습니다
은혜에 대한 감사가 지속 되는가 ?
은혜가 공급되지 않으면 위축될 수 있습니다
* 연민으로 ㅡ 끊임없이 움직이긴 쉽지 않습니다,
연민이 사명은 아닙니다 - 사명으로 움직여라
사명자가 세상으로 나가면 작은 불꽃도 큰 불꽃이 될 수 있다
*한시적 사명 ㅡ 사명자가 될 수 없다
*영구적 사명 ㅡ 매순간 말씀 .기도 행동. 책임으로 움직여야한다
소명 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 받은 우리들
보냄 받은 사명앞에 감격으로 감당하기에
매순간 말씀 .기도 행동. 책임으로 움직임으로 위대한 생명력으로
은혜와 감사와 영향력으로 파급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