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21-04-01 05:51
조회
2561
4월1일 특새 *하나님의 어린 양! (요한복음 1:29,36)
비전홀에서 우리의 다음세대들과
함께 특새 예배 드리는 모습들이 귀합니다.
특새에 드리는 간절한 기도
*하나님의 어린 양! (요한복음 1:29,36)
오늘 본문에 보면 세례요한이 어린양이로다 선포하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구약의 엘리야의 완성이라고도 말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입에서 예수를 향해서 선포하는
첫 번째 선언이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선언입니다
왜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을까 ?
세례요한은 혹시 메시아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받을만큼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광야에서 회개하라 ! 회개를 외칠 때 그 죄를 씻는 세례를 베풀면서 많은 유대인들이 베다니 요단강 강가에 있는 나룻터에서 요한에게 죄를 씻음 받는 세례를 받으며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요한 야고보도 예수님의 제자로 서기 전에 이미 세례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처음에는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듣고 가슴이 찔리고 저 사람이 메시아일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며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할 때 나는 메시아가 아니다. 나는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자다 라고 선포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세례요한을 많이 따라다닙니다.
그는 명성이 자자합니다. 공생애를 시작하는 예수께서 거룩한 구속사를 완성하기위해 세례요한에게 나오는데 요한이 그를 어린양이라고 선언합니다핵심적인 단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월절을 의미합니다. *왜 하필 양일까?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53:6)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승리와 영광이 선포되는 유월절 사건과 매칭해서 예수님을 어린 양이라고 말합니다.
근시안적인 양, 공격할 무기도 없는 양. 수동적인 양... 목자가 이끌어주지 않으면 생존하기 불가능한 존재가 양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양 같다고 말씀합니다.후각 청각도 발달 했지만 근시안이라 내일 일을 모릅니다
벼랑 끝에 서 있어도 내일을 알지 못하는 그런 약한 존재가 양의 한계입니다.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무기가 없는 약한 존재...
여러분 우리가 건강할 때 뭔가 인생이 형통할 때 내 힘으로 사는 것처럼 보여도 한계가 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절감합니다.
병원에 가보면 인간이 너무나 약합니다. ‘수치와 아픔을 감당하고 자기 의견,자기 의지가 없습니다
다 수용하고 한마디 판정을 기다리는 모습이 양처럼 약합니다. 어찌보면 소중한 경험인데 ...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죽음이 내게 찾아와도 그저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가 우리들입니다.
무지한 나. 연약한 나 인데 그럼에도 내가 무엇이 된것인 냥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왜 예수를 양이라고 할까 ? 예수가 우리의 모든 약함을 다 감당하시기에... 내 멋대로 나의 의로움으로 나의 가치관으로 내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각기 제 길로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 53:5)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 53:7)
당신에게 힘이 있음에도 뺨을 맞고 고문당하고 심문을 당하면서 어린 양으로 자신의 모든 사역을 완성합니다. 양 하면...... 아담과 하와의 수치를 덮기 위해 가죽옷을 입힐 때 가죽옷을 얻기 위해 양을 잡아야 했습니다.
인간의 수치를 가리는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만이 우리의 구원이시다 다른 종교 인간의 의로움, 오직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음을 구원의 현장이 아벨의 예배 현장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완성이 그의 열심 종교성이 아니라 민족적 우월감이 아니란 그를 위해 처절하게 희생당하실 어린양의 예표가 모리아에서 드러납니다
그런 열심, 사랑 아닙니다 그것으로 구원 얻지 못합니다. 구원의 근거는 오직 은혜로 말미암마..
준비하신 예수 그리스도 물과 피를 흘려서 우리 모든 죄를 구속하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들을 자유케 하실 진정한 능력 오직 하나님이 준비하신 어린 양이었습니다. 대속이었습니다.
그들을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구속을 통해 자유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구속사의 모든 현장마다 양이 등장합니다
구속사의 완성 사역을 성취하시는 분으로
예수님을 드러냅니다.
예언자 제사장 왕을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붓습니다. 예수가 오셔서 진정한 제사의 완성 진정한 왕으로서 당신의 메시아 사역을 시작하시는데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풉니다.
*요단강 근처 세례를 베풀던 세례 요한
메시아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메신저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 1:29)
세례요한이 말합니다 ,내 뒤에서 오실 분이 메시아시다. 이튿날 드디어 예수께서 베다니에 오십니다. 요단강 나룻터에서 세례를 베푸는데
세례는 그의 죄를 씻는다 라는 선언인데 구원의 의미만이 아니라 메시아가 오실 것을 준비하는 세례이기에 더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죄를 씻음 받는 의미도 있지만 진정한 죄를 용서하시는 메시아 앞에 그들이 나갈 수 있도록 정결한 삶으로 준비시키는 작업이었습니다.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14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태복음 3:13-17)
*예수께서 받으시는 세례
*죄의 전가
*우리의 죄를 뒤집어 쓰신 예수!
*다시 사신 예수
삼위의 하나님이 동시에 등장하는 현장입니다 세례받으시는 예수님 그 위에 임하시는 성령 메시아임을 선포하는 성부 하나님의 음성. 독립적인 삼위의 하나님을 선포하는 현장입니다.
구속사를 성취하는 성자 예수님의 세례 ‘메시아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역사하는 성령의 임재 성부, 성자, 성령께서 창조하신 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빚은 인간이었습니다’
우리가 범죄함으로 그 품성이 사라졌습니다. 사랑, 공의로움, 영생....그러나 죄가 우리를 망가지게 했고 하나님께서 창조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하는 구속사를 이루기위해 메시아가 공생애 시작하시고 거기에 삼위의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나타나셔서 기뻐하시고 선포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세례의 현장이었습니다.
세례의 진정한 면모가 같지만 다를까 ?
세례요한이 말합니다. 왜 당신이 제게 세례를 받나요? 할 때 예수님께 행하는 세례는 전혀 다른 세례완성의 세례임을 인지합니다.
* 죄의 전가
* 죽음에 대한 예고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로마서 6:3-5)
예수께서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우리는 이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당신이 죽음의 권세를 친히 뒤집어쓰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정결케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난 직후
안식일이 시작됩니다.
그 시간 동시에 유월절이 시작되기에 모든 양을 잡게 되는데 일년 된 흠 없는 양을 잡습니다.
양 같은 나를 위해서 처절하게 희생당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회복이 선언되는 것입니다.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베드로전서 2:24-25)
그분이 우리의 모든 저주, 질병, 수난 멸시 천대를 당하심으로 우리는 회복이 되었고 구원 얻었음을 선포하는데
그 날이 유월절이 아니라 이제 찬란한 부활절입니다. ‘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죽기까지 순종한 그 분’
나를 향한 삼위의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역사하심. 에수님의 순종함을 기억하며 우리 신앙이 견고하게 세워져 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