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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부
작성일
2021-02-28 08:16
조회
2167
2월28일 1부 ㅡ 5부 현장예배 ㅡ야고보VS 베드로 (행12:1~5)
7시 1부.....그레이스 엔젤스
현장예배 & 온라인예배
7시 1부예배가 끝나고 ....... 그레이스 엔젤스 어르신들에게
일주일분 마스크를 나눠드리며 인사하시는 목사님과 사모님....
2부..... 9시 현장예배 & 온라인예배
11 시 3부........ 현장예배 & 온라인예배
5부 2시......... 청년부 현장예배 & 온라인예배
야고보VS베드로(행12:1~5)
어느 때 하나님이 참 나를 사랑하신다 느끼시나요 ?
성경적으로 그 사랑을 느끼기보다는
어떤 상황과 환경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인생의 유익과, 풍요로움을 주셨기에
나를 사랑하신다 한다면
이기적인 고백일 것입니다.
독생자도 아끼지 않은 그 사랑을 이해하고 그 사랑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경험해야 하는데‘
상대적인 것, 유한한 것으로 사랑을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 본질적인 사랑을 이해해야 합니다.
내 인생 가운데 역사하신 성공신화에 대해서만 자랑한다면
거래일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새로운 통찰
두 사람의 운명이 등장합니다.
최측근에서 주님의 사랑을 받던 자들인데
한 명은 살아남고
한 명은 헤롯 아그립바 1세에게 순교 당합니다.
*순교 당하는 사도 야고보
야고보는 죽었으니 덜 사랑하셨고
베드로는 보호하셨으니 더 사랑했나?
왜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은 순교 당할까 ?
대부분 살아남은 베드로에게 관심을 두지만
순교 당한 야고보에 대해서는 관심을 덜 갖습니다.
운명인가 ? 사명인가 ?
성경은 어떤 사람을 더 하나님이 사랑 하셨다.
이 둘의 신앙을 단정 짓지 않습니다.
지금도 복잡한 삶을 살아갑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업이 잘 되는 분들이 있는가하면
어떤 분들은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 상황들을 이해할 것인가?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통찰력을 주십니다. ’
두 사람은 최측근의 제자들 이었습니다‘
중요한 메시지를 전할 때 이적을 보이실 때도
이 세 사람은 언제나 가까이 있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었습니다.
*언제나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주님을 따르던 세 사람의 제자 중 하나
가버나움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치 아니하시고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마가복음5:37-38)
*사마리안들이 배척할 때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누가복음9:54)
*보아너게 ㅡ우뢰의 아들
*변모산에서도 ㅡ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경험하게 하실 때
항상 그들을 곁에 두셨습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태복음17:1-2)
*야망을 위한 청탁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마가복음10:35-37)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마가복음10:41)
*겟세마네 기도의 현장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쌔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마가복음14:32-33)
*오른편 왼편에 있던 자들
사랑받을 만한 열심도 있었던 자들
야고보, 요한은 항상 예수님 곁에 기대어 있던 자들 이었는데....
왜 이 사람이 가장 처참한 순교를 당할까?
열두 제자 가운데 왜 하필이면.....
이 사람을 왜 제일 먼저 순교하게 하실까?
*제국을 꿈꾸던 헤롯 아그립바1세의 손에 의해 순교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사도행전12:1-2)
*순교한 야고보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쌔 때는
무교절 일이라(사도행전12:3)
*살아 남은 베드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한복음21:18)
베드로는 기적적으로 풀려나게 하시는데’
왜 야고보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야고보는 야망이 많았기에? 순교 당했다?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베드로는 야망이 없었나요?
왜 더 살려두셨나?
상대적으로 얘기합니다
한 사람은 가장 먼저 순교 당했지만
그의 형제 요한은 95세까지 살아남아서
복음증거 하게 하십니다.
*도대체 왜 ? 무슨 의미일까 ?
헛된 신화, 세상 적인 가치관. 단선적인 신앙들 때문에
하나님이 누구를 더 사랑하신 겁니까 묻는다면...
성경은 동일하게 사랑했습니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 생각, 가치관 버리고 겸비함으로 말씀 앞에 서야합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도 은혜이고
나를 부르셔도 은혜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가 ?
영생을 소유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잘살고 이 땅에서 멋지게 사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 중요한 것은
더 크고 더 위대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구원 얻었는가 ?
영생을 얻었는가?
한가지 만은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심해야 합니다
매일 고심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간증할 때 형통 ! 성공 신화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해하고 고백한다면
잘못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인생의 고통을 겪을 때
항상 무릎 꿇고 하나님께 여쭈어야 합니다,
신비로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예수 십자가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로마서14:8-9)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직 기도와 간구를 드릴 뿐
*하나님은 승자의 하나님만이 아니시다.
*고통과 은혜(프로케 쉐퍼)
장수의 복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왜 내가 여기 있는가 ?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너는 내가 너에게 요구하는 것 만큼 살았니 ? 하실 때
대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승자의 하나님만은 아니란 사실입니다.
실패한 것처럼 보여도
그 사람의 전 인격 속에 하나님을 향한 은혜에 대해 감동하며
순복 한다면...
하나님 아니면 안 됩니다 고백하는
그 사람의 하나님이란 사실입니다.
*고통이란!
*신체적, 정서적, 영적
혹은 관계적인 면에서 내적 혹은 외적 억압을 야기하는 모든경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에게는 고통의 다른 국면이 존재한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통은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해결을 요구하는 문제가 아니다.
고통은 실재(presence)를 요구하는 신비다"
ㅡ패트 러셀
고통은 지금 내가 여기 있어요.
왜 여기 있을까?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질문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깊이 성찰하고
사명이 있구나
주님께서 내게 요구 하시는 바램이 있구나 성찰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순교 당하기 전까지
복음 전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승자인 것처럼....천사가 나를 이렇게 자유케했다
간증하며 자랑에 빠져있다면 실패한 자입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여기에 있게 하셨는가 ?
목사가 기도해도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일부는 건강을 회복하기도 합니다.,
그때 느끼는 것입니다
왜 나는 여기에 있지.....신비로운 것입니다.
은혜, 십자가 만이 우리 삶 속에 전부여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충분히 신뢰하며 의지할 때
내 모든 고난은 주님의 고난에 참예 하는 것이 된다.
십자가 묵상하고 그 은혜와 사랑 안에서
충분히 신뢰할 때 우리의 모든 고난은 주님의 고난이 되고
주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이 된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나를 통해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존재함을 확인해야 합니다.
왜 살아있나요?
누군가에게 생명을 더 나누기 위해서
더 제대로 살도록 성찰하는 지혜 신앙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여기 있음이 신비로움이다
왜 내가 여기 있는가?
나를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고
하나님의 생명력이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과정을 통과해서 정상에 선다 보다.
여전히 십자가 앞에 서야 합니다.
감사가 많고 은혜가 많고 감동이 많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계속 기도해도 이루어주시지 않아도
이래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가 아니라
여전히 십자가 붙들고 사모하고 감동하여 산다면
이미 성공한 것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은혜를 알고 반응하고 감동하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 결론입니다.
우리 모든 삶의 현장에서 복이란 말로
은근히 서로 비교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우세함. 자신의 뭔가 승리를 과장할 때가 많아요
비교하며 저 사람보다는 나를 더 사랑하셔 한다면
굉장히 왜곡된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데 왜 내가 여기에 존재하는지....
십자가 바라보고 더 가치 있고 소중한 복음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행동하지 않으면 존재할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은혜만 남고 나는 존재하지 않을 때 ’
그 사랑에 감동 하는가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정말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 그런 질문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정말 사랑하신다
무엇이 사랑하는 증거일까 ?
내가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고 가슴 저미고 있는가 ?
그 사랑 때문에 존재함을 기억하는가 ?
어제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했는데
오늘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니라
내 사랑이 식은 것일 수 있습니다. .
위험한 것입니다.
구속하신 그 은혜에 사무침으로 하나님을 사랑을
기억하는 삶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7시 1부.....그레이스 엔젤스
현장예배 & 온라인예배
7시 1부예배가 끝나고 ....... 그레이스 엔젤스 어르신들에게
일주일분 마스크를 나눠드리며 인사하시는 목사님과 사모님....
2부..... 9시 현장예배 & 온라인예배
11 시 3부........ 현장예배 & 온라인예배
5부 2시......... 청년부 현장예배 & 온라인예배
야고보VS베드로(행12:1~5)
어느 때 하나님이 참 나를 사랑하신다 느끼시나요 ?
성경적으로 그 사랑을 느끼기보다는
어떤 상황과 환경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인생의 유익과, 풍요로움을 주셨기에
나를 사랑하신다 한다면
이기적인 고백일 것입니다.
독생자도 아끼지 않은 그 사랑을 이해하고 그 사랑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경험해야 하는데‘
상대적인 것, 유한한 것으로 사랑을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 본질적인 사랑을 이해해야 합니다.
내 인생 가운데 역사하신 성공신화에 대해서만 자랑한다면
거래일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새로운 통찰
두 사람의 운명이 등장합니다.
최측근에서 주님의 사랑을 받던 자들인데
한 명은 살아남고
한 명은 헤롯 아그립바 1세에게 순교 당합니다.
*순교 당하는 사도 야고보
야고보는 죽었으니 덜 사랑하셨고
베드로는 보호하셨으니 더 사랑했나?
왜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은 순교 당할까 ?
대부분 살아남은 베드로에게 관심을 두지만
순교 당한 야고보에 대해서는 관심을 덜 갖습니다.
운명인가 ? 사명인가 ?
성경은 어떤 사람을 더 하나님이 사랑 하셨다.
이 둘의 신앙을 단정 짓지 않습니다.
지금도 복잡한 삶을 살아갑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업이 잘 되는 분들이 있는가하면
어떤 분들은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 상황들을 이해할 것인가?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통찰력을 주십니다. ’
두 사람은 최측근의 제자들 이었습니다‘
중요한 메시지를 전할 때 이적을 보이실 때도
이 세 사람은 언제나 가까이 있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었습니다.
*언제나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주님을 따르던 세 사람의 제자 중 하나
가버나움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치 아니하시고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마가복음5:37-38)
*사마리안들이 배척할 때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누가복음9:54)
*보아너게 ㅡ우뢰의 아들
*변모산에서도 ㅡ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경험하게 하실 때
항상 그들을 곁에 두셨습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태복음17:1-2)
*야망을 위한 청탁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마가복음10:35-37)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마가복음10:41)
*겟세마네 기도의 현장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쌔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마가복음14:32-33)
*오른편 왼편에 있던 자들
사랑받을 만한 열심도 있었던 자들
야고보, 요한은 항상 예수님 곁에 기대어 있던 자들 이었는데....
왜 이 사람이 가장 처참한 순교를 당할까?
열두 제자 가운데 왜 하필이면.....
이 사람을 왜 제일 먼저 순교하게 하실까?
*제국을 꿈꾸던 헤롯 아그립바1세의 손에 의해 순교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사도행전12:1-2)
*순교한 야고보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쌔 때는
무교절 일이라(사도행전12:3)
*살아 남은 베드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한복음21:18)
베드로는 기적적으로 풀려나게 하시는데’
왜 야고보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야고보는 야망이 많았기에? 순교 당했다?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베드로는 야망이 없었나요?
왜 더 살려두셨나?
상대적으로 얘기합니다
한 사람은 가장 먼저 순교 당했지만
그의 형제 요한은 95세까지 살아남아서
복음증거 하게 하십니다.
*도대체 왜 ? 무슨 의미일까 ?
헛된 신화, 세상 적인 가치관. 단선적인 신앙들 때문에
하나님이 누구를 더 사랑하신 겁니까 묻는다면...
성경은 동일하게 사랑했습니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 생각, 가치관 버리고 겸비함으로 말씀 앞에 서야합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도 은혜이고
나를 부르셔도 은혜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가 ?
영생을 소유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잘살고 이 땅에서 멋지게 사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 중요한 것은
더 크고 더 위대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구원 얻었는가 ?
영생을 얻었는가?
한가지 만은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심해야 합니다
매일 고심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간증할 때 형통 ! 성공 신화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해하고 고백한다면
잘못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인생의 고통을 겪을 때
항상 무릎 꿇고 하나님께 여쭈어야 합니다,
신비로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예수 십자가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로마서14:8-9)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직 기도와 간구를 드릴 뿐
*하나님은 승자의 하나님만이 아니시다.
*고통과 은혜(프로케 쉐퍼)
장수의 복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왜 내가 여기 있는가 ?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너는 내가 너에게 요구하는 것 만큼 살았니 ? 하실 때
대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승자의 하나님만은 아니란 사실입니다.
실패한 것처럼 보여도
그 사람의 전 인격 속에 하나님을 향한 은혜에 대해 감동하며
순복 한다면...
하나님 아니면 안 됩니다 고백하는
그 사람의 하나님이란 사실입니다.
*고통이란!
*신체적, 정서적, 영적
혹은 관계적인 면에서 내적 혹은 외적 억압을 야기하는 모든경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에게는 고통의 다른 국면이 존재한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통은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해결을 요구하는 문제가 아니다.
고통은 실재(presence)를 요구하는 신비다"
ㅡ패트 러셀
고통은 지금 내가 여기 있어요.
왜 여기 있을까?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질문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깊이 성찰하고
사명이 있구나
주님께서 내게 요구 하시는 바램이 있구나 성찰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순교 당하기 전까지
복음 전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승자인 것처럼....천사가 나를 이렇게 자유케했다
간증하며 자랑에 빠져있다면 실패한 자입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여기에 있게 하셨는가 ?
목사가 기도해도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일부는 건강을 회복하기도 합니다.,
그때 느끼는 것입니다
왜 나는 여기에 있지.....신비로운 것입니다.
은혜, 십자가 만이 우리 삶 속에 전부여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충분히 신뢰하며 의지할 때
내 모든 고난은 주님의 고난에 참예 하는 것이 된다.
십자가 묵상하고 그 은혜와 사랑 안에서
충분히 신뢰할 때 우리의 모든 고난은 주님의 고난이 되고
주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이 된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나를 통해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존재함을 확인해야 합니다.
왜 살아있나요?
누군가에게 생명을 더 나누기 위해서
더 제대로 살도록 성찰하는 지혜 신앙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여기 있음이 신비로움이다
왜 내가 여기 있는가?
나를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고
하나님의 생명력이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과정을 통과해서 정상에 선다 보다.
여전히 십자가 앞에 서야 합니다.
감사가 많고 은혜가 많고 감동이 많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계속 기도해도 이루어주시지 않아도
이래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가 아니라
여전히 십자가 붙들고 사모하고 감동하여 산다면
이미 성공한 것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은혜를 알고 반응하고 감동하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 결론입니다.
우리 모든 삶의 현장에서 복이란 말로
은근히 서로 비교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우세함. 자신의 뭔가 승리를 과장할 때가 많아요
비교하며 저 사람보다는 나를 더 사랑하셔 한다면
굉장히 왜곡된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데 왜 내가 여기에 존재하는지....
십자가 바라보고 더 가치 있고 소중한 복음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행동하지 않으면 존재할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은혜만 남고 나는 존재하지 않을 때 ’
그 사랑에 감동 하는가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정말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 그런 질문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정말 사랑하신다
무엇이 사랑하는 증거일까 ?
내가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고 가슴 저미고 있는가 ?
그 사랑 때문에 존재함을 기억하는가 ?
어제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했는데
오늘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니라
내 사랑이 식은 것일 수 있습니다. .
위험한 것입니다.
구속하신 그 은혜에 사무침으로 하나님을 사랑을
기억하는 삶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