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20-04-05 10:22
조회
1399
4월 5일 주일 2부, 3부 예배 ㅡ예수! 나를 위하여! (고후5:21)
9시 ㅡ 2부 온라인예배
11시 ㅡ 3부 온라인 예배
예수! 나를 위하여! (고후5:21)
미국에 있는 기독교 단체가 미국사회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왜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가 ? 라는 질문에
나를 죄인으로 취급한다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죄인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것이 세상의 논리입니다.
죄의 노예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단어인데 세상은 거부감을 갖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불쾌 하신가요 ?
이 죄라는 말은 내게 마땅한 선언이었습니다
두렵고 무서운 말이지만 사실은 마땅한 말입니다
우리는 다 죄인이었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죄 없다 선언하셨지만
우리에게는 죄에 대한 잔재들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의롭다고 표현합니다.
어떤 나의 대가 지불 없이 일방적으로 너는 죄와 상관없다
나의 자녀, 백성, 상속자, 나의 존귀한 딸이다 하실 때 마음이 저밉니다.
우리는 은혜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나를 죄 없다 하시는 것은 오직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가 내게 왔지만 나는 값을 지불할 수 없기에 거저 주신 것 은혜입니다.
*21절--“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한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21절 본문은 짧지만 성경의 전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죄(罪) 윤리 도덕의 문제만이 아닌 절대적인 의미입니다
목적을 벗어난 의미. 떠나있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죄라는 단어가 예수님께는 존재할 수 없는 단어임에도
그분이 나를 위하여 죄가 되셨다라고 선언합니다.
* 성부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 버림 받았다라는 것은
성자 예수 그분에게는 가장 두렵고 큰 고통이었습니다.
*요8:29--나를 보내신 분이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나를 혼자 두지 않으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한 가장 절망스럽고 참혹한 단어
*죄가 되게 했다.
십자가도 굉장히 수치스러운 것이지만 죄가 되게 했다라는 것은
성자 예수가 감내하기 어려운 굉장히 무섭고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가장 악한 죄인의 자리에 섰다’
*예수 그리스도가 감당하신 십자가 ㅡ그 죄를 청산하기 위하여 감당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그 생각조차도 로마 시민 근처에 와서는 안된다”-키케로
로마시민에게는 십자가 형벌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십자가는 인간 취급 받지 못하던 자들, 노예들에게 처해 지던 형벌이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참혹한 형벌, 십자가는 그분이 가장 악한 죄인의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동물을 잡더라도 너무 잔인한 방법을 하지 못하도록 율법에서 규정합니다.
그런데 예수께는 가장 잔혹한 십자가 형벌을 택한 것입니다.
*저주 아래 있는 자
*신21:23-“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죄의 클라이막스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는 하나님을 떠나 있던 내게 마땅한 것이었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그 십자가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죄를 알지도 못하시던 분을 죄로 취급할 수 있는가?
‘우리로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불가사의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너무나도 신비한 십자가의 사건
*어떻게 의가 전혀 없는 내가 의로운 자가 되었는가?
*이 불가사의한 사실을 가능케 한 사건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신비스러운 역사
*왜 이렇게 신비스런 역사가 일어날까?
*21절--“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한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십자가의 은혜는 무엇으로도 설명할 단어가 없습니다.
나를 위해서, 나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청산하신 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이 율법주의자였고 핍박자 였습니다.
어떻게 예수가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는가 ?
자신의 생각으로 가득 찬 그가 예수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스데반을 죽이고 크리스찬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자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그 밝은 빛 앞에 그가 깊이 통찰하고 회개하고
죄인임을 고백하고 변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바울은 평생토록 소중한 고백과 더불어
오직 은혜를 고백하고 복음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罪)가 되신 이유가 누구를 위함인가?
우리가 그 십자가의 한복판을 지나가는 고난주간을 맞이합니다
그 고난과 수치가 얼마나 고통 스러울까 !
내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 ? 그 죄를 예수께서 다 청산 하셨구나
내가 받은 이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가 ?
우리가 다시한 번 더 감격하고 감동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세실 B 데밀 감독--왕 중 왕
세실 B 감독이 왕중왕이라는 유명한 기독교 영화를 제작하는데
수많은 엑스트라를 모아놓고 부탁을 합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어 달리게 한 후 .... 5분 동안만 저 십자가를 바라보아주십시오.
주목해 주십시오. 그렇게 부탁하고 십자가를 바라보게 했는데
모든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만 보아도 가슴에 저미는 짙은 은혜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하는 고난주간이 돌아옵니다.
한 주간 십자가를 묵상할 때마다 내게 온통 은혜만 부어주신
하나님의 자녀 됨의 축복..
우리에게 부어주신 그 은혜와 사랑, 그 십자가 그 주님 바라보고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고백하며 부활의 감격을 가슴에 담고
한 주간 십자가를 묵상할 때 마다 소망의 삶으로
나아가는 복된 시간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1시 ㅡ 3부 온라인 예배
예수! 나를 위하여! (고후5:21)
미국에 있는 기독교 단체가 미국사회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왜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가 ? 라는 질문에
나를 죄인으로 취급한다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죄인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것이 세상의 논리입니다.
죄의 노예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단어인데 세상은 거부감을 갖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불쾌 하신가요 ?
이 죄라는 말은 내게 마땅한 선언이었습니다
두렵고 무서운 말이지만 사실은 마땅한 말입니다
우리는 다 죄인이었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죄 없다 선언하셨지만
우리에게는 죄에 대한 잔재들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의롭다고 표현합니다.
어떤 나의 대가 지불 없이 일방적으로 너는 죄와 상관없다
나의 자녀, 백성, 상속자, 나의 존귀한 딸이다 하실 때 마음이 저밉니다.
우리는 은혜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나를 죄 없다 하시는 것은 오직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가 내게 왔지만 나는 값을 지불할 수 없기에 거저 주신 것 은혜입니다.
*21절--“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한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21절 본문은 짧지만 성경의 전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죄(罪) 윤리 도덕의 문제만이 아닌 절대적인 의미입니다
목적을 벗어난 의미. 떠나있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죄라는 단어가 예수님께는 존재할 수 없는 단어임에도
그분이 나를 위하여 죄가 되셨다라고 선언합니다.
* 성부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 버림 받았다라는 것은
성자 예수 그분에게는 가장 두렵고 큰 고통이었습니다.
*요8:29--나를 보내신 분이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나를 혼자 두지 않으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한 가장 절망스럽고 참혹한 단어
*죄가 되게 했다.
십자가도 굉장히 수치스러운 것이지만 죄가 되게 했다라는 것은
성자 예수가 감내하기 어려운 굉장히 무섭고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가장 악한 죄인의 자리에 섰다’
*예수 그리스도가 감당하신 십자가 ㅡ그 죄를 청산하기 위하여 감당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그 생각조차도 로마 시민 근처에 와서는 안된다”-키케로
로마시민에게는 십자가 형벌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십자가는 인간 취급 받지 못하던 자들, 노예들에게 처해 지던 형벌이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참혹한 형벌, 십자가는 그분이 가장 악한 죄인의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동물을 잡더라도 너무 잔인한 방법을 하지 못하도록 율법에서 규정합니다.
그런데 예수께는 가장 잔혹한 십자가 형벌을 택한 것입니다.
*저주 아래 있는 자
*신21:23-“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죄의 클라이막스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는 하나님을 떠나 있던 내게 마땅한 것이었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그 십자가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죄를 알지도 못하시던 분을 죄로 취급할 수 있는가?
‘우리로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불가사의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너무나도 신비한 십자가의 사건
*어떻게 의가 전혀 없는 내가 의로운 자가 되었는가?
*이 불가사의한 사실을 가능케 한 사건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신비스러운 역사
*왜 이렇게 신비스런 역사가 일어날까?
*21절--“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한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십자가의 은혜는 무엇으로도 설명할 단어가 없습니다.
나를 위해서, 나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청산하신 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이 율법주의자였고 핍박자 였습니다.
어떻게 예수가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는가 ?
자신의 생각으로 가득 찬 그가 예수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스데반을 죽이고 크리스찬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자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그 밝은 빛 앞에 그가 깊이 통찰하고 회개하고
죄인임을 고백하고 변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바울은 평생토록 소중한 고백과 더불어
오직 은혜를 고백하고 복음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罪)가 되신 이유가 누구를 위함인가?
우리가 그 십자가의 한복판을 지나가는 고난주간을 맞이합니다
그 고난과 수치가 얼마나 고통 스러울까 !
내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 ? 그 죄를 예수께서 다 청산 하셨구나
내가 받은 이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가 ?
우리가 다시한 번 더 감격하고 감동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세실 B 데밀 감독--왕 중 왕
세실 B 감독이 왕중왕이라는 유명한 기독교 영화를 제작하는데
수많은 엑스트라를 모아놓고 부탁을 합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어 달리게 한 후 .... 5분 동안만 저 십자가를 바라보아주십시오.
주목해 주십시오. 그렇게 부탁하고 십자가를 바라보게 했는데
모든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만 보아도 가슴에 저미는 짙은 은혜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하는 고난주간이 돌아옵니다.
한 주간 십자가를 묵상할 때마다 내게 온통 은혜만 부어주신
하나님의 자녀 됨의 축복..
우리에게 부어주신 그 은혜와 사랑, 그 십자가 그 주님 바라보고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고백하며 부활의 감격을 가슴에 담고
한 주간 십자가를 묵상할 때 마다 소망의 삶으로
나아가는 복된 시간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