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24-02-04 10:08
조회
520
2월 4일 1-4부 예배
9시 1부예배
11시_2부 예배
우리의 소원을 들으시는 하나님 (시편 37:1-4)
* Before I die…
소원을 보관하는 “죽기 전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78개국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적는 벽화에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돈에 대한 소원을 썼습니다. 그런데 호스피스 병동에서 실제로 죽음을 앞둔 어르신들의 소원은 매우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본문은 다윗이 노년의 때에 쓴 시로, 인생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비결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간절히 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지느냐 마느냐는 사실 우리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 우리가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가(하나님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의 소원이 진정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인지 점검해야만 합니다. 나의 간절한 소원이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을 때 이루어주시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 악인이 득세하는 현실로 인한 불평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1절)
우리의 소원이 하나님의 뜻과 멀어지게 하는 것이 바로 악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다윗은 평생 악인이 득세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블레셋이 늘상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았는데, 십 수년간 사울의 공격을 피해 쫓기는 삶을 살다 안타깝게도 블레셋에게로 피해 그의 목숨을 구걸해야만 했습니다. 인생말년에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피생활을 했고, 급기야는 수 십년간 그를 따르던 신하들과 백성들이 등을 돌립니다.
* 악인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악인이 형통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을 당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보면 분노와 원망, 시기가 생깁니다. 급기야 “하나님은 선하지 않다, 아니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신앙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공의로 즉각적으로 심판하셨다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2절)
하나님께서 악인들에 대한 심판을 유보하시는 것은 이미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보의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신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소원을 이루기 위한 두 가지 명령을 하십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라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3절)
“여호와를 의뢰한다”는 것은 끈을 매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과 나를 하나로 연결시키고 하나님에 이끌리는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기차에서 기관차와 다른 칸이 연결되어야 같이 움직일 수 있듯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분이시기에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께 묶여있다면 자연스럽게 선을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은 곧 선을 행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매일 음식을 먹는 것처럼 여호와를 신뢰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밥먹듯이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 즉, 매순간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 소원을 이루는 비결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여호와를 기뻐하라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4절)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성경에서만 보이는, 명령이 될 수 없는 독특한 표현입니다. 기뻐하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긍정적인 감정의 토대를 다져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속에서 긍정적인 감정을 만드는 가장 본질적인 감정의 토대는 바로 사랑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사막여우가 어린왕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그렇게 된다면 정말 근사할거야! 만일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 길들임=관계 맺기=사랑
여기서 길들여진다는 말은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기뻐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것과 기뻐하는 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명령은 곧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명령과 같습니다. 심지어 첫 번째 명령,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도 사실 하나님을 얼마만큼 사랑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마22:37-38 처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항상 여호와를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다면 우리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는 그 시기도 점점 더뎌질 수 밖에 없습니다.
* 성령님께 길들여짐=성령충만=전적 위탁=온전히 맡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되심을 믿는 자는 이미 마음에 성령님을 부어 주셨고, 먼저 성령님께 길들여져야 합니다. 성령님께 길들여진다는 것은 성령님께 다스림을 받는 것, 즉 성령충만을 의미합니다. 성령님께 다스림을 받는 것은 바로 전적 위탁을 뜻하고, 전적 위탁은 우리의 모든 것을 성령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 순종할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고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성령님께 다스림을 받고 길들여지게 됩니다. 그 결과 성령님과 더욱 깊은 인격적인 관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 결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죄의 길에서 돌이켜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시기 위해 성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가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기뻐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뻐하는 능력을 공급받고, 하나님의 기쁘신 때를 인내하며 기다릴 때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절한 소원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