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20-10-04 10:02
조회
1783
10월4일 주일 2부 ㅡ 5부 온라인예배 ('언약의 성취! ㅡ시105:7~19)
'언약의 성취!'(시105:7~19)
모든 신앙의 선배들은 광야를 통과했습니다
광야는 고달프고 절망의 터널을 걷는 과정이지만
지혜롭게 통과했을 때 소중한 시간으로 선용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광야 생활을 통과했습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광야는 그의 일평생이었습니다
그는 광야 인생 속에서 자신을 향해서 분노하고
대적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시선을 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며 살아갈 때
‘온유함이 승한자였다’라고 성경은 그를 평가합니다.
모세와 같이 하나님을 직접 뵈온 자가 전에도 후에도 없었다 라고
말씀합니다.
다윗도 광야 생활을 잘 통과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의 삶에 광야는 끊임없이 존재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영도자로서 매일 적들의 칼날에 의해서 그의 인생은
절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 광야를 10년 넘게 걸었지만 이 광야를 통해
진정한 하나님의 영도자로 우뚝 세워졌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처럼 힘을 과시할 수 있었겠지만
진정한 영성을 가지고 믿음의 사람으로 서기에는 부족했을 것입니다.,
이 소중한 고난의 학교를 통해 영성 깊은 광야의 삶이 세워져 갔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그 광야에서 혹독한 시간 사단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40일 굶주린 예수님께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 사단이 유혹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으로 살아가야 함을 가르칩니다.
끊임없는 사단의 유혹 앞에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그럼에도 마귀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높은 산 위에 예수님을 세워놓고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유혹할 때
사단아 물러가라 ! 명하십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권위가 예수께는 가장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광야를 통과하는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사도바울도 광야를 통과했습니다.
꿈을 안고 고향에 돌아갔을 때 네가 왜 여기에 은둔하는가 하며 핍박합니다.
그 고난의 학교를 잘 통과한 이후에
사도로 전 세계에 복음을 증거 하는 복음 증거자로 거듭납니다
영성을 성장시키는 신앙의 학교를 통과하고 난 후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하면 !!
내가 뭔가 높아졌을 때 하나님이 나로 인해 영광을 받으신다 생각 하지만
그 영광은 세상 사람도 추구하는 영광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내 모든 삶에 거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그곳에 함께 계시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함께 하시는 곳이 영광의 현장이며
거룩한 성전이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나이지만
우리의 전적인 삶이 하나님의 성전 되었음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계시든 어디에 계시든..
성령이 우리 인격 속에 내재 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 된 것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고백하고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통해 그 은혜를 누리면 그곳이 바로
거룩한 영광의 현장인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인터넷으로 예배드리지만
이 현장도 영광의 현장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격 속에 함께 하시기에....
우리가 함께 하는 그 곳에..
나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 할 때 내가 높아져서가 아니라
내 삶 속에 그분이 늘 임재해 계심을 인식하고
때로 골짜기를 걷고 절망의 터널, 실패의 현장을 걸어가도 하나님을 송축하고
나와 함께 하심에 감사드린다면
가장 낮은 곳에서도 하나님 아니면 안 되는 삶을 드린다면
진정한 영광의 현장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한결같이 믿음 안에 승리하는 영성 깊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뚝 서길 바랍니다.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이는 안 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오직 하나님 아니면 안 될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임재를 드러내셨습니다.
광야학교를 통해서 내가 깨어지고 내 능력과 가치관이 상실되지만
그 현장은 하나님이 채우신 현장이 되었습니다.
요셉의 삶은 어떻습니까?
시105:17-19--먼저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가실 때 그를 이집트로 보냅니다
형들의 시기를 통해서 죽음의 위기를 넘고 노예로 팔려서 사슬에 묶인
몸으로 끌려갑니다.
성경은 그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음을 말씀합니다.
형들의 악행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악한 계획도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로
바꾸었음을 말씀합니다.
창37장에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져있습니다. ~~
요셉이 꿈을 꿉니다. 형님들의 곡식단이 제 곡식단에 절을 하더이라 라는
말을 했을 때.. 형들은 교만한 놈이라 분노합니다
야곱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요셉은 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게 됩니다.
5절—요셉의 형들이 미워했다--
8절--더더
18—그를 죽이려했다
요셉을 죽이려 음모를 꾸미는 극한 상황까지 나아갑니다.
왜 그랬을까요?
야곱의 편애가 이런 아픔을 갖게 했다 생각할 수 있지만...
역기능가정이라 해도 존귀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과거의 포로가 되어 살아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출생의 비밀이 있는 집안들은 복잡한 사연들이 일어날 수 있다라고
세상은 비아냥 거릴 수 있지만 악한 것입니다.
과거에 잘못된 연결고리들, 상처투성이의 삶의 멍에를 다 털어버리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가는 존귀한 가정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역기능 가정들의 문제 때문에 대를 이어 고난의 터널을 지납니다.
아브라함도 역기능적인 문제 때문에 가정사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오늘 야곱의 집안에도 그런 갈등이 존재했습니다
어머니가 다른 형제들 때문에 자식들의 가슴속에 분노와 악감정이 가득했습니다
역기능 때문에 요셉이 형들에게 죽음의 위협을 받고 종으로 팔려갔지만
형제들의 악행이 용납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인간의 악한 계획조차도 아름답게 선용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마치 하나님이 보내신 것처럼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있었다라고 말씀합니다.
요셉이 처절하지만 서서히 하나님의 뜻이 뭔지 이루시기 원하시는 계획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이 그의 성숙이었습니다
그도 사람이었기에. 혹독한 고난의 용광로 속에서 절망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영광이란!
아버지 집에서 채색옷 입고 사랑받을 때가 아니라
고난의 학교지만 하나님의 계획 앞에서 그 뜻에 응답하는 것이
진정한 축복인 것을 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린 잘 모릅니다
때로 가진 자를 부러워하고
행복한 사람을 가슴속에서 성토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아픔이 있고 눈물이 있습니다.
인생은 만만치 않습니다
내게 주어진 오늘의 이 현실을...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 형들의 손에 의해
팔아넘겨 지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총리가 되기 전부터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봄이 신앙의 성공이었음을.
우리는 총리가 되었다 라는 결과만 기억하지만
요셉이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고
이것이 그의 진정한 성공이었고
영광을 드러내는 현장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곳은 어디인가요?
오늘 고난의 현장. 절망의 현장에서도 하나님과 함께하고
나 같은 존재에게도 하나님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말씀을 붙들고
간구함이 진정한 영광의 현장임을 !!
오늘 우리 안에 그런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