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22-04-12 04:42
조회
1558
특새 둘째날 ㅡ십자가 보혈로 서로 화답하라 (시편133 :1 ㅡ3)
새벽4시 남성공동체가 찬양인도 준비를 위해서 기도로 준비합니다.
십자가 보혈로 서로 화답하라 (시편133 :1 ㅡ3)
청교도 신학생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께서는
교회의 아름다움과 영광에 대해서 아름다운 무지개에 비유합니다.
햇빛이 물방울의 크기와 성질과 관계없이
모든 물방울에 동일하게 비치어 주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사랑도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비춰집니다.
크기와 성질에 관계없이 햇별이 동일하게 비춰짐 같이
성도가 크든 작든 그리스도의 사랑은 햇빛이 물방울에 비취는 것이
동일하게 비춰 집니다.
한 사람의 아름다움보다 공동체가 하나로 결합되어 드러나는
공동체를 통해 물방울들이 태양빛이 비춰질 때
함께 연합될 때 결속될 때 아름다운 무지개가 보여지는것처럼
우리 공동체가 모여져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춰질때 마치 지고의 아름다운
무지개와 같은 아름다움이 은혜의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교회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보여질 때 특별한 신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나게 됩니다.
교회가 천상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걸작품이 되길 소망합니다.
성도인 우리가 갖고 있는 교회에 대한 이상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기에 그리스도를 더 사랑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더 사랑하면 할수록 은혜의공동체를 더 사랑하게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영광스러운 교회에 대한 행적을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때 교회들을 통해 놀라운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꾸고 예수를 사랑하고 이곳 가운데 성령께서
함께 하여 주셔서 신실한 믿음의 공동체가 되길 원합니다.
본문 말씀은 다윗의 시입니다
유대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올라갈 때 부르는 노래입니다.
매주 예루살렘에 와서 예배드릴 수 없었기에
그들의 절기 때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유월절이나 초막절이 되면 모여서
성전에 올라갈 때 이 노래를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이 노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아름다움의 시 내용이 각인되길 바랍니다.
시인은 마치 우리가 함께 예배드리기 위해 모여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시인은 바라보고 있습니다
고난주간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성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아마도 그러하실 것 같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함께 예배에 참여하신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 한 분 한 분을 바라볼 때 너무 선하다 너무 아름답다
그렇게 보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다윗은 열두지파가 모여서 예배하기 위해 나오는 모습을
지고의 아름다움이라 표현합니다
본래 그들은 연합된 족속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창세기 32장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이름인데 바뀌어져서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말씀합니다
이제는 한 민족의 국가의 이름이 된 것입니다.
12명의 아들들이 서로 화목하고 연합된 것이 아니라 네명의 아내가 늘 갈등합니다
네 명의 아내들에게서 태어난 12아들들이
화목할 수 있었을까요 ?
아버지가 라헬을 사랑했고 요셉을 편애합니다.
요셉을 사랑하면 할수록 성도들의 시기 증오는 더 커졌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보호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한 계획 때문에
요셉은 노예로 팔려갑니다. 430년이 흐르고 야곱의 자손들이 거대한 민족을 이루게 되고
하나님의 때에 출애굽을 시킵니다.
광야에서 40년동안 그들과 함께 동행하시고 그들과 함께 임재하셨다라고 하는 상징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을 칠 때마다 나타납니다.
그들의 삶의 중심 가운데 성막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성막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광야 생활 하는 동안 성막을 중심으로 성전을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게 살아갑니다.
이스라엘의 삶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성전을 중심으로 살았고
하나님은 늘 그들과 함께 동행하십니다.
열두 지파가 하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야곱도 그 아들 들을 동일하게 사랑하지 못하고 시기하고 증오했기에
늘 불협화음이 있었으나 그들 중심에 성막이 존재하고 예배드렸기에
하나님을 중심으로 이 형제, 자매가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너무 아릅답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합니다
서로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예배드림은 불가능합니다.
서로 고난과 고통을 향해 함께 기도하고 마음을 나누는 일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직장생활 해보면 리더들은 부하직원들의 고통 아름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부하직원의 고통과 일상의 어려움을 공감하게 되면 일을 시키기 힘듭니다
리더십이 발휘되기 힘듭니다.
조직 생활이 동일하게 형평성을 가지고 조직을 운영하기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회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한 영혼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러하셨기에
교회는 문제도 많습니다 우리가 연약하기에...
그러나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였고 말씀 중심으로 모였기에
우리는 다른 어떤 요인이 아니고 하나님 때문에 하나 되고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 때문에 세상과 전혀 다른 주님의 몸 된 공동체가 될수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가진 위대함이고 영광스러움입니다
우린 하나님으로 인해서 서로 사랑하고 연합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말씀을 중심으로 서로 견고히 연합되어갑니다
신약시대에 이르러 말씀을 듣고 예배하던 때에 조금 다른 현상이 발생합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토록 바랐던 모세가 성령이 모두에게 역사하기 임한다고 할 때
주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바라보는 그 시간에 성령이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부으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윗의 고백입니다. (시133:2)
그 기름이 아론의 머리와 옷깃까지 적시는 모습을 그림 언어로 묘사합니다.
제사장들에게 안수할 때 부었던 특별한 기름입니다.
하나님의 성별 된 부어지는 특별한 기름이었습니다.
대제사장에게 기름 부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아론의 머리에 기름을 붓자 수염과 옷깃까지 흠뻑 적시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다윗이 고백하는 아론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시는 것은
예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가 시작되실 때
가장 먼저 행하신 일은
세례요한에게 세례받으시고 성령세례를 받으시는데
성령세례를 받으시는 그 모습이 마태복음 (3 :16)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치 기름이 머리로부터 수염과 옷깃에 흐르는 것처럼...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께 흠뻑 적셔지는 것입니다
그 분의 전신에 이르기까지 성령의 기름이 흠뻑 적셔지는 것입니다.
그때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께 말씀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3장 17절)
내 사랑하는 자여 기뻐하는 자여..
너희가 이제 예수를 통해서 성령을 받으라
성령은 받은 모든 자는 나의 존귀한 자라 내가 기뻐하는 자라.
오순절 사건을 통해 마가 다락방에 성령의 임재가 거하고
제자들이 뜨겁게 기도합니다.
바로 성령 때문에 제자들은 더욱 예수를 사랑하고
나의 유익을 빼앗은 경쟁자로 보던 그들이
성령이 임하자 서로 사랑하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그들의 인생의 끝을 압니다
모두가 순교했습니다. 세상은 그들의 인생을 비극이라 말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들을 향한 주님의 고백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를 향해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게 합니다
우리 은혜의 공동체 안에서 현재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 개개인도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새벽에 풀밭에 있는 이슬들...
그 이슬이 아침햇살이 비칠 때 영롱하고 보석처럼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개인의 아름다움도 소중하게 여기시지만
그 물방울 듯이 햇빛이 비취게 되면
아름다운 무지개가 되어 빛을 발하는 것처럼
성령세례를 받은 주님의 공동체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성도들의 예배드림을 보시는 하나님의 시각이라 믿습니다,,,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복이 임합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133 :3)
헐몬산 ㅡ만년설이 녹아서 샘을 만드는 곳
갈릴리 바다를 향해서 그 물줄기가 흐릅니다.
그곳은 땅이 비옥합니다.
고대 시대는 이 물줄기가 없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생명이 더욱 더 풍성해 질 수 있었던
만년설 그 물줄기들이 거대한 생명수가 됩니다
이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지표면에 떠올라서 모아진
그 물들이 흘러서 갈릴리로 흐르는 거대한 물줄기...
예수께서 자신이 생명수라 말씀하시고
복음서에 보면 가이샤라 빌립보에 들어가십니다
제자들에게 질문합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마16 :13)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할 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그 도시
그 신들의 도시에서 의도적으로 질문한 것입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우리 주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고백하기 쉽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굉장히 위급한 상황 속에서
다음날 새벽에 갑자기 콜이 왔습니다.
중환자실 면담실에 갔는데 의사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심각한 사실을 전 날 들었기에...
오늘 당장 돌아가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폐소생술을 동의할지 여부를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그 좁은 공간에서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도 부를 수 없었어요
절망적인 현실 때문에 하나님이 떠오르지 않아요
의사의 눈으로 볼 때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날 수 없는 상황
절망적인 상황.
그곳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고백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질문하세요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러한 삶을 살아가고 하나님을 느낄 수 없고 하나님을 생각할 수 없는
숨막히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베드로는 대답한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잠깐은 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의 믿음의 연약함에 대해 주님앞에 회개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하여서 예수를 구주라
고백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들 안에 예수의 영이신 성령이 계시기에...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133:3)
거기가 어딜까요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이 중심에 계신 삶
하나님의 백성들,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는 자들... 이곳입니다.
우리 교회 지금 이 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복을 주셨다는게 아니라 ..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다 말합니다
영생입니다.
우리 구원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영혼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저주 아래에 있었습니다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인해서
생명을 주심으로 그분의 영원한 생명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시고
우리 죄를 완전히 제거해 주셨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원한 생명을 명령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복이 우리의 것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은혜가 바로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영원한 생명이 얼마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인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영원한 생명이 전부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성소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또한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에게
그 누구도 빼앗을 수 밖에 없는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에게는 연약함이 존재합니다
나의 형제자매가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고
내 옆에 있는 형제와 자매에게
그 생명 주셨음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점점 더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서도 주님은 생명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알게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가 되시기에 이 공동체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을 명령하셨기에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교제와 영광을 누릴 공동체 ’이것이 우리 공동체의 진면목 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공동체는 거룩하고 위대하고 아름답습니다
영원하신 그 명령 그 복을 통해서 영원한 공동체가 되었고
고난과 영광을 함께 누리는 영 가족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복을 명령받았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알기 원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가족, 내 이웃들에게 모두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지...
물방울들이 함께 모였을 때 그 사랑의 빛이 임할 때
지고의 아름다움 무지개보다 더 아름다운 지고의 아름다움을
거룩하고 영원한 생명공동체로
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십자가 보혈로 서로 화답하라 (시편133 :1 ㅡ3)
청교도 신학생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께서는
교회의 아름다움과 영광에 대해서 아름다운 무지개에 비유합니다.
햇빛이 물방울의 크기와 성질과 관계없이
모든 물방울에 동일하게 비치어 주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사랑도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비춰집니다.
크기와 성질에 관계없이 햇별이 동일하게 비춰짐 같이
성도가 크든 작든 그리스도의 사랑은 햇빛이 물방울에 비취는 것이
동일하게 비춰 집니다.
한 사람의 아름다움보다 공동체가 하나로 결합되어 드러나는
공동체를 통해 물방울들이 태양빛이 비춰질 때
함께 연합될 때 결속될 때 아름다운 무지개가 보여지는것처럼
우리 공동체가 모여져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춰질때 마치 지고의 아름다운
무지개와 같은 아름다움이 은혜의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교회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보여질 때 특별한 신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나게 됩니다.
교회가 천상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걸작품이 되길 소망합니다.
성도인 우리가 갖고 있는 교회에 대한 이상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기에 그리스도를 더 사랑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더 사랑하면 할수록 은혜의공동체를 더 사랑하게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영광스러운 교회에 대한 행적을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때 교회들을 통해 놀라운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꾸고 예수를 사랑하고 이곳 가운데 성령께서
함께 하여 주셔서 신실한 믿음의 공동체가 되길 원합니다.
본문 말씀은 다윗의 시입니다
유대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올라갈 때 부르는 노래입니다.
매주 예루살렘에 와서 예배드릴 수 없었기에
그들의 절기 때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유월절이나 초막절이 되면 모여서
성전에 올라갈 때 이 노래를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이 노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아름다움의 시 내용이 각인되길 바랍니다.
시인은 마치 우리가 함께 예배드리기 위해 모여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시인은 바라보고 있습니다
고난주간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성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아마도 그러하실 것 같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함께 예배에 참여하신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 한 분 한 분을 바라볼 때 너무 선하다 너무 아름답다
그렇게 보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다윗은 열두지파가 모여서 예배하기 위해 나오는 모습을
지고의 아름다움이라 표현합니다
본래 그들은 연합된 족속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창세기 32장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이름인데 바뀌어져서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말씀합니다
이제는 한 민족의 국가의 이름이 된 것입니다.
12명의 아들들이 서로 화목하고 연합된 것이 아니라 네명의 아내가 늘 갈등합니다
네 명의 아내들에게서 태어난 12아들들이
화목할 수 있었을까요 ?
아버지가 라헬을 사랑했고 요셉을 편애합니다.
요셉을 사랑하면 할수록 성도들의 시기 증오는 더 커졌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보호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한 계획 때문에
요셉은 노예로 팔려갑니다. 430년이 흐르고 야곱의 자손들이 거대한 민족을 이루게 되고
하나님의 때에 출애굽을 시킵니다.
광야에서 40년동안 그들과 함께 동행하시고 그들과 함께 임재하셨다라고 하는 상징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을 칠 때마다 나타납니다.
그들의 삶의 중심 가운데 성막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성막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광야 생활 하는 동안 성막을 중심으로 성전을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게 살아갑니다.
이스라엘의 삶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성전을 중심으로 살았고
하나님은 늘 그들과 함께 동행하십니다.
열두 지파가 하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야곱도 그 아들 들을 동일하게 사랑하지 못하고 시기하고 증오했기에
늘 불협화음이 있었으나 그들 중심에 성막이 존재하고 예배드렸기에
하나님을 중심으로 이 형제, 자매가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너무 아릅답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합니다
서로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예배드림은 불가능합니다.
서로 고난과 고통을 향해 함께 기도하고 마음을 나누는 일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직장생활 해보면 리더들은 부하직원들의 고통 아름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부하직원의 고통과 일상의 어려움을 공감하게 되면 일을 시키기 힘듭니다
리더십이 발휘되기 힘듭니다.
조직 생활이 동일하게 형평성을 가지고 조직을 운영하기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회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한 영혼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러하셨기에
교회는 문제도 많습니다 우리가 연약하기에...
그러나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였고 말씀 중심으로 모였기에
우리는 다른 어떤 요인이 아니고 하나님 때문에 하나 되고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 때문에 세상과 전혀 다른 주님의 몸 된 공동체가 될수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가진 위대함이고 영광스러움입니다
우린 하나님으로 인해서 서로 사랑하고 연합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말씀을 중심으로 서로 견고히 연합되어갑니다
신약시대에 이르러 말씀을 듣고 예배하던 때에 조금 다른 현상이 발생합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토록 바랐던 모세가 성령이 모두에게 역사하기 임한다고 할 때
주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바라보는 그 시간에 성령이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부으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윗의 고백입니다. (시133:2)
그 기름이 아론의 머리와 옷깃까지 적시는 모습을 그림 언어로 묘사합니다.
제사장들에게 안수할 때 부었던 특별한 기름입니다.
하나님의 성별 된 부어지는 특별한 기름이었습니다.
대제사장에게 기름 부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아론의 머리에 기름을 붓자 수염과 옷깃까지 흠뻑 적시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다윗이 고백하는 아론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시는 것은
예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가 시작되실 때
가장 먼저 행하신 일은
세례요한에게 세례받으시고 성령세례를 받으시는데
성령세례를 받으시는 그 모습이 마태복음 (3 :16)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치 기름이 머리로부터 수염과 옷깃에 흐르는 것처럼...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께 흠뻑 적셔지는 것입니다
그 분의 전신에 이르기까지 성령의 기름이 흠뻑 적셔지는 것입니다.
그때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께 말씀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3장 17절)
내 사랑하는 자여 기뻐하는 자여..
너희가 이제 예수를 통해서 성령을 받으라
성령은 받은 모든 자는 나의 존귀한 자라 내가 기뻐하는 자라.
오순절 사건을 통해 마가 다락방에 성령의 임재가 거하고
제자들이 뜨겁게 기도합니다.
바로 성령 때문에 제자들은 더욱 예수를 사랑하고
나의 유익을 빼앗은 경쟁자로 보던 그들이
성령이 임하자 서로 사랑하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그들의 인생의 끝을 압니다
모두가 순교했습니다. 세상은 그들의 인생을 비극이라 말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들을 향한 주님의 고백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를 향해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게 합니다
우리 은혜의 공동체 안에서 현재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 개개인도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새벽에 풀밭에 있는 이슬들...
그 이슬이 아침햇살이 비칠 때 영롱하고 보석처럼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개인의 아름다움도 소중하게 여기시지만
그 물방울 듯이 햇빛이 비취게 되면
아름다운 무지개가 되어 빛을 발하는 것처럼
성령세례를 받은 주님의 공동체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성도들의 예배드림을 보시는 하나님의 시각이라 믿습니다,,,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복이 임합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133 :3)
헐몬산 ㅡ만년설이 녹아서 샘을 만드는 곳
갈릴리 바다를 향해서 그 물줄기가 흐릅니다.
그곳은 땅이 비옥합니다.
고대 시대는 이 물줄기가 없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생명이 더욱 더 풍성해 질 수 있었던
만년설 그 물줄기들이 거대한 생명수가 됩니다
이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지표면에 떠올라서 모아진
그 물들이 흘러서 갈릴리로 흐르는 거대한 물줄기...
예수께서 자신이 생명수라 말씀하시고
복음서에 보면 가이샤라 빌립보에 들어가십니다
제자들에게 질문합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마16 :13)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할 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그 도시
그 신들의 도시에서 의도적으로 질문한 것입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우리 주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고백하기 쉽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굉장히 위급한 상황 속에서
다음날 새벽에 갑자기 콜이 왔습니다.
중환자실 면담실에 갔는데 의사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심각한 사실을 전 날 들었기에...
오늘 당장 돌아가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폐소생술을 동의할지 여부를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그 좁은 공간에서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도 부를 수 없었어요
절망적인 현실 때문에 하나님이 떠오르지 않아요
의사의 눈으로 볼 때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날 수 없는 상황
절망적인 상황.
그곳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고백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질문하세요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러한 삶을 살아가고 하나님을 느낄 수 없고 하나님을 생각할 수 없는
숨막히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베드로는 대답한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잠깐은 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의 믿음의 연약함에 대해 주님앞에 회개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하여서 예수를 구주라
고백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들 안에 예수의 영이신 성령이 계시기에...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133:3)
거기가 어딜까요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이 중심에 계신 삶
하나님의 백성들,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는 자들... 이곳입니다.
우리 교회 지금 이 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복을 주셨다는게 아니라 ..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다 말합니다
영생입니다.
우리 구원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영혼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저주 아래에 있었습니다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인해서
생명을 주심으로 그분의 영원한 생명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시고
우리 죄를 완전히 제거해 주셨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원한 생명을 명령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복이 우리의 것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은혜가 바로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영원한 생명이 얼마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인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영원한 생명이 전부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성소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또한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에게
그 누구도 빼앗을 수 밖에 없는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에게는 연약함이 존재합니다
나의 형제자매가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고
내 옆에 있는 형제와 자매에게
그 생명 주셨음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점점 더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서도 주님은 생명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알게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가 되시기에 이 공동체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을 명령하셨기에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교제와 영광을 누릴 공동체 ’이것이 우리 공동체의 진면목 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공동체는 거룩하고 위대하고 아름답습니다
영원하신 그 명령 그 복을 통해서 영원한 공동체가 되었고
고난과 영광을 함께 누리는 영 가족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복을 명령받았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알기 원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가족, 내 이웃들에게 모두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지...
물방울들이 함께 모였을 때 그 사랑의 빛이 임할 때
지고의 아름다움 무지개보다 더 아름다운 지고의 아름다움을
거룩하고 영원한 생명공동체로
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