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22-05-01 10:04
조회
1319
5월1일 2-5부 예배
9시 .... 2부 현장예배
3부_ 11시 현장예배
옆 사람과 인사합시다 ㅡ축복하고 사랑합니다.
독점 (獨占) (출20장 1ㅡ3절)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설립하신,
고 김준곤 목사님이 자신의 딸들에게 칼럼에 이렇게 글을 남겼는데
너무나 공감이 되는 글입니다.
“우리는 꿈 속에서라도, 코마 상태, 마취 상태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는 것이 제일 큰 효도요,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불효이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어떤 유언을 하고 싶으십니까?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 가운데,
그들의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한 것처럼,
우리의 다음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주님을 예배할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그 관계는 자못 특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과 독점적인 관계를 요구하세요.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의 제 1계명에 대한 내용입니다.
율법은 하나님 자신의 완전하심을 드러냅니다.
롬7장 12절에서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한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하나님처럼, 율법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을 드러냅니다.
거룩과 선하심과 공의를 드러냅니다.
즉, 율법은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과 ‘하나님의 공의’,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십계명 이외의 다른 율법은 모세의 입을 통해 전달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직 십계명만은 ‘하나님께서 직접 돌판에 쓰셨습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31:18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십계명을 하나님의 성소 중 가장 거룩한 지성소 안에
있는 법궤 안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은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오늘 우리는 십계명 중, 1계명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출20장 2절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을 하라,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시기 전에,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로라”라고 말씀하십니다.
2절 말씀을 주의 깊게 잘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시기 이전에,
‘구원이 앞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신약시대의 의미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즉,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죄의 해방이 먼저, 주어지고,
그 뒤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교나 기독교나 유일신을 믿기 때문에 알라와 하나님은 똑같다고 오해합니다.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코란을 살펴보면, 코란은 알라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묘사합니다.
심지어, 성경은 하나님을 우리의 연인, 심지어 우리의 신랑이라고 표현합니다.
또한 코란에서는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처럼,
“방탕한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뭐라고 말하나요?
눅15장 방탕한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아버지, (the Prodigal God : the Prodigal son)
용서가 아니라, 용납하시는 아버지~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안아주시는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첫 번째 계명은 나머지 9개 계명의 뿌리가 됩니다.
바로, "1 계명으로부터 모든 계명들이 세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이렇게 중요한 1계명을 자세히 살펴보면, ’부정문’으로 시작됩니다.
출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내게 있게 말찌니라.”
여기서, “너는”이라는 2인칭 대명사는 우리말로는 정확하게 단수인지,
복수인지 드러나지 않지만, 원어로 보면, 정확하게는 ‘2인칭 단수’입니다.
그래서, 1계명은 개인적으로 친근한 관계 속에서 요구하시는 명령이에요.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실 때, 불특정 다수에게 내리는 명령이 아니라,
우리와 ‘얼굴을 마주하고, 일대일’로, 매우 ‘개인적인’ 의미로 2인칭 단수, ‘
너는’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에요.
마치, 저한테 이야기하시는 것처럼,
“요한아,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면 안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굉장히 친근한 관계 속에서
명령이 요구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첫 번째 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원하시는 두 가지 바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바램은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독점의 관계를 명령하시는 거에요.
사랑의 관계는 반드시, 독점의 관계를 전제로 이루어집니다.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나 외에’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al panay’는 ‘panim’이라는 명사가 들어있습니다.
‘panim’은 ‘얼굴’이란 뜻입니다.
‘al panay’는 ‘내 얼굴 앞에서’, ‘내 면전에서’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즉, “내 얼굴 앞에서 너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는 ‘저와 얼굴을 마주하고, 일대일’로 이렇게 요구하시는 거에요.
“요한아, 나 외에는,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을 두면 안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독점의 관계를 요구하시는 거에요.
여러분, 가장 친밀한 관계는 독점이 되어야만, 그 관계가 성립 됩니다.
결혼을 하고, 부부 관계가 형성된 뒤에는 부부가 아닌, 다른 이성과의 관계에서
부부 사이의 하는 것과 같은 ‘성적인 애정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규율에 놓이게 됩니다.
이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 부부 관계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나는 너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친밀한 관계이자,
너는 나의 자녀”라는 거에요.
“나는 네가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너를 구원한 하나님이시라는 거에요.”
이러한 친밀한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독점입니다.
너는 나에게 독점되어야 하고, 나는 너에게 독점 되어야 한다는
그 독점의 관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는 반드시, 독점의 관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출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하나님께서 “내 얼굴 앞에서, 네가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명령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과 나란히 우상을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능력이나 지식, 그리고 학벌이나 능력, 또한 돈이나 권력 등
인간은 다른 대상을 하나님과 나란히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관계 속에서 독점을 요구하실 뿐만 아니라,
또 하나를 요구하시는데, 그것은 바로 예배의 독점을 요구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얼굴 앞에서’, 절대로 다른 무언가가,
그리고 다른 인격적 대상이
예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의 독점은 아름다움입니다.
부부의 사랑의 독점은 시시하고, 진부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독점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정조준 된 예배의 모습이야말로,
즉, 하나님을 향해 나누어지지 않은 마음, 나누어지지 않은 헌신,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성품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이, 한결같이, 그리고 영원히 우리를 향합니다.
호세아서를 보면, 거룩한 선지자 호세아가 처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어요.
그런데, 처음으로 하나님께 들은 그 첫 번째,
명령이 “음란한 아내, 고멜을 아내로 취하라”였고
순종함으로. 그 여인과 결혼했어요. 그리고 자녀를 셋 낳았어요.
그런데, 이 여인의 기질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자식 셋을 낳고, 애인 찾아서 가출했어요.
그 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네 음란한 아내와 같이,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나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너도 네 아내 고멜을 찾아가서, 내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해라. 집에 데리고 와라.
그리고 오래도록 함께 살아라.”
하나님께서는 결코, 나누어지지 않는 마음으로 우리를 향해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산산조각난 마음, 여기에 한 마음 빼앗기고,
저기에 한 마음 빼앗긴, 어그러지고,
흉측한 모습으로, 마치 고멜과 같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지지 않은, 완전히 하나 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때,
그 예배는 진정한 아름다운 예배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나누어지지 않은 마음을 가진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의 일생에 대해서 다른 누구도 아닌, 하나님께서 이렇게 평가를 내리셨습니다.
왕상9:4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다윗의 ‘온전한 마음’은 곧, ‘나누어짐이 없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나누어짐이 없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겼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다윗이 ‘얼마나 패역한 죄를 범한 인간인지’ 잘 압니다.
물론, 다윗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했고, 그의 인생에서 누구보다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충직한 신하였던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 간음을 범한 사람이요,
심지어, 자신의 죄가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도록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을 향하여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긴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윗이 자신의 부하의 아내와 간음을 행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죽이는 패역한 죄를 범했습니다.
이 죄로 인해, 다윗은 무거운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죄의 뿌리가 다윗의 마음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그는 즉각적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죄를 고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죄의 길로부터 하나님께 다시 되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섬긴다는 것은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는 완벽한 태도를 갖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온전한 마음’은 우리의 마음에 악한 마음이 생기고,
그래서 죄를 범할 때도 있지만,
그럴 경우라 할지라도, 즉시 회개하고, 그 악한 마음을 제거하여,
재빨리 ‘나누어지지 않는 마음’으로 회복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결론 : 오늘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얼굴을 마주하고, 저와 여러분, 한분 한분에게 일대일’로
친근하고 따뜻하게 요구하십니다.
* ‘나누어지지 않은 마음,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라
오직 하나님만을 독점적으로 사랑하고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부_ 11시 현장예배
옆 사람과 인사합시다 ㅡ축복하고 사랑합니다.
독점 (獨占) (출20장 1ㅡ3절)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설립하신,
고 김준곤 목사님이 자신의 딸들에게 칼럼에 이렇게 글을 남겼는데
너무나 공감이 되는 글입니다.
“우리는 꿈 속에서라도, 코마 상태, 마취 상태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는 것이 제일 큰 효도요,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불효이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어떤 유언을 하고 싶으십니까?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 가운데,
그들의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한 것처럼,
우리의 다음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주님을 예배할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그 관계는 자못 특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과 독점적인 관계를 요구하세요.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의 제 1계명에 대한 내용입니다.
율법은 하나님 자신의 완전하심을 드러냅니다.
롬7장 12절에서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한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하나님처럼, 율법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을 드러냅니다.
거룩과 선하심과 공의를 드러냅니다.
즉, 율법은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과 ‘하나님의 공의’,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십계명 이외의 다른 율법은 모세의 입을 통해 전달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직 십계명만은 ‘하나님께서 직접 돌판에 쓰셨습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31:18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십계명을 하나님의 성소 중 가장 거룩한 지성소 안에
있는 법궤 안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은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오늘 우리는 십계명 중, 1계명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출20장 2절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을 하라,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시기 전에,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로라”라고 말씀하십니다.
2절 말씀을 주의 깊게 잘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시기 이전에,
‘구원이 앞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신약시대의 의미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즉,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죄의 해방이 먼저, 주어지고,
그 뒤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교나 기독교나 유일신을 믿기 때문에 알라와 하나님은 똑같다고 오해합니다.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코란을 살펴보면, 코란은 알라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묘사합니다.
심지어, 성경은 하나님을 우리의 연인, 심지어 우리의 신랑이라고 표현합니다.
또한 코란에서는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처럼,
“방탕한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뭐라고 말하나요?
눅15장 방탕한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아버지, (the Prodigal God : the Prodigal son)
용서가 아니라, 용납하시는 아버지~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안아주시는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첫 번째 계명은 나머지 9개 계명의 뿌리가 됩니다.
바로, "1 계명으로부터 모든 계명들이 세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이렇게 중요한 1계명을 자세히 살펴보면, ’부정문’으로 시작됩니다.
출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내게 있게 말찌니라.”
여기서, “너는”이라는 2인칭 대명사는 우리말로는 정확하게 단수인지,
복수인지 드러나지 않지만, 원어로 보면, 정확하게는 ‘2인칭 단수’입니다.
그래서, 1계명은 개인적으로 친근한 관계 속에서 요구하시는 명령이에요.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실 때, 불특정 다수에게 내리는 명령이 아니라,
우리와 ‘얼굴을 마주하고, 일대일’로, 매우 ‘개인적인’ 의미로 2인칭 단수, ‘
너는’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에요.
마치, 저한테 이야기하시는 것처럼,
“요한아,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면 안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굉장히 친근한 관계 속에서
명령이 요구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첫 번째 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원하시는 두 가지 바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바램은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독점의 관계를 명령하시는 거에요.
사랑의 관계는 반드시, 독점의 관계를 전제로 이루어집니다.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나 외에’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al panay’는 ‘panim’이라는 명사가 들어있습니다.
‘panim’은 ‘얼굴’이란 뜻입니다.
‘al panay’는 ‘내 얼굴 앞에서’, ‘내 면전에서’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즉, “내 얼굴 앞에서 너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는 ‘저와 얼굴을 마주하고, 일대일’로 이렇게 요구하시는 거에요.
“요한아, 나 외에는,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을 두면 안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독점의 관계를 요구하시는 거에요.
여러분, 가장 친밀한 관계는 독점이 되어야만, 그 관계가 성립 됩니다.
결혼을 하고, 부부 관계가 형성된 뒤에는 부부가 아닌, 다른 이성과의 관계에서
부부 사이의 하는 것과 같은 ‘성적인 애정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규율에 놓이게 됩니다.
이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 부부 관계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나는 너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친밀한 관계이자,
너는 나의 자녀”라는 거에요.
“나는 네가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너를 구원한 하나님이시라는 거에요.”
이러한 친밀한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독점입니다.
너는 나에게 독점되어야 하고, 나는 너에게 독점 되어야 한다는
그 독점의 관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는 반드시, 독점의 관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출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하나님께서 “내 얼굴 앞에서, 네가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명령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과 나란히 우상을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능력이나 지식, 그리고 학벌이나 능력, 또한 돈이나 권력 등
인간은 다른 대상을 하나님과 나란히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관계 속에서 독점을 요구하실 뿐만 아니라,
또 하나를 요구하시는데, 그것은 바로 예배의 독점을 요구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얼굴 앞에서’, 절대로 다른 무언가가,
그리고 다른 인격적 대상이
예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의 독점은 아름다움입니다.
부부의 사랑의 독점은 시시하고, 진부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독점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정조준 된 예배의 모습이야말로,
즉, 하나님을 향해 나누어지지 않은 마음, 나누어지지 않은 헌신,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성품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이, 한결같이, 그리고 영원히 우리를 향합니다.
호세아서를 보면, 거룩한 선지자 호세아가 처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어요.
그런데, 처음으로 하나님께 들은 그 첫 번째,
명령이 “음란한 아내, 고멜을 아내로 취하라”였고
순종함으로. 그 여인과 결혼했어요. 그리고 자녀를 셋 낳았어요.
그런데, 이 여인의 기질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자식 셋을 낳고, 애인 찾아서 가출했어요.
그 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네 음란한 아내와 같이,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나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너도 네 아내 고멜을 찾아가서, 내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해라. 집에 데리고 와라.
그리고 오래도록 함께 살아라.”
하나님께서는 결코, 나누어지지 않는 마음으로 우리를 향해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산산조각난 마음, 여기에 한 마음 빼앗기고,
저기에 한 마음 빼앗긴, 어그러지고,
흉측한 모습으로, 마치 고멜과 같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지지 않은, 완전히 하나 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때,
그 예배는 진정한 아름다운 예배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나누어지지 않은 마음을 가진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의 일생에 대해서 다른 누구도 아닌, 하나님께서 이렇게 평가를 내리셨습니다.
왕상9:4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다윗의 ‘온전한 마음’은 곧, ‘나누어짐이 없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나누어짐이 없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겼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다윗이 ‘얼마나 패역한 죄를 범한 인간인지’ 잘 압니다.
물론, 다윗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했고, 그의 인생에서 누구보다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충직한 신하였던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 간음을 범한 사람이요,
심지어, 자신의 죄가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도록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을 향하여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긴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윗이 자신의 부하의 아내와 간음을 행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죽이는 패역한 죄를 범했습니다.
이 죄로 인해, 다윗은 무거운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죄의 뿌리가 다윗의 마음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그는 즉각적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죄를 고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죄의 길로부터 하나님께 다시 되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섬긴다는 것은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는 완벽한 태도를 갖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온전한 마음’은 우리의 마음에 악한 마음이 생기고,
그래서 죄를 범할 때도 있지만,
그럴 경우라 할지라도, 즉시 회개하고, 그 악한 마음을 제거하여,
재빨리 ‘나누어지지 않는 마음’으로 회복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결론 : 오늘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얼굴을 마주하고, 저와 여러분, 한분 한분에게 일대일’로
친근하고 따뜻하게 요구하십니다.
* ‘나누어지지 않은 마음,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라
오직 하나님만을 독점적으로 사랑하고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