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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부
작성일
2022-05-22 10:00
조회
1189
5월 22일 2-5부 예배
9시.....2부 예배
3부_11시예배
하나님께 순종하는 가운데 오히려 모든 일이 망쳐짐을 경험할 때
(막4장 35ㅡ41)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 보단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실만을 믿습니다.
이러한 세계관을 우리는 ‘자연주의 세계관'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자연주의 세계관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거부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탄의 존재’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관에 영향을 받다보면 자칫하면 우리 그리스도인 조차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실제로 영적전쟁은 이미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불행히도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게 된 이후로 우리의 영적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가운데 오히려 모든 일이 망쳐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곤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이것은 바로 영적전쟁에 처해있다는 사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을 통해 이러한 일들이 왜 우리에게 일어나는지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쳐주십니다.
35-39절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예수님과 제자들은 배를 타고 저편 거라사 지방으로 건너는데 큰 폭풍우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푹풍우가 내리치는 동안 예수님께서는 배의 고물 배의 뒤쪽 자리에서 태평하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39절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한 동사가 등장합니다.
“꾸짖다” 라는 동사는 헬라어로 ‘Epitimao’라는 동사로 표현됩니다.
이 동사는 이 상황에서 사용하기엔 다소 어색하고 맞지 않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보통 무생물에 대해서 꾸짖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바다를 향하여 꾸짖으셨을까요?
마가복음을 읽어보면 오늘 본문을 포함해서
꾸짖다라는 동사가 총 3번 등장합니다.
첫 번째 꾸짖다는 동사는 1장 23-25절에 등장합니다.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지금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향해 명령을 하고 계십니다.
두 번째 ‘꾸짖다’는 동사는 3장 11-12절에 등장합니다.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계하시니라
‘많이 경계하시니라’는 동사도 ‘Epitimao’
‘강하게 꾸짖으셨다’로 번역되어야만 합니다.
이와같이 마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Epitimao’라고 말씀하시는 경우는
모두 귀신의 활동을 꾸짖는 문맥에서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큰 광풍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호수 저편으로 건너려는 것을 방해하려는 사단의 시도였다는 것입니다.
35절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예수님께서 가리키신 저편은 거라사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거라사 지역에 사는 대다수 주민들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거라사 지역으로 가자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왜? 사탄이 이방인들이 사는 거라사 지역으로 예수님께서 건너가는 것을 훼방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아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마가복음 4장의 전후
문맥을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마가복음 3장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1 열두 제자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보내셔서 전도하게 하시고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어쫓는 능력도 주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거부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가족까지도 합세해서 주님을 거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뜻하신 대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하십니다.
마침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 되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 할 때
일어나는 많은 어려움의 정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일들을 방해하려는
사단의 시도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반드시 영적전쟁에 놓인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39-40절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의미를 아직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니?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는 권세가 너희에게 주어졌다”고
누누이 말한 것을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니?
너희는 이 공격의 정체가 무엇인지 간파했어야 한다.
그리고 사단의 공격을 이길 권세가 너희에게 있음을
너희는 알아야만 했다.
왜 그렇게 겁을 먹고 두려워 하느냐? 너희는 어찌 믿음이 없느냐?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기억해 할 주님의 가르침이라는 거에요.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사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가운데 오히려 우리의 모든 일이 망쳐짐을 경험할 때
그 폭풍우의 정체가 바로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이루는 것을 방해하려는
‘사단의 모략’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간파해야만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기억해
할 주님의 가르침이라는 거에요.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사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무슨 수를 써서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가운데 오히려 우리의 모든 일이 망쳐짐을 경험할 때
그 폭풍우의 정체가 바로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이루는 것을 방해하려는
사단의 모략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간파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영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사도바울은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명령합니다.
엡6: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그리고 바울은 마귀에게 승리하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엡6: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Finally, be strong in the Lord and in his mighty power.
“강건하라”는 바울의 명령은 헬라어 원문에서
1) 수동태로 쓰여져 있습니다.("강해짐을 받으라”)
이것은 강해지는 힘이 외부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우리의 힘으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주님 안에서 강한 능력을 받으라고 명령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능력을 발견할 수 있는 바로 주님 안에서입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강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능력의 원천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의 강하신 능력으로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십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강건하라는 바울의 명령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 전투에 필요한 모든 능력이 그리스도를 통해
항상 공급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중에 오히려 모든 일이 안 풀리고
잘못되어지는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더 큰 믿음이 요구되는 때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할수록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좇을수록 우리는 영적 전쟁의 최전방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동시에 사탄도 이 전쟁터의 최전방에서 패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중에 모든 일이 망쳐짐을 경험할 때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애써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주의 능력이 항상 공급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부_11시예배
하나님께 순종하는 가운데 오히려 모든 일이 망쳐짐을 경험할 때
(막4장 35ㅡ41)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 보단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실만을 믿습니다.
이러한 세계관을 우리는 ‘자연주의 세계관'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자연주의 세계관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거부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탄의 존재’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관에 영향을 받다보면 자칫하면 우리 그리스도인 조차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실제로 영적전쟁은 이미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불행히도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게 된 이후로 우리의 영적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가운데 오히려 모든 일이 망쳐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곤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이것은 바로 영적전쟁에 처해있다는 사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을 통해 이러한 일들이 왜 우리에게 일어나는지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쳐주십니다.
35-39절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예수님과 제자들은 배를 타고 저편 거라사 지방으로 건너는데 큰 폭풍우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푹풍우가 내리치는 동안 예수님께서는 배의 고물 배의 뒤쪽 자리에서 태평하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39절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한 동사가 등장합니다.
“꾸짖다” 라는 동사는 헬라어로 ‘Epitimao’라는 동사로 표현됩니다.
이 동사는 이 상황에서 사용하기엔 다소 어색하고 맞지 않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보통 무생물에 대해서 꾸짖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바다를 향하여 꾸짖으셨을까요?
마가복음을 읽어보면 오늘 본문을 포함해서
꾸짖다라는 동사가 총 3번 등장합니다.
첫 번째 꾸짖다는 동사는 1장 23-25절에 등장합니다.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지금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향해 명령을 하고 계십니다.
두 번째 ‘꾸짖다’는 동사는 3장 11-12절에 등장합니다.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계하시니라
‘많이 경계하시니라’는 동사도 ‘Epitimao’
‘강하게 꾸짖으셨다’로 번역되어야만 합니다.
이와같이 마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Epitimao’라고 말씀하시는 경우는
모두 귀신의 활동을 꾸짖는 문맥에서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큰 광풍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호수 저편으로 건너려는 것을 방해하려는 사단의 시도였다는 것입니다.
35절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예수님께서 가리키신 저편은 거라사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거라사 지역에 사는 대다수 주민들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거라사 지역으로 가자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왜? 사탄이 이방인들이 사는 거라사 지역으로 예수님께서 건너가는 것을 훼방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아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마가복음 4장의 전후
문맥을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마가복음 3장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1 열두 제자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보내셔서 전도하게 하시고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어쫓는 능력도 주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 귀신 들린 자로부터 귀신을 내어 쫓으세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거부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가족까지도 합세해서 주님을 거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뜻하신 대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하십니다.
마침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 되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 할 때
일어나는 많은 어려움의 정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일들을 방해하려는
사단의 시도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반드시 영적전쟁에 놓인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39-40절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의미를 아직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니?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는 권세가 너희에게 주어졌다”고
누누이 말한 것을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니?
너희는 이 공격의 정체가 무엇인지 간파했어야 한다.
그리고 사단의 공격을 이길 권세가 너희에게 있음을
너희는 알아야만 했다.
왜 그렇게 겁을 먹고 두려워 하느냐? 너희는 어찌 믿음이 없느냐?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기억해 할 주님의 가르침이라는 거에요.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사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가운데 오히려 우리의 모든 일이 망쳐짐을 경험할 때
그 폭풍우의 정체가 바로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이루는 것을 방해하려는
‘사단의 모략’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간파해야만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기억해
할 주님의 가르침이라는 거에요.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사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무슨 수를 써서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가운데 오히려 우리의 모든 일이 망쳐짐을 경험할 때
그 폭풍우의 정체가 바로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이루는 것을 방해하려는
사단의 모략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간파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영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사도바울은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명령합니다.
엡6: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그리고 바울은 마귀에게 승리하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엡6: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Finally, be strong in the Lord and in his mighty power.
“강건하라”는 바울의 명령은 헬라어 원문에서
1) 수동태로 쓰여져 있습니다.("강해짐을 받으라”)
이것은 강해지는 힘이 외부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우리의 힘으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주님 안에서 강한 능력을 받으라고 명령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능력을 발견할 수 있는 바로 주님 안에서입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강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능력의 원천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의 강하신 능력으로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십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강건하라는 바울의 명령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 전투에 필요한 모든 능력이 그리스도를 통해
항상 공급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중에 오히려 모든 일이 안 풀리고
잘못되어지는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더 큰 믿음이 요구되는 때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할수록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좇을수록 우리는 영적 전쟁의 최전방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동시에 사탄도 이 전쟁터의 최전방에서 패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중에 모든 일이 망쳐짐을 경험할 때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애써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주의 능력이 항상 공급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