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20-07-12 09:59
조회
1790
7월12일 2부 3부 5부 현장예배 &온라인예배 .... 희망을 노래합시다!'(겔47:1-12)
2부 9시예배....
3부 11시 예배....
5부 .....2시 청년부예배
희망을 노래합시다!'(겔47:1-12)
‘아무리 긴 터널이라도 끝이 보인다’ 라는 90년대 후반에 나온
미우라 아야꼬의 책을 다시 읽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짙게 다가 왔습니다.
그는 젊은 날에 폐결핵에 걸려 이미 죽음을 경험한 사람인데
70세 넘게까지 살아가면서 많은 글들을 남기면서
희망을 주는 메시지들이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자기 멋대로 자기의 미래를 걸정하지 마십시오.
나의 미래는 희망이 없다고 아는 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쓰시는 시나리오와 당신이 쓰는
시나리오는 다른 것입니다." ㅡ미우라 아야꼬
47년 동안 병상에서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지낸 사람
온 몸이 불구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몇 번이나 감사합니다”. 하고 소리 내고 싶었지만
오늘도 하루가 지나가는구나 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감사합니다’ 라고 크게 소리내고 싶을까요 ?
대부분 터널을 지나고 나서 찬란한 빛을 볼 때 일텐데....
이 책의 마무리는 성경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3-4)
우리가 인생을 잘 알지 못합니다.
살아갈수록 더 모르겠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갑니까 ?
매일 터널을 지나가지만 터널 속에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에스겔서는 절망을 지나가지만 희망을 말하고 비전을 드러냅니다.
*소망이 사라진 상황에서 바라보는 하나님의 비전
*절대 절망의 현실에서 바라보는 하나님의 절대 희망
골짜기에 마른 뼈들이 가득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희망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46장부터 보면 환상이지만 메시지가 있습니다.
성경은 사이즈를 재라고 할 때, 측량한다고 할 때 한 가지를 설명합니다.
마음을 잰다는 말은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을 헤아려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현실만 바라보지 말고 절망만 하지 말고
내 마음이 어떠한지 이해하고 헤아려 보라는 것입니다.
현실은 참담하고 어둡고 처절한 절망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니 하나님은 그곳에 함께 계시고 동행하시고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오늘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오늘
*성전을 측량케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
힘들고 어렵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현장이라는 것을
토로하는 것이 에스겔서의 내용입니다.
* 하나님의 보살핌--‘보살피다’('care')
* 고트어 ‘kara'에서 기원--‘슬퍼하다’
케어한다라는 말이 보살피는 것으로만 이해하지만
가장 큰 의미는 ‘함께 슬퍼하고 함께 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들 때 하나님이 함께 아파하십니다.
진정한 케어는 그 아픔과 고통에 함께 공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절망적이고 곤고한 광야를 걸을지라도 희망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겔47:3 -하나님의 본심
*은혜에 익숙해지지 말라.
*날마다 더 깊어만 가는 신앙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면
종교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하나님의 그 마음을 헤아려서
더 깊어지고 내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하는 것 ㅡ그것이 신앙생활이 됩니다.
우리가 익숙해지면 안 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감격하고 더 사무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경력이 아닌 더 깊어지고 더 짙어져야 합니다.
자랑이 아닌 더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주님께 온전히 위탁하는 신앙
*암담한 현실 앞에서 한번 기도한다고 금방 상황이 좋아진다면
누구인들 기도 못하랴!
한번 기도하고 돌아서서 좋아지면 누군들 못하겠습니까 !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삶이 진정한 영성입니다.
*현실, 상황이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고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갈 때도....
*이기주의(기복 신앙)와 참된 신앙의 차이점
*기복신앙 ㅡ 형통함 만을 기대하지만
*참된신앙 ㅡ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그분의 주권 앞에 무릎 꿇는 삶입니다.
성숙한 신앙은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겔 47: 1-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물줄기
*그 미약하고 초라함마저도 감사함으로 누리라.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할 때 깊어지는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길이보다 중요한 것은 깊이입니다.
매순간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오늘 살아가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하나님의 때가 차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사해(死海)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물줄기
사해는 30%의 소금 농도를 가지고 있어서 어느 생명도 살 수 없는 곳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요단강을 통해 민물이 들어가지만
너무 양이 적어서 효과가 없고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은 바다입니다
그런데 작은 물줄기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깊어지고 넓어져서
이 물줄기가 사해로 들어가더니 생명의 바다로 바뀌는 것입니다
아무리 메마른 현실이라도
절망이 아닌 희망을 말하고 좌절이 아닌 비전을 경험하는 삶이 될 것을
본문이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요단강 끝부분 베다니에서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고
그 이후에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다 제자들을 부르시고
바닷가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선포하시고
베드로가 갈릴리 호수에서 밤이 새도록 그곳에서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예수께서 질문합니다. 물고기 잡았나요 ?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보시오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말씀에 의지하여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서 내가 행동합니다 할때 )
그물이 찢겨지도록 물고기를 잡은 후에
무릎 꿇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할 때
예수께서 그를 향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 명하십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바다라고 부르신 이유는 ㅡ
사해와 연결 시키셔서 죽어있는 사해가 아닌 생명이 약동하는 생명의 역사를
만들어내시고 구원의 역사까지 이끌어내십니다.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내양을 치라 명하십니다.
죽어있는 사해에서 하나님의 회복에 대한 약속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의 바다에서 생명을 살리는 역동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요21장입니다.
아무리 생명이 약동하는 갈릴리 호수에서도 못 잡으면 죽은 바다지만
죽은바다 사해에서도 생명이 약동하면 살아있는 바다가 된다는 것입니다.
겔47장 9절 ㅡ 이 물이 흘러들어 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생명력이 약동하는 갈릴리의 사역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아 주리라.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하나님의 뜻 앞에 순종하는 자를 통해 이루실 위대한 역사
*하나님의 때는 반드시 온다.
언제인가 하나님의 때가 되매 세상을 소성케 하는 하나님의 때가
분명히 온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죽어있는 세상에서 복음이 공급되고 말씀에 순종하는 제자들이 있을 때
삶을 회복하는 위대한 반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 어부 출신을 부르셨을까 ?
그곳에 하나님의 가슴이 담겨있습니다.
어부들이 평생을 물고기를 잡은 자들이었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을 때
예수께서 그물을 던지라 했을 때
그물이 찢어지도록 물고기를 잡게 하신 이유는 !
내가 가진 경력, 경험 다 아무것도 아니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다 허망해질 때 철저하게 말씀 앞에 무릎 꿇을 때
소생하는 약속이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 말씀 앞에 무릎 꿇는 현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신앙적 태도가 중요합니다.
현실은 암담합니다. 작은 물줄기 같은 현실 그러나 하나님의 가슴을 헤아리고
무릎 꿇을 때 점점 커지고 깊어지고 죽어있는 것을 살리는 소생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 !
내가 꿈이 좌절되거나 주저앉을 때 내 시나리오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향한 어떤 시나리오를 가지고 계실까
전적인 신앙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전히 내 마음에 사무침이 있는가 ! 점검함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매순간 나와 함께 하시는 소중한 보살핌(care)이 늘 함께 한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마음을 헤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3부 11시 예배....
5부 .....2시 청년부예배
희망을 노래합시다!'(겔47:1-12)
‘아무리 긴 터널이라도 끝이 보인다’ 라는 90년대 후반에 나온
미우라 아야꼬의 책을 다시 읽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짙게 다가 왔습니다.
그는 젊은 날에 폐결핵에 걸려 이미 죽음을 경험한 사람인데
70세 넘게까지 살아가면서 많은 글들을 남기면서
희망을 주는 메시지들이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자기 멋대로 자기의 미래를 걸정하지 마십시오.
나의 미래는 희망이 없다고 아는 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쓰시는 시나리오와 당신이 쓰는
시나리오는 다른 것입니다." ㅡ미우라 아야꼬
47년 동안 병상에서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지낸 사람
온 몸이 불구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몇 번이나 감사합니다”. 하고 소리 내고 싶었지만
오늘도 하루가 지나가는구나 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감사합니다’ 라고 크게 소리내고 싶을까요 ?
대부분 터널을 지나고 나서 찬란한 빛을 볼 때 일텐데....
이 책의 마무리는 성경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3-4)
우리가 인생을 잘 알지 못합니다.
살아갈수록 더 모르겠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갑니까 ?
매일 터널을 지나가지만 터널 속에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에스겔서는 절망을 지나가지만 희망을 말하고 비전을 드러냅니다.
*소망이 사라진 상황에서 바라보는 하나님의 비전
*절대 절망의 현실에서 바라보는 하나님의 절대 희망
골짜기에 마른 뼈들이 가득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희망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46장부터 보면 환상이지만 메시지가 있습니다.
성경은 사이즈를 재라고 할 때, 측량한다고 할 때 한 가지를 설명합니다.
마음을 잰다는 말은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을 헤아려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현실만 바라보지 말고 절망만 하지 말고
내 마음이 어떠한지 이해하고 헤아려 보라는 것입니다.
현실은 참담하고 어둡고 처절한 절망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니 하나님은 그곳에 함께 계시고 동행하시고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오늘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오늘
*성전을 측량케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
힘들고 어렵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현장이라는 것을
토로하는 것이 에스겔서의 내용입니다.
* 하나님의 보살핌--‘보살피다’('care')
* 고트어 ‘kara'에서 기원--‘슬퍼하다’
케어한다라는 말이 보살피는 것으로만 이해하지만
가장 큰 의미는 ‘함께 슬퍼하고 함께 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들 때 하나님이 함께 아파하십니다.
진정한 케어는 그 아픔과 고통에 함께 공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절망적이고 곤고한 광야를 걸을지라도 희망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겔47:3 -하나님의 본심
*은혜에 익숙해지지 말라.
*날마다 더 깊어만 가는 신앙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면
종교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하나님의 그 마음을 헤아려서
더 깊어지고 내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하는 것 ㅡ그것이 신앙생활이 됩니다.
우리가 익숙해지면 안 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감격하고 더 사무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경력이 아닌 더 깊어지고 더 짙어져야 합니다.
자랑이 아닌 더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주님께 온전히 위탁하는 신앙
*암담한 현실 앞에서 한번 기도한다고 금방 상황이 좋아진다면
누구인들 기도 못하랴!
한번 기도하고 돌아서서 좋아지면 누군들 못하겠습니까 !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삶이 진정한 영성입니다.
*현실, 상황이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고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갈 때도....
*이기주의(기복 신앙)와 참된 신앙의 차이점
*기복신앙 ㅡ 형통함 만을 기대하지만
*참된신앙 ㅡ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그분의 주권 앞에 무릎 꿇는 삶입니다.
성숙한 신앙은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겔 47: 1-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물줄기
*그 미약하고 초라함마저도 감사함으로 누리라.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할 때 깊어지는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길이보다 중요한 것은 깊이입니다.
매순간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오늘 살아가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하나님의 때가 차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사해(死海)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물줄기
사해는 30%의 소금 농도를 가지고 있어서 어느 생명도 살 수 없는 곳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요단강을 통해 민물이 들어가지만
너무 양이 적어서 효과가 없고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은 바다입니다
그런데 작은 물줄기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깊어지고 넓어져서
이 물줄기가 사해로 들어가더니 생명의 바다로 바뀌는 것입니다
아무리 메마른 현실이라도
절망이 아닌 희망을 말하고 좌절이 아닌 비전을 경험하는 삶이 될 것을
본문이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요단강 끝부분 베다니에서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고
그 이후에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다 제자들을 부르시고
바닷가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선포하시고
베드로가 갈릴리 호수에서 밤이 새도록 그곳에서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예수께서 질문합니다. 물고기 잡았나요 ?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보시오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말씀에 의지하여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서 내가 행동합니다 할때 )
그물이 찢겨지도록 물고기를 잡은 후에
무릎 꿇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할 때
예수께서 그를 향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 명하십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바다라고 부르신 이유는 ㅡ
사해와 연결 시키셔서 죽어있는 사해가 아닌 생명이 약동하는 생명의 역사를
만들어내시고 구원의 역사까지 이끌어내십니다.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내양을 치라 명하십니다.
죽어있는 사해에서 하나님의 회복에 대한 약속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의 바다에서 생명을 살리는 역동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요21장입니다.
아무리 생명이 약동하는 갈릴리 호수에서도 못 잡으면 죽은 바다지만
죽은바다 사해에서도 생명이 약동하면 살아있는 바다가 된다는 것입니다.
겔47장 9절 ㅡ 이 물이 흘러들어 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생명력이 약동하는 갈릴리의 사역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아 주리라.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하나님의 뜻 앞에 순종하는 자를 통해 이루실 위대한 역사
*하나님의 때는 반드시 온다.
언제인가 하나님의 때가 되매 세상을 소성케 하는 하나님의 때가
분명히 온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죽어있는 세상에서 복음이 공급되고 말씀에 순종하는 제자들이 있을 때
삶을 회복하는 위대한 반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 어부 출신을 부르셨을까 ?
그곳에 하나님의 가슴이 담겨있습니다.
어부들이 평생을 물고기를 잡은 자들이었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을 때
예수께서 그물을 던지라 했을 때
그물이 찢어지도록 물고기를 잡게 하신 이유는 !
내가 가진 경력, 경험 다 아무것도 아니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다 허망해질 때 철저하게 말씀 앞에 무릎 꿇을 때
소생하는 약속이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 말씀 앞에 무릎 꿇는 현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신앙적 태도가 중요합니다.
현실은 암담합니다. 작은 물줄기 같은 현실 그러나 하나님의 가슴을 헤아리고
무릎 꿇을 때 점점 커지고 깊어지고 죽어있는 것을 살리는 소생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 !
내가 꿈이 좌절되거나 주저앉을 때 내 시나리오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향한 어떤 시나리오를 가지고 계실까
전적인 신앙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전히 내 마음에 사무침이 있는가 ! 점검함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매순간 나와 함께 하시는 소중한 보살핌(care)이 늘 함께 한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마음을 헤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