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19-02-17 18:45
조회
2061
2월17일 주일 2,3부예배.....신 사도행전을 향하여! (행28:30~31)
신 사도행전을 향하여! (행28:30~31)
사도행전 28장을 마무리하면서 다양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니면서 석사논문과 박사논문이
28장 10절 이하의 말씀을 기준으로 썼습니다 그래서 제목은 act 29입니다.
물론 긴 제목은 교회의 성장과 제자훈련이라고 붙였습니다만은
간단한 제목은 사도행전 29장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은혜의공동체의 어떤 비전 이런 것들이 사실은
오늘 본문 속에 담겨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가만히 보면 조금은 마음에 답답함이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까지 끌려가서 로마를 복음화 시킨다던지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로마를 굴복시키는
그 현장이 아닌 그저 셋집에서 2년 동안을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가르쳤다
그만한 자가 없었다. 이것이 이 모든 사도행전의 마지막 종착점입니다
스펙타클하게 시작했던 사도행전이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복음증거하고
그래서 모인공동체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고 말씀이 선언될 때마다
병이 떠나가고 사탄이 떠나가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그 다이나믹한
공동체가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바울이 그런 강력한
어떤 역사의 현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잠잠하게 말씀을 가르치는 모습으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것을 보면 좀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저도 그랬습니다. 그 뒷장이 있는 것이 아닌가 ?
왜 마지막은 이렇게 초라할까 그러면 지금의 교회는 어디에 있어야되는가 하는
생각을 참 많이 있었습니다.
어젯밤 제가 말씀을 점검하다가 예전에 옥한흠목사님께서 보내주신
메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벌써 12년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박목사님 내외분께,
주일날 은혜의교회 계단을 올라가는데 가슴이 벅찬 은혜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성가대들이 천사와 같은 얼굴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정말 오래만의 감격이었어요. 정말 아름답고 건강한 교회를 20년 동안 일으킨
두 분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대견해 보였는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다들 어렵다고 하는 제자훈련을 통해 훌륭한 평신도
동역자들이 여기저기서 신바람 나게 봉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모든 교회들이 다 은혜의교회처럼 되게 해 달라는 기도가 마음에서 절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메일은 다시 한 번 나에게 은혜의 샘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그렇게 아픈 이야기들이 가슴속에 맺혀 있었는지를 미처 몰랐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고통이 변장된 축복이 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밖으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예측 가능한 목회를 해야 합니다.
미리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이며 어떤 문제들이 생길 수 있는지를
예측하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성경을 묵상하면 성령께서 통찰력을 주실 것입니다.
사모님과 두 자녀들을 보면서 퍽 자랑 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보실 것입니다.
우리 남은여생 주님을 더 사랑하면서 최선을 다하도록 합시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어 감사합니다. 교우들에게도 안부 바랍니다.
새해에는 모든 기도가 응답받는 풍성한 은혜가 있기를 빕니다. 샬롬.
이 편지가 옥목사님이 제게 보내주셨던 마지막 편지구요
제 마음에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도 보면 바울이 마지막 로마에서 이태동안 거하면서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순교의 재물이 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막을 내립니다
한사람이 떠납니다.
문정희작가가 쓴 고백가운데 “한사람이 떠나는데 서울이 텅 비었다” 하는 고백이 있습니다.
한사람이 떠났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전혀 다른 그 무엇을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한사람이 떠났는데 하나님은 세상을 가득히 채우시는 역설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세요. 한사람 예수께서 십자가에 생명을 내 놓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복음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또 한사람이 마지막까지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의 운명을 달리하는데
하나님은 로마에 복음으로 가득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초라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하나님의 역설이 항상 성경의 현장마다 존재한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 하세요
한사람이 떠나가면 복음이 끝나는가?
하나님의 나라가 중단 되는가 ?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단은 교회를 어떻게든 입 다물게 하려고 애를 쓰지만
그럴수록 생명의 복음은 더 파급되었고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다는 것을 역사는 우리 앞에 증명합니다.
핍박이 강할수록 복음의 역사는 더 확장되었습니다.
한사람의 생명이 끝날수록 하나님의 나라는 더 확장되었습니다.
역사가의 말처럼 기독교는 좀 섬뜩하지만 피를 먹고 자라는 종교처럼
한사람의 생명이 끝날 때 핍박을 통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이 끝날 때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을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덮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공동체는 어떠할까요?
과연 나를 통해 하나님의 생명력이 파급되는지 아님 그 생명력이 내게만
국한되어 있는지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이 성령론자들이 흔히 말하는 그 성령의 능력, 권능
이런 것들이 서서히 후반부를 향해 갈수록 사라져가기 시작합니다.
특히 바울의 사역이 시작될수록 그는 가르쳤고 가르쳤고
마지막엔 사도행전 28장에 보면 로마까지 끌려가서 스펙타클한
성령의 기사와 표적을 나타 낸 것이 아니라 2년 동안을 가르치는 것으로 그의 삶이 끝납니다.
제가 읽다가 28장에서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2년 동안을 셋집에서 가르쳤네 거기서 표적이 없었네 ?
로마가 그 앞에 굴복하고 로마가 뭔가 강력한 성령의 바람이 불어야 되는데
왜 가르치는 것으로 끝냈을까? 분명히 The end인데 끝인데 continue같이 보여요
뭔가 더 있을거 같아요.. 그런데 그때 제 마음속에 성찰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어떤 곳인가 목회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남겨진 며칠 동안
그것 때문에 제가 굉장히 마음에 고뇌가 있었습니다.
* 마의 삼각지(三角地)와 인천 삼경(仁川三景)
처음에 개척교회를 시작하고 너무나 힘들었을 때 난 이제 목회 안한다. 고심했었습니다.
난 제대로 목회 하는건가 ?
그래서 한 번 더 해보자 그래서 교회의 목표를 바꿨습니다.
가르치자 가르치자 이제 은사집회하지 않겠다 가르치겠다.
성령의 어떤 이슈, 방어 말하지 않겠다 가르치겠다.
하나님 제게서 은사를 거둬가셔도 좋습니다.
저는 가르치겠습니다. 그래서 가르침이 시작이 되었어요.
옥목사님과는 항상 마음속에 그 통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가까이 하지 못해도 늘 그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그분의 제자는 아닙니다.
그런데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기꺼이 저의 은사가 되어주셨구요.
항상 관심 가져주었고 항상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당신이 가졌던 비전이 우리교회에도 이루어지고 오히려 당신의 공동체보다
더 이루어 진다는 것 때문에 그분은 굉장히 좋아하셨습니다.
우리교회를 중심으로 평신도가 없다는 책을 써냈을 때
그분이 머리말을 써주었어요 나는 평신도를 깨운다였는데
너는 평신도는 없다고 하느냐? 사실은 그게 맞다 그게 래디컬처치의 모습이죠
급진적인 교회, 성경을 중심으로 교회가 세워지고 성경을 중심으로 사역하고
성경을 중심으로 우리가 부름 받은 특권에만 안주 하는 것이 아니라 보냄 받은
그 사명 앞에 응답하는 그 공동체 목회자에 의해서 움직이는 공동체가 아니라
모든 동역자들에 의해서 상호 사역하는 그 공동체 그것이 성경적 교회인데
우리는 좀 뭔가 너무 조직화 되었고 너무 경직된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거에요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 받은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제는 누군가를 말씀으로 섬기고
그들을 가르쳐내기 시작하는가 ! 이것이 교회의 모습인데 과연 나는 그러한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하라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말씀하시는 지상명령에 순종해야 함에도
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만족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이 교회의 진정한 모습은 아니란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두주가까이 종교개혁세미나를 같이 하면서 이 말씀을 계속 묵상했구요
어떻게 보면 사도행전의 마무리를 져야하는데 제 마음에 울리는 거에요
특히 이 말씀은 제가 논문제목도 사용했고 우리교회 어떻게 보면 슬로건인데
과연 잘하고 있는가? 이것은 끊임없는 질문이었습니다.
은혜의교회는 목사 한사람이 있는 교회가 아니라 모두가 사역자인 공동체입니다
그것이 성경적이기 때문입니다
목사에게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으로 가슴을 채움 받고
부름 받은 특권뿐 아니라 보냄 받은 소명 앞에 응답하는 그 한사람이
행하는 위대한 역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어요.
우리교회가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되긴 어렵겠지만
그러나 유일한 교회는 될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평신도들이 교회를 섬겨서 진정 성경적인 그 교회를 완성하는 이것을
다른 말로 래디컬처치(Radical Church)라고합니다.
급진적인 교회 사실 급진적이지만 성경적인교회죠 성경에서 모든 근거를 찾고
성경에서 모든 결과를 성취하는 그 교회는 될 수 있지 않을까요 ?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과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제 마음에 뭔가 해답을 준 것 같아서 한번 해 봅시다 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사역자로
헌신하는 그 공동체가 왜 없는가? 왜 성직자는 교회 안에만 있어야하고
성도들은 교회 바깥에서 그저 주일날만 교회에 드나들어야 되는가
그들이 가는 모든 곳이 성직의 현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인가
직장이 성직이 되고 가정이 성직자의 현장이 되고 공동체가
그렇게 함께 완성해나가는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가 ?
이것이 급진적인 이 사람의 가르침이었어요? 거기 있던 신학생들이 다 들었죠
그리고 다 잊었어요.. 그 강의가 끝났을 때 그중의 한사람이 혼자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 제가 바로 그 교회를 하고 싶어요
그 사람이 바로 시카고 커뮤니티처치 빌 하이벨스였습니다
교회는 어디에 연결되어 있습니까 ?
예수 십자가 죽으심, 부활, 그분의 승천 그리고 다시 오심에
대한 거룩한 갈망 그리고 우리에게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각 사람 믿게 하셨죠
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사도행전적인 교회를 이룬다면 어떤 은사 뿐아니라
오늘 이 본문과 연결이 되어야합니다.
사도행전 29장 가르쳤더라 가르쳤더라 !!
결론을 맺습니다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이것이 오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교회의 교회됨이 아닐까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료하고 또 한사람을 제자로 삼고 당신이 또 누군가를 섬겨서
그들을 제자로 삼고 순장이 순원들을 섬겨서 제자로 삼고 또 그들이 순장이 돼서
누군가를 제자로 삼고 그런 거룩한 생명력이 약동된다면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공동체가 아닐까요?
오늘 우리 안에 그런 소중한 신 사도행전 29장이
아름답게 계승되어 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