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19-03-10 20:50
조회
2208
3월 10일 주일 2,3부예배 ㅡ 감동! (눅7:36-50)
*영성가 ㅡ 탐 스월튼은 이런말을 했습니다.
*영적 퇴보에 대한 증상
*감동이 사라진다.
예배 기도 헌신의 감동이 있는가 ?
감동 없는 예배와 헌신은 신앙자체를 무너지게 합니다.
은혜와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동력을 감동이라고 말합니다.
성숙한 크리스찬은 가슴속에 항상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연조, 기도의 시간, 다 좋지만
감동이 없으면 공로나 권위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행동하신 놀라우신 은혜다
*신앙생활을 감동으로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
은혜가 주어진 하나님의 사람들은 은혜에 대한 감동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탐 스월튼은
언제까지 마음이 동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은혜 앞에 나서서 하나님을 찾아나서는
행동이 필요하다 라고 말합니다.
이 예배의 현장도 끊임없이 삶의 은혜를 공급하는 시간이 되게 해야 합니다.
감동의 삶이 무뎌지면 영성이 사라집니다.
바울처럼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하며 오늘의 은혜로 사는 것을 진정한 영성이라 말합니다.
*눅7:31-32--그 당시의 시대상만이 아닌 이 시대의 모습
-감동을 잃어버린 시대
-감동을 잃어버리면 삶의 의욕이 없다
*감동(感動)받지 못하면 인생은 실패한다
*감동 못 받으면 어떤 삶이 되는가?
* 기쁜 일에도, 슬픈 일에도 동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ㅡ 감동을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감동을 상실한 채 자신의 윤리도덕만을 앞세우는 그들의 비판입니다.
*눅7:34—36—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의 비판
*세례 요한은 미쳤다 –오실 메시아를 선포하며 금식하며 기도할 때
*예수는 먹기만 탐한다 –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공유하며 잔치할 때
감동이 없기에 ㅡ 공로 행위만 남고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사라졌기에ㅡ 율법주의자가 된 것입니다.
*억울하다! - 공동체 안에 억울하다 라는 생각이 많으면 위험해집니다.
동역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ㅡ
교회가 성장해 가면서 목회자의 삶과 동역자들의 삶이 함께 나아진다면 좋겠지만
여전히 성도들의 삶은 어려움에 처해있다면
그들이 바라보는 목회자의 삶과는 동떨어지게 됩니다.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위험해집니다.
동병상련의 마음들이 사라진다면...
설교할 때 누구에게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가 ? 고심하게 됩니다.
충성했고 물질 드렸는데 나는 여전히 바닥이라면
억울함과 더불어 마음속에 악감정이 남게 되기에.....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 드린 것은 언제인가 하나님이 보상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받을 상에 대해서 기대하며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기에...
*교회 내에서의 감동 못하는 사람의 특징 ㅡ*오직 비판 ,정죄
*비판거리만 찾는다
*인생을 전혀 다른 존재로 , 열악한 존재로 만든다
ㅡ“성숙한 신앙은 인생의 모든 문제들을 사랑 많으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주변으로 끌어 모은다.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의 조건으로 삼는다.
좋지 못한 일이 생기면 그 일이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사건 속에서 하나님과 결별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이 그 나쁜 일들까지 나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놓지 않는다
믿음의 사람들을 두려움이 아니라 신뢰의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본다“ㅡ마크 반 도렌(시인)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의 삶이 되어야합니다.
언제인가 하나님이 좋게 하실 것을 기대하는 삶이 복됩니다.
*신앙생활은 가슴에 ‘거룩한 불을 담고 사는 것 ’
본론입니다.
죄 많은 한 여자! - 귀신들린 여자 ,. 창기였던 여자.
이 여인의 죄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 아니면 우리는 다 죄인이기에....
*죄 ㅡ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불신
본문에 보면 여인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헌신을 드립니다.
*눅7:36-38- 예수의 뒤로 , 그 발 곁에 서서, 무릎을 꿇고 울며...
*여인의 헌신의 동기
*은혜를 입었기에..... 이미 용납 받았던 존재
*사랑하기에......
제자들은 그 여인이 향유를 깨뜨린 것에 대해서만 비판하며 허비하였다고 힐 때
그 여인은 은혜에 대하여 감동하였기에...
* 감동받은 사람의 특징 ㅡ 이미 받은 바 은혜가 너무나 크기에
사랑하기에 감동했기에 가능했습니다
본문을 다룰 때 죄를 용서받은 이 여인이 삼백 데나리온의 옥합을 드립니다.
예수께서 베푸신 사랑에 대한 감동의 마음을 드렸고
주님은 기꺼이 그 마음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오직 감동을 드립니다,
눅가복음 7장 36절에 보면
바리새인 시몬과 죄인인 한 여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문둥병이 고침 받았음에도 예수께서 자기 집에 들어오실 때
발 씻을 물도 준비하지 않고 입도 맞추지 않았는데 ...
이 여인은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붓습니다.
무엇이 이렇게 다른가요? 비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해할 부분은 ...이 여인의 사랑에 대한 감동이었습니다.
주님은 그 여인의 그 행동을 기꺼이 받으셨습니다.
죄 사함 받았기에 감동으로 행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 !
나는 감동 하는가 ?
감동하지 않으면 우리 삶은 정죄하고 비교하고 억울해하고 분노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내게 임한 하나님의 사람은 감동만이 존재합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사람의 죄를 사한다는 본문들이 마가복음2장에 등장합니다.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가지고 예수께 올 때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실 때 ’
저가 누구기에 죄 사함을 행하는가 ? 사람들이 분노 할 때
중풍병자에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
다 불가능합니다.
내가 이 사람을 일어나 걸어갈 수 있게 하는 능력을 드러낸다면 ...
이 사람의 죄도 용서하는 능력이 있음을 그들에게 드러내는 것이기에...
‘ 선포합니다.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하시니.... ’
그 사람이 일어나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저희가 놀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주님께는 그런 능력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의 죄를 사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여인의 감동의 동력, 헌신의 동력이 됩니다.
눅 7 :50절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하십니다. ’
사람들은 여전히 여인을 향해 옥합을 허비한다고 원망 비판하지만
이 여인은 오직 감동으로 드렸기에...
주님은 그것에만 집중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속하신 것에 대한 감동을 드리는 자.
그 전 마음을 주님께서는 기뻐 받으신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은혜의 공동체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가 보다
얼마나 감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 안에 그런 끊임없는 성찰, 결단, 은혜에 대한 감동이
우리 안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