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19-03-05 16:14
조회
3924
주일 예배 2부 3부ㅡ'들으라! 결실을 맺으라!' (막4:10~20)
들으라! 결실을 맺으라! ( 마가복음 4: 10~20절)
성경은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 말씀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내재하시면 예수를 주로 믿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고백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성령은 또한, 지금도 우리 안에서 듣는 마음을 끊임없이 공급하십니다.
성령이 들어오시면 말씀을 듣고 순복하게 하는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듣는 것은 ㅡ그 사람의 능력입니다.
성령이 듣게 하시는 말씀이 우리의 영성을 형성합니다.
듣는 힘이 그 사람의 영성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성령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믿는 현장이 있습니다.
“내게 지금 말씀이 들려오는가?”
이것은 내가 진리 안에 있는가?를 점검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10년이 지나도 말씀이 들려오고 그 말씀이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영성있는자. 성령의 사람입니다.
듣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전인격적인 신앙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지,정,의 ㅡ머리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하고 삶으로 행동해야만 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그렇게 행하게 하셔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듣는 마음이 진정한 복입니다. 말씀이 들려올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경험하고‘
내가 성령의 사람이구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한 농부가 밭에 동일한 씨앗을 뿌리고 동일한 수고를 드렸는데
그런데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본문은 씨가 뿌려진 네 가지 마음 밭의 비유라 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씨앗이 왜 동일한 열매를 못 맺을까?
그것은 밭의 문제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그 씨앗은 죽어야 하고 썩어야 합니다.
씨앗은 작고 미약해 보이지만 그 안에 생명의 잠재력을 품고 있습니다
* 막 4:15 길가에 떨어진 씨앗 ㅡ 새들이 먹어버립니다.
이것을 성경은 ‘마귀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는다’ 라고 말합니다.
* 막 4:16 돌밭에 떨어진 씨앗 ㅡ즉시 기쁨으로 받습니다.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말씀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해버립니다.
문제는 말씀에 깊이가 없습니다.
환란이나 핍박이 올 때 그 문제를 이기지 못합니다.
그 삶을 이끄는 동력이 되지 못합니다.
*막 4:18~19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 ㅡ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근심이 우리 마음을 장악합니다.
말씀을 듣긴 해도 고난 앞에서 의구심이 일어납니다.
우린 약하고 무능하지만 절망하지 말아야합니다.
주는 살아계시고 강하시고 역사하시기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
* 막 4:20 – 좋은 땅 , 옥토에 떨어진 씨앗
결국 네 가지 마음 밭 중에서 ㅡ 열매를 맺는 마음 밭은 옥토입니다.
듣는 마음을 성경은 복되다 말씀하십니다.
단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듣고 깨달은 말씀에
순종하여 전인격적인 변화가 삶 속에 형성되기에 듣는 마음은 복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는 어떤 의미의 비유일까요?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비유라고 성경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더 풍성히 임하는가?
그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지금 죽어서 영혼이 가는 천당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모든 우리 삶의 영역
장차 임할 온 우주 ,천당뿐 아니라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통치가 되어야 하는데
그 모든 영역을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현실이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뢰하는 삶이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해나가는 삶인 것입니다.
날이 저물어 갈 때, 빈들에서 걸을 때, 그때가 하나님의 때 ,
내 힘으로 안 될 때,
내가 무능하고 아무것도 아닐 때
그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내가 눈물의 골짜기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고 선하신 분임을 고백하는
그 사람이 진정 성령의 사람의 사람이요, 옥토를 가진 복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순종의 현장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일차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십자가에 온전히 내려놓는 현장이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현장이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듬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아래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5:5~11)
여전히 광야를 걸어도 성령이 듣게 하시고,
환경과 상관없이 언제나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다는 고백을 드리는 그들,
진정한 옥토의 삶입니다.
*미드바르 – 광야 – 음성이 들려지는 곳
구약에서 광야를 ‘미드바르’라 칭합니다.
이것은 듣는다는 따바르에서 온 말입니다.
<따바르 = 듣는 다> 인생의 광야를 걷는 현장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음성이 들려져야 인생이 복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들려올 때, 우리는 삽니다. 우리는 회복됩니다.
예배시간은 힘을 공급받고 삶의 가치, 인생의 가치를 회복하는 복된 시간이 되어야합니다.
오늘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모두에게
이 세미한 주님이 음성이 들려지고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고백하는 삶
주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