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21-01-10 09:57
조회
1464
1월10일 주일 온라인예배 2부 ㅡ 5부까지
9시 2부예배 ...
은혜의 공동체!'(행2:42~47)
우리가 너무나 잘아는 다윗의 고단한
삶이 등장합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시기 당해서 야인생활, 즉 죽음의 고비를
넘나드는 방랑자의 삶, 참으로 고달픈 광야생활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가운데 위기를 모면한 후
아둘람이라는 곳에서 피신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를 따라서 함께 하는 400명의 동지들이 거기에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원통한 무리들!
1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명 가량이었더라(사무엘상 22:1-2)
다윗의 가족은 물론 400명의 원통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다윗 주변에 모여듭니다
그 시대 외면 당한자들, 사울의 통치에 적개심을 갖던 자,
또 억울한 마음을 가진 자와 빛진자들 모두가 모여 함께합니다.
그들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공통분모는 바로 원통함이었습니다. 다윗은 그들의 리더가 됩니다
*아둘람 ㅡ은신처, 피난처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이 초창기에 운둔했던 장소.
도망자 다윗을 따라 모이게 된 사백 명 정도의 야인들!
그것이 아둘람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울분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국가를 재건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다윗을 도울만한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저 가슴에 한을 품고 시대를 도피했던 자들이었습니다.
다윗의 삶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이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다윗과 함께 몇 년 동안을 동거동락했지만 그들은 입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은 간절히 기도합니다
함께 하는 이 동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나가지만
우리 민족을 향한 전쟁터에는 나가지 않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블레셋의 마음을 움직여 다윗을 전투에서 돌려보냅니다.
다윗의 마음에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요 ?
이제 내가 살았다..
하지만 돌아와 보니, 성은 불타고 가족들은 이미 아말렉 사람들의 포로로 끌려간 처참한 상황을 보게 됩니다. 그때, 다윗의 동료들의 눈빛이 변하고 그들은 다윗을 탓합니다.
돌을 들어 죽이려고 합니다
이것이 다윗과 함께했던 그의 동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한때는 믿고 의지 했지만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돌변하는 모습.
끝까지 한 팀이라 여기기엔 역부족인 그 사람들과
다윗은 묵묵히 함께 합니다.
이런 가운데 그는 살아남아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으로 역사의 무대에 서게 됩니다.
오늘 또 하나의 공동체가 등장합니다.
바로 예루살렘 공동체.
예수님이 능력을 드러내고 권능의 말씀을 들을때마다 그들은 흥분합니다.
저 분이 메시아시다
우리가 시대에 눌리며 살았지만 저 분을 따르면
모든 아픔과 눈물이 회복될 것이다,..
저분만이 진정한 메시아로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며.
세계를 통치하는 왕위에 우리도 함께 서게 될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바램이자 열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그토록 믿고 따랐던 예수가 십자가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고 돌아가시자 제자들과 무리들은 모두 도망칩니다.
베드로조차도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예수를 따랐다는 이유로
혹시나 해를 입을까봐 두려워 떨며 숨어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
성령의 강림을 통해 형성된 초대 기독교 공동체
주님이 다시 살아나심을 알았을 때
제자들은 전 세계를 통치할 예수님을 통해 얻게 될 영광을 꿈꾸며 또다시 야망으로 부풀었습니다.
하지만 감람산에서 그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헛된 바램으로 보는 제자들에게 천사는 말합니다.
‘올려가신 예수는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제자들은 마가 다락방으로 모이게 되고
오순절 드디어 성령이 임합니다.
최초로 나타난 성령의 역사.
방언, 즉 세상의 모든 언어로 예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외쳤던 최초의 복음이었습니다.
디아스포라, 흩어진 유대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기이하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의 언어를 듣는 구나’ 하며
성령의 능력을 그들의 반응에 베드로는 강력하게 복음을 증거합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하신 그 예수가 다시 살아나셨고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고 그분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분이 다시 사심으로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되고 통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이 선포될 때 3.000명이 회개하고
비로소 공동체가 세워집니다
말씀을 배우고 흩어지면 복음을 전하는 최초의 공동체.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 공동체 였습니다.
그들 또한 시대에 억눌리고 배척당했고 믿고 따르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어 달리는 가슴 아픔을 경험하지만
이들은 아둘람 공동체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갖습니다.
울분만을 가슴에 담은 아둘람 공동체와는 달리
이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감동의 공동체였습니다
자신을 핍박하는 세상을 끌어안고 자신들이 믿는
피 묻은 예수를 증거하는 거룩한 공통체였습니다.
그들로 인해 예루살렘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복음으로 변화되는 위대한 반전이 드러나게 됩니다.
은혜의 공동체가 천막교회로 시작했을 때
억눌린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서러움과 눈물이 많았던 사람들이 모여 초대공동체를 이뤘습니다.
목사도 성도의 삶도 모두가 어렵고 힘들어 모여서 기도는 했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은혜의 공동체였습니다
그런 공동체를 35주년을 지나 이렇게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비전과 소망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오셨습니다.
지금 은혜의 공동체에 소속하신 분들은
과거를 잘 모르시겠죠
그 가슴속에 있던 분노, 아픔, 눈물을 어루만지고
보듬었지만 그만큼 갈등과 충돌도 많았습니다.
그 당시 신축된 신동아아파트에 사는 분들이 교회에 오게되면서
판자촌에 사시는 분들의 소외감으로 인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자동차라도 타고 오면 상실과 박탈감으로 힘들어했던 모습이 우리 공동체였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가슴앓이하는 분들이 많지만...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모든 어려운 상황에서도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상처와 응어리를 덜어내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른 후에
모든 사람, 심지어 사울의 왕가까지도 끌어안고 회복한 것처럼
우리 은혜의 공동체에도 회복과 치유와 소망이 있었습니다.
*안락한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
그렇기에 우리는 안락한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은혜의 공동체 사명선언문이 있습니다.
*은혜의 공동체 비전(사명 선언문)
1)말씀으로 섬겨서 모든 동역자를 세워라.
2) 받은바 은혜와 은사를 따라서 서로 상호 사역하는 공동체
3)거룩한 복음의 열정으로 가득한 공동체
4)믿음, 헌신, 순종의 현장감을 드러내는 공동체
*당신은 동역 자
지난 35년 동안 공동체가 걸어온 길은
파란만장했습니다.
눈물도, 아픔도, 분노도 많았습니다.
코로나라는 초유의 사태를 지나며 비대면으로 35주년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는 더 무릎 꿇고 그 은혜를 사모하는 공동체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가에 만족하지 말고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가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오늘 예루살렘 공동체의 진정한 면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름 받은 특권만이 아닌 보냄 받은 소명 앞에 여전히 응답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공동체가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공동체의 진정한 존재의 이유입니다.
고든 맥도널도의 인용문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웬만한 일에는 세상도 교회 못지 않거나 더 낫다.
하지만 세상이 못하는 일이 하나 있다. 세상은 은혜를 베풀 수 없다.
복음을 전할 수 없다, 복음을 줄 수 없다. ’
교회들이 세상을 향해 나름대로의 요구를 합니다.
그것은 적대감이나 분노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진정한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만이 우리가 감당할 최선의 사명이자 능력입니다.
세상은 원통함 분노가 가득하지만 교회는 세상을 끌어안고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다시 오실 에수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가슴을 이해하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함께 모여 예배하지 못하고 말씀 훈련받지 못하고 복음전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하나님의 회복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세상을 향한 거룩한 복음앞에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오늘 거룩한 사명 선언문을 다시한 번 마음속에 새기며
주님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소중한 사명을 감당하는
동역자들로 항상 완성되어가시길 바랍니다.
은혜의 공동체!'(행2:42~47)
우리가 너무나 잘아는 다윗의 고단한
삶이 등장합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시기 당해서 야인생활, 즉 죽음의 고비를
넘나드는 방랑자의 삶, 참으로 고달픈 광야생활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가운데 위기를 모면한 후
아둘람이라는 곳에서 피신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를 따라서 함께 하는 400명의 동지들이 거기에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원통한 무리들!
1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명 가량이었더라(사무엘상 22:1-2)
다윗의 가족은 물론 400명의 원통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다윗 주변에 모여듭니다
그 시대 외면 당한자들, 사울의 통치에 적개심을 갖던 자,
또 억울한 마음을 가진 자와 빛진자들 모두가 모여 함께합니다.
그들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공통분모는 바로 원통함이었습니다. 다윗은 그들의 리더가 됩니다
*아둘람 ㅡ은신처, 피난처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이 초창기에 운둔했던 장소.
도망자 다윗을 따라 모이게 된 사백 명 정도의 야인들!
그것이 아둘람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울분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국가를 재건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다윗을 도울만한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저 가슴에 한을 품고 시대를 도피했던 자들이었습니다.
다윗의 삶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이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다윗과 함께 몇 년 동안을 동거동락했지만 그들은 입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은 간절히 기도합니다
함께 하는 이 동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나가지만
우리 민족을 향한 전쟁터에는 나가지 않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블레셋의 마음을 움직여 다윗을 전투에서 돌려보냅니다.
다윗의 마음에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요 ?
이제 내가 살았다..
하지만 돌아와 보니, 성은 불타고 가족들은 이미 아말렉 사람들의 포로로 끌려간 처참한 상황을 보게 됩니다. 그때, 다윗의 동료들의 눈빛이 변하고 그들은 다윗을 탓합니다.
돌을 들어 죽이려고 합니다
이것이 다윗과 함께했던 그의 동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한때는 믿고 의지 했지만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돌변하는 모습.
끝까지 한 팀이라 여기기엔 역부족인 그 사람들과
다윗은 묵묵히 함께 합니다.
이런 가운데 그는 살아남아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으로 역사의 무대에 서게 됩니다.
오늘 또 하나의 공동체가 등장합니다.
바로 예루살렘 공동체.
예수님이 능력을 드러내고 권능의 말씀을 들을때마다 그들은 흥분합니다.
저 분이 메시아시다
우리가 시대에 눌리며 살았지만 저 분을 따르면
모든 아픔과 눈물이 회복될 것이다,..
저분만이 진정한 메시아로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며.
세계를 통치하는 왕위에 우리도 함께 서게 될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바램이자 열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그토록 믿고 따랐던 예수가 십자가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고 돌아가시자 제자들과 무리들은 모두 도망칩니다.
베드로조차도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예수를 따랐다는 이유로
혹시나 해를 입을까봐 두려워 떨며 숨어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
성령의 강림을 통해 형성된 초대 기독교 공동체
주님이 다시 살아나심을 알았을 때
제자들은 전 세계를 통치할 예수님을 통해 얻게 될 영광을 꿈꾸며 또다시 야망으로 부풀었습니다.
하지만 감람산에서 그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헛된 바램으로 보는 제자들에게 천사는 말합니다.
‘올려가신 예수는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제자들은 마가 다락방으로 모이게 되고
오순절 드디어 성령이 임합니다.
최초로 나타난 성령의 역사.
방언, 즉 세상의 모든 언어로 예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외쳤던 최초의 복음이었습니다.
디아스포라, 흩어진 유대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기이하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의 언어를 듣는 구나’ 하며
성령의 능력을 그들의 반응에 베드로는 강력하게 복음을 증거합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하신 그 예수가 다시 살아나셨고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고 그분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분이 다시 사심으로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되고 통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이 선포될 때 3.000명이 회개하고
비로소 공동체가 세워집니다
말씀을 배우고 흩어지면 복음을 전하는 최초의 공동체.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 공동체 였습니다.
그들 또한 시대에 억눌리고 배척당했고 믿고 따르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어 달리는 가슴 아픔을 경험하지만
이들은 아둘람 공동체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갖습니다.
울분만을 가슴에 담은 아둘람 공동체와는 달리
이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감동의 공동체였습니다
자신을 핍박하는 세상을 끌어안고 자신들이 믿는
피 묻은 예수를 증거하는 거룩한 공통체였습니다.
그들로 인해 예루살렘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복음으로 변화되는 위대한 반전이 드러나게 됩니다.
은혜의 공동체가 천막교회로 시작했을 때
억눌린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서러움과 눈물이 많았던 사람들이 모여 초대공동체를 이뤘습니다.
목사도 성도의 삶도 모두가 어렵고 힘들어 모여서 기도는 했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은혜의 공동체였습니다
그런 공동체를 35주년을 지나 이렇게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비전과 소망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오셨습니다.
지금 은혜의 공동체에 소속하신 분들은
과거를 잘 모르시겠죠
그 가슴속에 있던 분노, 아픔, 눈물을 어루만지고
보듬었지만 그만큼 갈등과 충돌도 많았습니다.
그 당시 신축된 신동아아파트에 사는 분들이 교회에 오게되면서
판자촌에 사시는 분들의 소외감으로 인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자동차라도 타고 오면 상실과 박탈감으로 힘들어했던 모습이 우리 공동체였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가슴앓이하는 분들이 많지만...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모든 어려운 상황에서도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상처와 응어리를 덜어내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른 후에
모든 사람, 심지어 사울의 왕가까지도 끌어안고 회복한 것처럼
우리 은혜의 공동체에도 회복과 치유와 소망이 있었습니다.
*안락한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
그렇기에 우리는 안락한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은혜의 공동체 사명선언문이 있습니다.
*은혜의 공동체 비전(사명 선언문)
1)말씀으로 섬겨서 모든 동역자를 세워라.
2) 받은바 은혜와 은사를 따라서 서로 상호 사역하는 공동체
3)거룩한 복음의 열정으로 가득한 공동체
4)믿음, 헌신, 순종의 현장감을 드러내는 공동체
*당신은 동역 자
지난 35년 동안 공동체가 걸어온 길은
파란만장했습니다.
눈물도, 아픔도, 분노도 많았습니다.
코로나라는 초유의 사태를 지나며 비대면으로 35주년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는 더 무릎 꿇고 그 은혜를 사모하는 공동체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가에 만족하지 말고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가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오늘 예루살렘 공동체의 진정한 면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름 받은 특권만이 아닌 보냄 받은 소명 앞에 여전히 응답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공동체가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공동체의 진정한 존재의 이유입니다.
고든 맥도널도의 인용문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웬만한 일에는 세상도 교회 못지 않거나 더 낫다.
하지만 세상이 못하는 일이 하나 있다. 세상은 은혜를 베풀 수 없다.
복음을 전할 수 없다, 복음을 줄 수 없다. ’
교회들이 세상을 향해 나름대로의 요구를 합니다.
그것은 적대감이나 분노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진정한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만이 우리가 감당할 최선의 사명이자 능력입니다.
세상은 원통함 분노가 가득하지만 교회는 세상을 끌어안고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다시 오실 에수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가슴을 이해하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함께 모여 예배하지 못하고 말씀 훈련받지 못하고 복음전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하나님의 회복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세상을 향한 거룩한 복음앞에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오늘 거룩한 사명 선언문을 다시한 번 마음속에 새기며
주님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소중한 사명을 감당하는
동역자들로 항상 완성되어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