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18-01-21 19:34
조회
959
1월21일 주일2부, 3부, 5부예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행4:19~21)
노예제도는 범죄한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참혹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노예제도가 성경에 등장할 때가 있는데
성경은 그들이 자원하여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고백은 굉장히 위험한 고백입니다.
‘주의 주권 앞에 철저히 순복하겠다’는 고백이 담겨있습니다.
철저히 자기는 없고 예수만 살아있는 삶의 정체성을 성경은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상속자인가?’
“동시에 당신은 그리스도의 종인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고백에는 신중하면서도 자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노예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존 맥아더의 <슬레이브>를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신앙인들에게 ‘그리스도’인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따르는 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 이름은 애초에 불신자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비웃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비웃음으로 시작된 그 칭호는 곧 존경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동일한 자들,
예수님의 충성스러운 추종자로 간주되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용어를 자신에게 적용해야 했다.”
책 한 권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노예란 전적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매사에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겠다는
자발성과 열망으로 오직 주님이 만족하시는 것에 동기 부여되는 삶을 의미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노예입니다.
“제자냐?” 물을 때는 “네 제자입니다”라며 쉽게 대답하지만,
노예냐 물을 때는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제자와 노예를 같은 의미로 다룹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노예가 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노예 된 삶은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 전적인 소유권이 주님께 있다.
- 무조건적인 복종
- 오직 헌신(내 전인격을 드림)
- 전적인 의존
- 책임 완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그리스도인’된 우리 모두는 오직
그분의 소유, 노예라는 것에 동의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거룩한 영향력이 그리스도의 종 된 사람들로부터
파급되는 현장을 볼 수 있습니다. 감기의 전염성만큼 강한 것이
그리스도의 종 된 사람들의 선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인 자를 일으켜 세웁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어라!” 기적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무리는 경이로운 모습으로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봤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의 능력이 아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임을 고백합니다.
그러자 남자만 5.000명이 구원 얻는 표적이 나타납니다.
이 사건으로 종교지도자들이 위협을 받기 시작합니다.
예수의 영향력이 확증되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은 혼자 믿고 끝나면 안 됩니다. 반드시 영향력이 있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면, 그것이 조용히 있을 일입니까?
거룩한 영향력은 나를 통해서 전이가 되어야 합니다.
<코뿔소 교회가 온다>의 저자 어윈 맥매너스는 신학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과 맞닿아 있는 목회를 꿈꾸고 카바레를 빌려서 교회를 개척합니다.
제가 그곳을 가봤는데, 겉모습은 교회 같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역동적이고 살아있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 겉모습이 예배당다워야 예배당이 아니다.’
‘그 안에 거룩한 복음에 대한 전염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어야 교회구나’임을
깨달았습니다.
대제사장들과 권력층은 베드로와 요한을 협박하면 한 번에 주저앉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달라졌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신 이후 제자들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영향력의 중심에 서는 것입니다.
크든 작든 영향력이 있어야 제대로 믿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삶으로 보냄 받았는데 우리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어윈 맥매너스는 영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영향력의 궁극적인 목표와 가장 바람직한 결과는,
명령이나 힘을 사용하지 않고 우리가 가진 가치관과 열정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반영하는 것이다.”
진정한 영향력은 우리 안에 있는 거룩한 열정이 전이되는 것입니다.
내게 생명의 영향력이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가는 곳마다 복음, 생명력이 전파되는가?’,
아니면 ‘내가 가는 곳마다 갈등이 전파되는가?’ 점검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4: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요한은 야망이 있어서 권력층과 예수를 잇는 매개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권력층은 베드로와 요한이 협박하면 바로 순종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러나 과거의 베드로와 요한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선포하는데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종 된 모습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번 본문에서 만큼은 믿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할 만큼 충분히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며,
소망이란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실 것이라는 확인을 갖는 것이다.
믿음은 당신을 밀고, 소망은 당신을 끌어당긴다.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종교인, 교회 나오는 사람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선언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 다운 삶을 살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고,
그분의 영향력을 증폭시키고, 그분의 이름과 역사하심을 선포해야 합니다.
어디에 있든 나를 통해 거룩한 영향력이 있어야 합니다.
영향력이 없다면 크리스천이 아니라 단지 종교인에 불과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 각자의 삶을 통해 복음의 거룩한 영향력,
생명력이 파급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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