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18-02-11 19:16
조회
975
2월11일 주일2부 3부 5부 예배....
환란 중에서(Ⅱ) 행 5장 40~42절
초대 공동체에 성령의 임재하심이 나타난 이후에 다양한 부흥의 현장이 나타나지만,
핍박도 찾아옵니다. 빛이 강할수록 어둠은 짙어집니다. 그러나 초대 공동체는 핍박에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나아갑니다.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행5:14)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는 비극을 통해서 교회가 긴장감을 갖고 거룩성을 유지합니다.
그런 다음에 교회는 더 강력한 복음을 통해서 날마다 나오는 자가 더하는 역사가 드러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물질적 복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세상의 권력을 위해서도 아니고
순수하고 복음 때문에 공동체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복음이 강력히 드러날수록 핍박이 심해지는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행5:17~18)
예수의 복음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올 때 충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파급될수록 어둠의 권세는 질투하고 시기합니다.
낭만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은 항상 복음을 대적했습니다.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의 당파 사람들은 복음이 증거 될수록 압박감을 느끼고
사도들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
*사도행전 5:19~21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천사가 그들을 옥에서 풀어내고 제자들을 도망가지 않고
성전에 가서 말씀을 가르칩니다. 성전은 종교 지도자들의 심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복음을 증거 하는 사도들의 진정한 가치를 우리 앞에 선보입니다.
핍박이 그들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증거 하는 현장에서
천사가 계속 보호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그들은 또다시 잡힙니다.
왜 이것이 필요했습니까? 거기서 복음을 증거 할 때 그곳이 정화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복음입니다.
선행이나 섬김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지만,
세상을 회복하는 가장 강력한 능력은 복음 외에는 없습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마 21:13)
예수가 성전에 들어가 성전을 청결케 하면서 외쳤던 선언입니다.
바로 이 성전에서 복음을 증거 합니다. 같은 성전이지만, 복음 증거할 때 달라집니다.
생명이 파급되는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죽으심 부활을 통해 회복하고 살리는 현장으로 변화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삽니다. 입을 열어야만 하나님의 생명력이 파급되는 현장이
나타납니다. 설득도 아닙니다. 논쟁도 아닙니다.
화려한 말 기술도 아닙니다. “믿는다”는 그 한 마디면 충분합니다.
복음만이 유일한 소망입니다. 복음은 충분합니다.
*사도행전 5장 27절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그들은 예수의 십자가가 전해질 때 그것이 자신들에게 재앙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가 심판받을 때 그 피를 자신들에게 돌리라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가 사셨다면, 메시아라면 그 자체로 그들에게 재앙입니다.
어떻게든 무너뜨리려 합니다. 사도들을 잡아다가 협박합니다.
사도들은 잡혀도 외치고 살아도 외칩니다. 복음 전할 때 억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해야합니다. 그것이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어둠의 권세는 포기할 줄을 모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가 같이 삼킬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 5:8~9)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지만 자주 낙심합니다. 자주 포기합니다. 세상의 협박 앞에 사도들이 뭐라고 대답하는지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5장 29절~32절 -순종=증인=성령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압박과 협박하는 그들 앞에서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증거 합니다.
압박이 올수록 더 강력히 복음을 증거 하는 것, 이것이 초대 공동체의 능력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순종했습니다. 순종은 증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증인의 삶을 살 때 성령은 더 강력히 역사하십니다. ‘순종한다’, ‘증인의 삶을 산다’,
‘성령이 도우신다’, 이 세 가지는 순환합니다.
이 세 가지가 순환될 때 우리는 진정한 크리스천의 삶을 역동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 38절 -가말리엘의 중재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압박하고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기다려보자는 가말리엘의 중재입니다.
사람에게도 났으면 핍박하지 않아도 금방 무너질 것이요,
하나님께로 났으면 너희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한 때 날뛰던 이단들은 다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왜냐면 이단은 사탄에게서 난 것입니다. 2000년이 흘렀어도 복음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증거 할 때 돕는 자도 나타나고
핍박자도 나타납니다. 그런데 복음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사도행전 5장 40절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가말리엘이 중재했을 때, 그들은 사도들을 잡아다가 채찍질하고 예수의 이름을 전하지 말라고 또다시 압박합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사도행전 5장 41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맞고 피가 철철 흐르는데 좌절하고 절망하고 응분을 품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고 감격합니다. 과거의 그들이 아닙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진정한 능력입니다.
기죽고 포기하고 숨어들고 소극적으로 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5장 42절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왜 크리스천이 약해집니까? 입에서 복음이 증거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러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느니라”
이것은 단순히 “나 예수 믿어”가 아니라 복음 증거와 연결됩니다.
복음을 선포할 때 성령의 강력한 역사하심이 우리 안에 가득 드러나기를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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