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18-03-1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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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6
3월11일 주일예배 ....스데반의 설교! (행7 :33-38)
스데반의 설교! (행7 :33-38)
구속사는 아브라함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마스터플랜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성령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 구속사의 핵심적인 키워드는 언약입니다. 언약은 생명의 약속입니다.
언약은 히브리어로 ‘베리트’입니다. 끊는다는 뜻입니다.
동물의 생명을 끊을 때 쓰는 단어인데 하나님이 생명을 담보로 해서
이루고야 마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이 언약의 한복판에 나를 당신의 자녀로 삼고자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들어있습니다.
이 가슴 벅찬 하나님의 계획에 응답하고 거룩한 감격 속에 사는 삶을
크리스천이라 부릅니다.
오늘 본문에 스데반 집사의 설교 본문이 나와 있습니다.
초대 공동체는 구제에 갈등이 생기자 집사를 세워 이것을 다루게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구제, 재정출납의 효과적인 관리를 위해 세워진 집사가
복음 증거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최고의 사역은 복음 증거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이고 이것을 전달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 7장 4절~5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이끌려 가지만 그곳에 발붙일 땅도 주시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요?
하나님은 유업과 자손을 약속하셨는데 정작 아브라함에게는 누릴만한
땅과 자식도 없었습니다. 그가 100세가 될 때 이삭을 주시는데 그마저도
번제로 바치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 땅에서 아무것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씨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나오게 될 예수 그리스도이며
진정한 유업과 자손은 예수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 18절~19절
요셉을 통해 주어진 성공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번영하는데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일어나
하루아침에 미움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핍박이 일어날 때 모세가 일어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한다는 예표입니다.
*사도행전 7장 20절~23절
모세는 완벽하게 자기가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세의 착각이었습니다. 자기 동족을 학대하는 애굽 관원을 죽였지만,
동족은 그를 대적합니다. 그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40년의 광야 세월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가 얼마나 가슴 아팠겠습니까?
자신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했는데
‘왜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는 한탄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 사람이 자기 말고 다른 이가 없는 완벽한 상황이었는데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도우심으로 삽니다.
모세가 아무것도 아닐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사도행전 7장 34절~35절
모세가 스스로 무언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때 그가 지도자가 됩니다.
인간의 손을 의지합니까? 하나님의 손을 의지합니까?
구원은 인간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모세의 삶입니다.
사도행전 7장 37절~38절
“이스라엘 자손을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
-광야 교회
스데반은 아주 중요한 말을 사용합니다.
‘광야 교회’. 사람들은 보통 건물을 교회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현장입니다. 특정 장소, 건물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의 현장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광야도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광야를 힘겹게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광야가 교회라고 성경은 선포합니다.
그들이 불평했던 광야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매일 반복되는 생활로 권태로워지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내가 왜 사나....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인생이 아닙니다.
똑같은 광야를 걸어도 맹목적으로, 원망으로, 절망으로 걷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에 오늘도 우뚝 서 계신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걸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없는 듯 광야를 걸었습니다.
우리는 전혀 다른 광야를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행복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그의 손길, 인도하심에 따라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사람들은 예수를 천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 안에 영생, 생명이 있습니다.
그분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가 있는가’로
행복의 원천을 따져야합니다. 현실 따라 삽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삽니까?
하나님은 광야 생활 중 이스라엘 백성을 한 번도 떠나시지 않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 은혜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 신명기 1장 29절~31절
크고 두려운 광야였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안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보는 눈이 없이 현실에 급급했습니다.
스데반은 이 내용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똑같은 사람이다. 너희가 메시야를 죽게 했다. 여전히 너희가 예수를 대적하고 있다!”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신 1:32)
이것이 가장 큰 재앙입니다.
* 사도행전 7장 46절~49절
스데반은 성전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임재, 사랑, 성전의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데 그들은 단지 이방인이 만들어준 성전을 자랑삼고 있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행 7:54)
이들은 회개하지 않고 이를 갈고 있습니다.
결국 스데반에게 돌을 던집니다. 가슴 속에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의지하고 매 순간 그 말씀 따라 순종하고
나를 위해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신 사랑에 감사하고
매 순간 은혜로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친 백성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로마서 10장 8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광야를 매일 걸어가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슴에 담고 나를 통해 거룩한 생명이 파급되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매 순간 삶 속에 임재를 경험하고 언약이 어떻게 실현되는가,
나를 존귀하게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에 순복하고 응답하는
우리 모두의 삶이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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