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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부
작성일
2016-07-25 11:30
조회
1303
주일 2부 3부 예배....
축복의 산에 올라 (II)(마4:23~5:3)
인생을 살아가며 복이 무엇인가 생각 할 때가 있습니다.
동역자들을 바라보면서 자식농사가 복인가 싶을 때가 있고
노년에 돈 걱정 하지 않고 건강하여 장수하며 행복 기쁨 누리며 사는 것이
복이라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요즘 생각하는 복은 물질 적이거나 환경적이거나 외형적인 것만이 아니라
내면적인 복에 대해 생각합니다.
내 안의 천국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 속에 진정한 평화. 참 만족은 존재할 수 없을까 ?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때로 많이 갖지 못해서 마음이라도 편했으면 좋겠다 할 때도 있지만
풍족하게 누리고 있어도 그 이상의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아는 것이
진정한 복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어느 책을 읽었는데 이런 글이 있어서 마음에 담았습니다.
나이 들수록 경망스러움, 천박함은 재앙이다 라는 글이었습니다.
인격이 참 중요 하구나 품성이 참 중요하다. 살아가면서 다양한 복이 있겠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크리스찬다운 품성과 삶의 진정한 의미가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복이 무엇인가 ? 우리가 문자적으로 보면 세상적인 가치관을 복으로 여기지만
실제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 시대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도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인 상황입니다. 현실에 급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이 그들의 운명을 바꿔주거나 인생을 바꿔주지 못하면서 그들에게 복을 말한다면...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복이 이미 있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시대를 바꾸거나 환경을 변화시키거나 그것이 아니라
이미 힘들고 곤고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이 이미 갖고 있는 진정한 복에 대해 접근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외형적인 복 말고 우리 안에 있는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성품
1)거듭난 성품
자신 속에 있는 기질 개성...
이 성품은 끊임없이 추구하는 어떤 본질. 목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성품이 참 좋아 ~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겉보기에 저 사람 성품이 좋아보인다 하는데 실제의 모습은 다를 수 있습니다.
온유해 보이는 사람조차도 화가 나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품성이 아니라 성격입니다.
품성은 내게 없는 것이 주어진 것을 품성이라 말합니다.
갈5장22절을 보면 성령의 열매라는 말로 이 은사를 설명 합니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을 바라 보는가 ? 천한 것을 바라 보는가 ?
저는 고린도교회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교회가 이래서는 안 되기에 바라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를 보면서 자꾸 은사를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 공동체에게 바울이 무엇을 강조 하나요 ?
은사의 완성은 사랑이기에... 사랑 없는 은사는 가치 없는 것입니다.
품성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우리 인생의 목표입니다.
성경은 크리스찬의 거듭난 품성이라 말씀 합니다
바울은 과거에 기독교를 믿는 자들의 핍박자 였는데 이제는 복음을 위한 삶으로
원숙한 삶으로 바뀐 것이 그의 기질이 바뀐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로 품성이 바뀐 것입니다. 가치관과 목적이 바뀐 것입니다.
2)그리스도인이면 모두가 갖게 되는 성품 – 이제 시작인 것입니다.
이제 씨앗이 심겨져서 신앙연조와 말씀 훈련과 우리의 기도를 통해
더 자라나야 합니다. 수 십 년 믿었으면 그 품성이 더 더..
성령의 품성이 우리 속에 많아지고 내제되어야합니다
오래 믿었는데 사나워졌다.. 잘못 믿은 것입니다.
기질이 자란 것입니다.
진정한 크리스찬은 내 안에 예수의 품성이 자라나게 해야 합니다.
3)함께 누릴 수 있는 성품
당신에게 있고 내게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누리는 성품이다
공존하는 성품입니다.
4)세상 사람과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를 드러내는 삶의 자세
성경이 말씀하는.. 팔복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품성이고 삶의 본질이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복을 새롭게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이 무엇인가 ?
하나님의 사람 거듭난 사람으로 우리 속에 새롭게 담고 사는
인생의 새로운 가치관 목적이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날마다 더 변화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을 본받지 말라.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하도록 하라
주신 말씀을 통해 성령을 통해 그런 변화의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매 순간을 살아가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1)물질의 가난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다.
2)마음의 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3)외식하는 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중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직한 것. 본질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성경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은 복이 먼저 선언되고
가난이란 말이 연결됩니다.
우리 안에 이미 복이 있기에.. 이러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한다. 심령이 가난하기에 이런 복을 주신다..
오늘도 참아야 한다.
하지만 성경은 복이 있구나.. 심령이 가난한 자여...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미 복이 있음을 선언 합니다
우리는 절대적인 복.. 근본적인 복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세상모든 것은 다 상대적이지만 우리는 절대적인 복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동의할 수 있나요 ?
복 받았다 하면 상대적인 복을 받은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너는 있고 내게는 없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과 절대적인 복은 같은 맥락입니다.
구원도 편견 없이 우리 모두에게 주셨습니다..
이방인, 헬라인, 유대인에게 동일한 구원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우리의 의지나 종교적인 열심이 아니라 성령이 내 인격 속에 동일하게 찾아오셔서
예수를 믿게 하시는 놀라운 역사입니다. 절대적인 복입니다
동일한 성령이 오셔서 동일하게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합니다.
에베소 1장에 보면 창세전부터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주셨다라고 사도바울이 말씀 합니다
그 복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내가 예수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절대적인 복 구원이라 말씀합니다.
이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구원 얻은 사람에게 주어진 놀라운
복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복입니다.
구원 얻은 복...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말씀합니다.
우리는 육체적이라 조건적인 이야기에 끌립니다.
이미 복 받았다 하면... 너무 경쟁사회와 상대적인 세상에 살았기에
절대적인 복에 대해 가치관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경쟁을 통해서 하나 더 얻는 것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도취되어 있다면 위험한 것입니다
가질 수도 있고 못 가질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합니다.
흔히 말하는 보물찾기를 예를 들어 본다면
열심히 노력했어도 누군가는 못 찾을 수도 있는 것 ㅡ 그것이 인생입니다.
더 많이 노력했어도 못 거둘 수 있는 것은 세상이치지만
하나님의 자녀 됨과 하나님의 구원 얻은 백성의 삶을 사는 것은 절대적인 것,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크리스찬들은 여기에 대해서 사무쳐야 합니다.
세상 것은 다 상대적이기에 웃을 수 있고 울 수 있지만 진정한 복이 아닌 것입니다
진정한 복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절대적인 것 !
가장 가치 있는 복을 누리면서도 상대적인 것에 농락당하는 육체적인 신앙입니다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 받습니다 하면 여러분이 귀를 쫑긋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다 받았다고 하면... 내가 뭘 받았지 ? 합니다.
내가 못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그 당시 이미 못 가진 자들. 굶주린 자들에게 주님이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복 받는다 선포하시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안에 이미 복이 있구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이미 자기 안에 있는 복을 누리기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심령이 가난한 것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1.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와 무능력함을 발견하는데서 시작합니다.
현실은 가난한데 마음은 가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모세--자신에게 절망했던 사람.
우리가 모세를 생각할 때 나이 40세에 자기 동족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한 자..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다 생각하지만
사도행전7장에 보면 이 모세에 대한 설명이 잠깐 나옵니다. 스데반의 설교에서
모세가 나이 40세에 하나님이 자신의 손을 의지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할 줄 알았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오판한 것입니다.
그가 40세에 일어서지만 실패하고 시나이 반도에서
40년을 지내다 나이 80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니까
하나님께 대해 격한 심정을 토로합니다.
보낼 자를 보내 십시오 ! 나는 무능합니다. 40년 지나면서 언어도 다 잊었습니다, 합니다.
우리가 볼 때는 모세가 겸손해 보이지만 교만했음을 보게 됩니다.
“나 라는 자아가” 강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내가 뭔가 하려고 할 때 당신은 어디있었습니까?
왜 이제 와서 ! 항변하는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이 말씀 합니다 “ 네 손이 아니다.. 내 손이다 ” 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팔의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들 가치가 다릅니다.
누구의 팔을 의지하고 삽니까? 주님의 팔 보다는 내 팔을 의지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자신에게 절망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때로 우리가 실패 할 때도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통감한다면 실패만은 아니란 사실입니다.
많은 부분에서 우리가 마음이 가난해집니다.
생각처럼 되던가요. 사춘기의 자녀를 키워보지 않았으면 인간이라 말하지 말라 합니다.
자식이 생각처럼 되던가요 ?
젊을 때는 왜 자식을 내 맘대로 못 키우나 합니다.
내 힘으로 안 됩니다.
자신에게 절망할 때 우리는 마음이 가난해집니다.
어느 땐가 안 되는 것이 있구나. 할 때 하나님 앞에 두 손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 가난해 지는 삶이 가장 복 된 것입니다,
전 우리 다음세대가 말씀 앞에 더 가난해 지길 기도합니다.
*이사야--자신의 죄를 자각했던 사람.
마음이 오만한 자는 누군가를 비판하고 정죄하지만 마음이 가난한 자는
자신의 죄에 대해, 약함에 대해 통감합니다.
*사6:5-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라.
이사야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영광을 바라봅니다.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지 통감합니다. 심령이 가난해 지는 순간입니다.
*베드로 --예수 앞에서 자신의 죄와 무능함을 통감했던 인물
깊은 대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 할 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질 때
물고기가 그물이 찢어질 만큼 잡힐 때 자신의 무능함을 통감합니다.
이것을 가난한 자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1.주님의 도우심을 겸손히 수용하는 마음
2.철저하게 주님만 의존하고 살아가는 삶
*주님 없이는 안 되는 삶
*가난(헬 ptokos)--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절대로 생존 할 수 없는 정도의 가난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입니다.
고백하는 것이 진정한 가난입니다.
*철저하게 깨어지고 낮아진 사람.
*지성에서 영성으로 ㅡ이어령 박사의 자신의 신앙고백을 담은 책입니다.
이분의 글을 보면 깊이가 있습니다.
무신론자 였던 자, 자기 의로 자신의 지식으로 살았던 그 분이
지성을 버리고 어떻게 영성으로 돌아오는가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이런 고백을 합니다, 처음에는 내 딸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제는 나 같은 완악한 사람을 철저하게 은혜가운데 부르기 위해
내 딸을 사용 하셨다라는 고백을 하는데 그 고백이 가슴을 찡하게 울립니다.
원숙한 신앙고백입니다. 한때는 마음이 단단했던 분인데
지금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안 되는 것을 평안할 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까지 가기 전에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두 손 들고 나올 수 있다면 지혜로운 것입니다.
*가난한 마음을 가지셨던 예수 그리스도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가난한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진다.
*천국-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
*가난한 마음의 삶
주님이 가난해 지신 현장입니다
하늘 영광 다 버리고 낮고 천한 죄를 입으시고
처절하게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으신 것입니다. 주님이 철저하게 가난해 지셨습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천당과는 다릅니다.
천국은 전 우주 통치의 영역입니다 ..
우리가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통치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온 우주에 천국이 완성 됩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하는 말은 하나님의 통치가 그 모든 삶의 영역에 ...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권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천국시민의 삶으로 사는 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세상은 절대 못 누리는 복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복을 누리면서도 그것을 복으로 누리지 않습니다.
이것을 갈망하는 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진정한 가치관,, 최고의 복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자녀로 인정하시고 우리 안에 당신의 나라를 선물로 주시고
그 통치 안에 사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가.
여러분 안에 천국이 이미 선언되었습니다. 주님이 나의 통치자입니다.
우리 모든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 나라가 됩니다.
매 순간 그 주님 의지하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 ! 내 안에 있는 진정한 복을 확인하고 선포하는 우리의 전 믿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