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18-05-06 20:25
조회
981
5월6일 주일 2,3,5부예배
그리스도인 ! (사도행전 11:19-30 )
누구나 다 고통이나 환란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고통이 유익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거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통 자체는 고통입니다. 그런데 유익이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바른 신앙의 자세가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내가 실패했지만, 그 실패를 통해 또 다른 실패자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려줄 수 있다면 거기에는 또 다른 하나님의 생명력이 있을 것입니다.
바울이 자기 자랑이 가득했을 때 그의 삶은 피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을 때, 심지어 사단의 가시를 빼달라고 말할 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때부터 바울은 모든 약한 것에 감사한다는 고백을 합니다.
바울은 약할 때 곧 강함이라는 삶의 역설적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행 11:19~21)
오늘 본문을 보면 환란을 통해 무너지는 장벽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환란으로 복음이 모든 경계를 넘어서
세상에 파급되는 현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드디어 복음이 수리아 안디옥까지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는 이방인 크리스천이 이방인에게 증거 하는 복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현장은 복음 증거의 현장입니다.
복음만이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하게 합니다.
복음은 이미 믿는 자에게도 활력소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지금 감사, 감격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마키아 벨리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가난도 걱정도 병도 아니다.
그것은 생에 대한 권태다”고 말했습니다.
신앙의 권태로움이 있습니까?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형식화되어버린 신앙의 경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감격과 감동이 있는가의 여부입니다,
없으면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 감격 [感激] 고마움을 깊이 느낌.
* 감동 [感動]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
감격과 감동이 없으면 복음의 불감증에 빠지게 됩니다.
복음의 불감증은 다음과 같습니다.
1)복음을 깨닫지 못함.
복음은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우심.
예수, 십자가, 죽으심, 부활로 나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아는 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끊임없이 감격과 감동으로 이끄는 능력입니다.
복음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일깨우고 그렇게 살도록 하는 능력입니다.
2).오래 믿어서 식어버린 신앙. 모태신앙은 은혜인데 잘못하면 형편없는
신앙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3).죄를 범하든지 영적으로 병들었을 때. 범죄 한다고 성령이 떠나지는 않지만
감격이 사라집니다.
*복음의 불감증을 치유하는 비결—복음(福音)을 다시 들어라!
다윗은 범죄 했을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 안에 감격을 회복시켜주시옵소서.”
로마서는 믿지 않는 사람에게 보낸 서신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15)
환란과 핍박에도 예수를 잘 믿는 공동체인데도 복음을 나누고 싶다고 사도바울은 전합니다.
입으로 전하지 않으면 아는 것이 아닙니다.
입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확신해야만 전할 수 있습니다.
복음 증거는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나를 살리는 능력, 회복하는 능력입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 11:24) 성경에서 착한 사람은 ‘agathos’란 뜻입니다.
‘agathos’는 (선한 사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왜 이 사람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까?
이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아직도 이방에 대한 거리낌이 있었지만, 바나바는 갑니다.
바나바는 “주께 붙어 있으라”(행 11:23)고 권합니다.
영어로는 ‘purpose of heart’입니다. 마음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목적을 다양한 현장에 둡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마음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어야합니다.
바나바에 의해서 드디어 교회 역사의 무대에 세워지는 바울의 모습이 나타납니다.(행 11:25)
바나바와 바울이 사역할 때 제자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합니다.(행 11:26) 이때부터 크리스티아누스란 낱말이 믿는 사람에 대한
대명사가 됩니다. ‘예수 집안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존 맥아더, 『슬레이브』에는 다음의 내용이 나옵니다.
“초대 교회 신앙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따르는 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 이름은 애초에 불신자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비웃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비웃음으로 시작된 그 칭호는 곧 존경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동일한 자들,
예수님의 충성스러운 추종자로 간주되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용어를 자신에게 적용해야 했다.
그리스도의 노예란 전적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매사에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겠다는
자발성과 열망으로 오직 주님이 만족하시는 것에 동기 부여되는 삶을 의미한다.”
1)전적인 소유권이 주님께 있다.ㅡ오직 주님이 나의 주인이시다.
2)무조건적인 복종
3)오직 헌신
4) 전적 의존
5)책임 완수
여러분은 크리스천입니까?
종교인입니까, 예수 닮은 사람입니까? 무늬만 교인은 아닙니까?
교인이 몇 명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크리스천이 몇 명인가가 중요합니다.
감격, 감동 없으면 우리 속에 종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구원 얻었다면 구원시켜야 합니다.
나를 통해 어떤 생명의 복음이 증거 되는가 ?
나를 통해 하나님께 삶을 돌이키는 사람이 있는가 ?
내 안에 감격 감동이 입술로 증거 되고 있는가?
그 사람이 크리스천입니다.
은혜의 공동체가 그 하나님의 마음을 진정기뻐시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공동체로 날마다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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