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18-07-15 20:23
조회
930
7월 15일 주일 2,3,5부예배 ㅡ이방인 형제들에게 ! (사도행전 15: 22~35)
이방인 형제들에게 ! (사도행전 15: 22~35)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시는 참 따듯한 음성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제가 가장 사랑하는 호칭은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특권입니다.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함부로 부를 수 없어서 여러 다른 호칭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높으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호칭했습니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이 시간 우리 마음속에 계시는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십니다.
언제 불러도 가슴이 뭉클한 소중한 고백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친구라 부르시는 장면도 있습니다.
친구는 동등한 관계, 하나가 되는 관계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친구라 말씀하십니다.
너 없이는 나 없고, 나 없이는 너 없다는 소중한 관계로 우리를 불러주십니다.
성경엔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친구라 부를 수 있게 하신 장면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5:23
오늘 본문에 또 한 가지 소중한 호칭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방인 형제들’이란 호칭입니다. 형제들이란 단어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부름 받은 사람들(엡1:4)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형제가 되었다는 아름다운 단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고한다며 그들을 격려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선언이고 이방인과 히브리인이
하나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방인들도 할례나 율법이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5:24~25
본문에는 참 예의를 갖추어서 그들 앞에 진실을 토로하는 내용이 잘 나타납니다.
진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이방인들을 배려하는 예루살렘 공동체의 따듯한 마음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변화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의 십자가, 죽으심, 부활을 믿는 그들이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선언은 과거엔 생각할 수 없었던 선언입니다.
*사도행전 15:28
공동체의 권위로 그들을 격려합니다.
여기서 ‘성령’과 ‘우리’란 단어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공동체입니다.
여기에 공동체의 권위가 드러납니다.
공동체는 오직 은혜로 구원 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입니다.
이 땅에 완벽한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공동체를 성령과 동일한 권위로 선포합니다.
부족하지만, 공동체 안에는 성령이 역사하는 역동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를 존귀히 여기고 무릎 꿇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의 자세입니다.
교인들에겐 약함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적대시하는 것은
성령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요소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는 것입니다.
히브리인과 이방인이 동일한 성령 안에서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구원 얻고,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함께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고
영생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모든 기업을 회복할 수 있는 후사가 되었다는 것을
성경은 선언합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이 주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사도행전 15:29
그들이 은혜로 구원 얻었지만, 성숙을 위해서 간곡한 부탁이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을 얻는 핵심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구원 얻는 하나님의 자녀의 영향력에 관한 문제입니다.
‘dogma’란 것이 있습니다. 도그마는 교리, 불변의 정리란 의미입니다.
이것은 어떤 이성의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어야만 합니다.
삼위일체, 예수의 십자가 죽으심 부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승천하시고 재림하실 것이다,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이것은 도그마입니다. 절대불변의 진리입니다.
믿어야만 구원 얻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등장한 내용은 ‘adiaphora’입니다.
이것은 본질적이지 않은 규범들입니다. 구원 얻는 근거는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 얻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소중한 영향력을 위해서
규범이 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정죄하지는 않지만,
성숙에 대한 부분에서는 항상 걸립니다. 이것을 성경은 아디아포라라고 합니다.
신앙인의 영향력에 합당한가를 항상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은혜로 구원 얻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규정하기 전에
내가 매순간 구원 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감격과 감동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서 복음이 증거되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영향력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 향기라고 말합니다.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성령을 통해서
동일한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값집니까?
우리가 구원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서 복음이 흘러가기 위해 영향력을 드러내는
성숙을 위해 복된 삶을 살아가길 간절히 원합니다.
첨부파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