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24-04-21 09:46
조회
305
4월 21일 1-3부 예배
8시30분 1부예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4:1-11
* 인생의 목적을 상실한 사람들
故이어령 선생님이 쓴 책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는 일평생 무신론자였던 아버지에게 복음을 전한 소중한 딸을 잃은 후, 그리운 딸에게 건네는 편지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어린 시절 아빠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는 딸의 인터뷰 기사가 아픔으로 남았던 아버지는, 자신과 딸에게 딱 30초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두 팔을 활짝 펴 가슴에 안고 굿나잇 키스를 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부모에겐 자식이 세상의 전부이자 인생의 목표입니다. 오늘 본문에 인생의 목적이자 삶의 전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 예수님의 죽음앞에 근심하는 제자들
예수님께서 줄곧 말씀하신 죽음이 드디어 제자들의 마음에 전해지자, 그들은 크게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꿈이자 인생의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몇시간 후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실 텐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나누며 고별설교를 하십니다. 예수님과의 갑작스런 이별로 인해 거대한 상실의 슬픔에 빠진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1a절)
* 근심하지 않을 첫 번째 능력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b절)
인생의 거대한 고난속에서 근심하지 않는 첫 번째 능력은 끝까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바로 내가 그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하고 위로하며 힘을 주는 하나님이다. 그러니 나를 믿으라.”
심리학자인 아들러는 과거의 괴로운 상처로부터 얽매이지 않는 인생은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믿을 것이 아니라 “나를 믿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저 멀리 하늘 보좌에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의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하나님 안에 거하시고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거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근심하지 않을 두 번째 능력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2절)
인생의 거대한 고난속에서 근심하지 않는 두 번째 능력은 하늘에 우리를 위한 거처가 예비되었다는 것입니다.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던 천국을 준비하러 가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천국은 이미 존재하지만 문이 극히 좁기 때문에, 그 문을 활짝 여셔서 우리의 거처를 준비하러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자신의 육체를 찢으심으로 휘장 가운데로 새롭고 산 길이 개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누구이신가6 : 길이요 진리요 생명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근심하는 도마는 가야할 길을 알려달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그 길, 그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 예수님 자신의 인격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6절)
절대진리를 거부하는 탈진리의 시대에 ‘예수님이야말로 유일한 길이다’라는 신앙고백은 독선적인 선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의 선언이 참이라면, 아무리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초래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예수님의 선언을 수용해야만 합니다. 아니, 오히려 강한 거부감을 주는 예수님의 선언이 바로 신앙의 고백이 되어야만 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 예수 그리스도
최초의 아버지의 집이었던 에덴 동산에는 죄가 존재하지 않았으나, 죄로 인해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잃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인생에는 수많은 길이 존재하고 그 길의 선택은 오로지 나에게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다(잠14:12)”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 되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셨을 때, 지성소를 가로막는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침내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죄인인 우리에겐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 되십니다.
*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을 기록한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진리에 대해 증거하게 하셨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증거한 진리 그 자체이십니다. 인간이 고안하고 만든 진리는 단지 인간을 통제하고 지배할 뿐입니다. 이와 반대로 진리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인 죽음을 십자가에서 대신 짊어지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 길을 활짝 여셨습니다. 이것은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어떤 도덕적, 윤리적 규범 혹은 무조건적으로 믿어야하는 교리가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인격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 결론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녀와 단 30초만이라도 만나 굿나잇 키스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연약한 아버지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녀와 함께 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사랑의 입맞춤을 하시기 위하여 영원한 처소를 예비하신 전능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할 아버지의 집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시고, 하늘의 처소에 안전히 도착하기 위해 붙잡아야 할 진리이시며, 하나님 나라에 도착했을 때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게 하시는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인생의 거대한 문제 앞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를 이 땅에서도 그리고 저 높은 천국에서도 풍성히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11시 2부 예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4:1-11
* 인생의 목적을 상실한 사람들
故이어령 선생님이 쓴 책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는 일평생 무신론자였던 아버지에게 복음을 전한 소중한 딸을 잃은 후, 그리운 딸에게 건네는 편지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어린 시절 아빠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는 딸의 인터뷰 기사가 아픔으로 남았던 아버지는, 자신과 딸에게 딱 30초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두 팔을 활짝 펴 가슴에 안고 굿나잇 키스를 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부모에겐 자식이 세상의 전부이자 인생의 목표입니다. 오늘 본문에 인생의 목적이자 삶의 전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 예수님의 죽음앞에 근심하는 제자들
예수님께서 줄곧 말씀하신 죽음이 드디어 제자들의 마음에 전해지자, 그들은 크게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꿈이자 인생의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몇시간 후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실 텐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나누며 고별설교를 하십니다. 예수님과의 갑작스런 이별로 인해 거대한 상실의 슬픔에 빠진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1a절)
* 근심하지 않을 첫 번째 능력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b절)
인생의 거대한 고난속에서 근심하지 않는 첫 번째 능력은 끝까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바로 내가 그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하고 위로하며 힘을 주는 하나님이다. 그러니 나를 믿으라.”
심리학자인 아들러는 과거의 괴로운 상처로부터 얽매이지 않는 인생은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믿을 것이 아니라 “나를 믿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저 멀리 하늘 보좌에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의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하나님 안에 거하시고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거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근심하지 않을 두 번째 능력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2절)
인생의 거대한 고난속에서 근심하지 않는 두 번째 능력은 하늘에 우리를 위한 거처가 예비되었다는 것입니다.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던 천국을 준비하러 가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천국은 이미 존재하지만 문이 극히 좁기 때문에, 그 문을 활짝 여셔서 우리의 거처를 준비하러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자신의 육체를 찢으심으로 휘장 가운데로 새롭고 산 길이 개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누구이신가6 : 길이요 진리요 생명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근심하는 도마는 가야할 길을 알려달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그 길, 그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 예수님 자신의 인격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6절)
절대진리를 거부하는 탈진리의 시대에 ‘예수님이야말로 유일한 길이다’라는 신앙고백은 독선적인 선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의 선언이 참이라면, 아무리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초래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예수님의 선언을 수용해야만 합니다. 아니, 오히려 강한 거부감을 주는 예수님의 선언이 바로 신앙의 고백이 되어야만 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 예수 그리스도
최초의 아버지의 집이었던 에덴 동산에는 죄가 존재하지 않았으나, 죄로 인해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잃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인생에는 수많은 길이 존재하고 그 길의 선택은 오로지 나에게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다(잠14:12)”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 되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셨을 때, 지성소를 가로막는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침내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죄인인 우리에겐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 되십니다.
*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을 기록한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진리에 대해 증거하게 하셨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증거한 진리 그 자체이십니다. 인간이 고안하고 만든 진리는 단지 인간을 통제하고 지배할 뿐입니다. 이와 반대로 진리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인 죽음을 십자가에서 대신 짊어지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 길을 활짝 여셨습니다. 이것은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어떤 도덕적, 윤리적 규범 혹은 무조건적으로 믿어야하는 교리가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인격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 결론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녀와 단 30초만이라도 만나 굿나잇 키스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연약한 아버지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녀와 함께 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사랑의 입맞춤을 하시기 위하여 영원한 처소를 예비하신 전능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할 아버지의 집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시고, 하늘의 처소에 안전히 도착하기 위해 붙잡아야 할 진리이시며, 하나님 나라에 도착했을 때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게 하시는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인생의 거대한 문제 앞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를 이 땅에서도 그리고 저 높은 천국에서도 풍성히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